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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수 Oct 28. 2023

잘 만든 SF영화의 안타까움

영화 읽기: 더 문(The Moon)

잘 만든 SF영화인데, 관객수가 51만이었다. 기대보다 적은 이유가 무엇일까? 코로나와 금리 부담으로 살기 힘든 시기에 우주와 달 이야기는 관객의 관심사와 멀었나? 팬데믹에서 막 벗어났는데, 재난 영화는 당분간 피하고 싶은 대중의 심리가 작용했나? 흥행하지 못한 안타까운 마음에 스스로 납득할만한 이유를 찾고 싶었다.

잘 만들었다는 판단 근거는 SF 제작 기술의 완성도였다. 할리우드에서 제작한 SF 영화에 견주었을 때, 뒤지지 않은 수준의 영상미를 선보였다. 우주선, 우주 유영, 달 착륙과 이륙, 달 표면과 크레이터(crater), 그리고 유성우의 충격을 현실감 있는 영상으로 구현해 볼 만했다. 과학자의 자문을 받고 가능성을 확인하며 제작한 덕분에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뛰어난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영상미에서 아쉬움이 있다면 어딘지 모를 익숙함이었다. 새롭지만 왠지 본 적 있는 느낌을 씻을 수 없었다. ‘인터스텔라’와 ‘그래비티’의 신선한 충격을 경험한 관객에게는 그랬다. 당연히 김용화 감독은 그 영화들과 다른 볼거리를 제공했다. 특히 유성우가 쏟아지는 장면은 신선함을 주기 충분했다. 다만 도입부의 플롯과 시퀀스가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다는 이유로 신선함이 묻혔다.


‘더 문’이 잘 만든 영화란 사실은 시각적 효과와 경험만이 아닌, 스토리에도 있었다. 재난을 극복하는 과정이 우주 과학자의 고증을 거쳐 탄생한 아이디어였고, 상식 선에서 불가능해 보였다는 점이다. 우주선과 우주 비행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어서 가능했다. 연이은 사건의 복합적 전개를 보면서, 도대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영화를 보면서 우리의 우주 과학 기술이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수준임을 떠올렸다. 따라서 완성도 높은 영화를 만드는데 우리의 기술이면 충분했다. 우리의 과학 지식에 상상력이 더해진 스토리는 박진감 넘치고  탄탄한 스토리로 이어졌다.


이런 점에서 영화 ‘더 문’은 한국스러운 SF 영화로 정의하고 싶다. 첨단 기술로 그린 영상미와 우주 과학의 지식으로 만든 스토리뿐 아니라, 사건의 전개 배경도 한국스러웠다. 한국이 처한 국제 관계의 현실이 배경이 되었다. 영화의 극적 반전이나 주요한 순간에 미국의 도움을 받아 사건이 전개되는 상황이 그렇다. 미국이 장기간 막대한 자원을 쏟아부은 우주 항공 인프라와 기술력의 도움을 요구하는 장면은 허구의 이야기를 현실 문제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물론 미국이 흔쾌히 자발적으로 한국의 사건을 돕겠다고 나서지 않는 점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사건의 해결 과정도 한국스러웠다. 흥행에 성공한 한국 영화의 저변에 깔린 정서를 공유하고 있었다. 가족 관계가 극 중 인물의 의사 결정과 의지에 주요한 동기가 되었다. 부부 관계와 부자 관계가 영화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단초로 작용했다. 한국인에게 가족은 강렬한 동기라서 이해는 되지만, SF 영화라면 조금 달라도 되지 않았을까?  


몇 가지 요소를 중심으로 영화를 리뷰하다 보니, 이 영화의 장르를 SF로 규정하는 것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김용화 감독에게 어떤 장면을 가장 중요하게 고민했는지 물었을 때, 그는 김재국(설경구 분)이 황선우(도경수 분)를 설득하기 위한 과거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장면이라고 했다. 감독은 용서를 구하는 용기를 표현하고 싶었다. 누구나 살면서 실수나 잘못을 하기 마련이다. 대다수는 그 사실을 숨긴 채 산다. 잘못을 인정한 순간,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김용화 감독이 천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 성공을 거두었던 ‘신과 함께’가 연상되었다. 영화에 함축된 주제 의식은 유지하면서 작품의 배경과 상황을 판타지 장르에서 SF 장르로 옮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르 변경은 새로운 시도이며 참신한 접근이었다. 다만 SF 장르가 주는 신입견이 있었던 탓에 감독의 주제의식이 녹아들기 어려웠다는 점은 짚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SF 장르와 자아 성찰이란 두 가지 요소가 쉽게 연결되지 않았다.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느낌이었다. 그로 인해 영화의 주제가 돋보이지 않고 SF 영상미와 어우러지지 않았다. 미래 사회에 있을 법한 개연성이 있지만, 현시점에서 자아 성찰과 달 탐험의 관련성은 낮은 편이다.


연기력이 입증된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고 열연을 했다. 그러나 배우와 캐릭터의 관계는 모호한 점이 있었다. 우주비행사로 나선 도경수, 김래원, 이이경은 몰입감을 준 반면, 설경구, 김희애는 배역과 일치감이 약했다. 두 배우가 대중에게 각인된 매력적인 이미지는 본 작품의 배역과 달랐다. 주제 의식을 고려할 때 개성이 강한 두 배우는 적합한 캐스팅이었지만, SF 장르의 우주 공학자라는 이미지와 캐릭터에 부합하는지는 의문이 들었다. 두 배우는 열연을 했지만 본인이 갖는 강렬한 이미지와 영화 캐릭터의 갭으로 안타깝게 묻히고 말았다. 대중영화가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가치는 축소되기 마련이다. 영화의 구성 요소에서 미묘한 어긋남이 느껴진 순간이 있다 보니, 영화가 주는 감흥이 증폭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었고, 긴장감을 끝까지 놓지 못하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매력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흥미롭게 우주 이야기를 경험하며 기분 전환하는데 충분했다. SF 장르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반가워할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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