멋진 할머니들을 보면 부러움을 넘어 동경하는 마음마저 든다. 아프고 나서는 돈이 많은 사람도, 얼굴이 예쁜 사람도 부럽지가 않다. 건강하고 곱게 나이 든 할머니들이 제일 멋있고 부럽다.
다 늙은 할머니가 뭐가 부럽냐고 하겠지만 그들에게 허락됐던 지난 세월이 부러운 것이다. 살 날보다 산 날이 더 많은 그들의 지난 삶이 궁금하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마무리가 기대된다.
한세월 살아내고 인생 막바지에 이른 그녀들의 모습이 마치 긴 학창 시절을 마치고 졸업을 기다리는 소녀의 모습과 같다. 아쉬움과 후련함, 잘 살아왔다는 만족감, 끝날 때까지 잘 마무리하겠다는 다짐들.
아직 인생을 논하기엔 어린아이에 불과하지만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와본 사람으로서 인생의 끝을 향해 가는 그 여정을 나도 겪어보고 싶다.
인간만큼 오랜 기간 타인의 도움 없이 살지 못하는 동물도 없다. 요즘 세대,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성인이 된다고 해도 대부분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지 못한다. 그래도 스무 살이 넘으면 혼자 결정한 일에 법적 효력이 생기니 그때부터 혼자 살아간다고 치자.
이제 홀로서기 한지 13년쯤 된 셈이다. 지난 13년간 한 선택으로 지금의 삶이 꾸며졌다. 앞으로 내가 할 선택들이 많은 것들을 또 변화시킬지 모른다. 내가 선택하지 못하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까지 포함해 모든 선택들이 내가 사랑스러운 할머니가 될지, 그냥 늙은 인간이 될지 결정할 것이다. 아니, 늙어보지도 못하고 끝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은 늙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늙고 싶다. 빈틈없이 촘촘하게 인생이라는 정원을 꾸려나가고 하루하루를 채우며 곱게 늙어 가고 싶다.
암에 걸리고 나서 별의별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내 비석에 쓸 말까지 정했다. (비석을 세울만한 땅을 갖고 있지도 않지만) 죽기 전에 이 말을 할 수 있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잘 살다 갑니다.
내가 동경하는 멋진 할머니들은 모두 건강하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만큼 근육질에 동안이란 뜻이 아니다. 몸이 단정하다. 살이 찌지 않고 얼굴에 욕심이 없다.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고, 수수하지만 초라하지 않다.
오랫동안 자신의 역사를 써오면서 얻은 경험과 진리로 늘 평정심을 유지한다. 나도 그런 사랑스러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
유방암에서 해방되는 날까지 곱게 나이 들기를 바라본다.
암,만 그래봤자 나는 다시 일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