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kg를 감량한 탄수화물 중독자의 유지어트 이야기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과 비접촉은 이제 사회적 미덕이 되었다. 양식있는 사람이라면 타인과 억지로 식사 한 번 하자고 붙잡는 대신 '쿨하게' 다음을 기약하는게 훨씬 멋진 모습이 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 미덕이 되는 일은 단군 이래 최초일 듯 하다. 끈끈하다 못해 찰떡마냥 딱 달라붙어 서로의 모든걸 알지 않으면 서운해하는 가족 관계나 미주알 고주알 모든걸 털어놓는게 우정의 증명같은 세상이니까.
그러나 지난 2년간 세상은 너무도 많이 변해버렸다. 개인적으로 한국은 시스템이 바뀌는게 사람들의 인식보다 더 빠르다. 그러니까 어떤 규칙이 정해지면 이게 어떤 사회적 합의를 거쳤느냐 하고 갑론을박 하면 절대 안 끝난다. 누군가가 나서서 총대를 매고 뚝딱 바꿔놓으면 불만은 터져나올지언정 질서정연하게 따르는게 한국 사회라는 뜻이다. 이게 좋은건지 나쁜건지는 내가 판단할 일은 아니다. 나보다 더 똑똑한 분들이 하시겠지. 다만 전국민이 마스크를 끼고 몇 인 이상은 모이면 안되고 예방 접종은 순서대로 진행하되 잔여백신은 예약해서... 같은 복잡다단한 일이 착착 이루어 지고 있는 것을 보면 때로 무섭기까지 하다.
새벽 배송이나 유난히 빠른 택배 속도도 그렇다. 시스템 안의 보이지 않는 손길들이 만들어내는 속도와 편리함을 드러내지 않는게 한국 사회의 미덕이라지만 가끔 이 경쟁이 너무 치열해질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어쨌든 이 보이지 않는 손길들은 세상을 이루는 축이 되었고, 이제 없으면 불편해지는 단계다. 나 역시 새벽 배송의 도착 시간이 새벽 3시에 찍힌걸 보고 경악하면서도 가끔 식재료가 똑 떨어지면 냉큼 주문하고 마니까.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편리한 시스템의 흐름에 올라타고 만다.
유지어트는 어찌 보면 이 보이지 않는 시스템들과 비슷한 면이 있다. 불편하지만 순응해야만 하고 공들여 관리하지만 눈에 보이는 성과는 미미하다. 사실 말로는 체중을 '유지'한다는게 퍽 쉬워보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될 것만 같다. 그러나 한때 비만인이었던 나는 그게 허상임을 안다. 비단 다이어터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은 평생 유지어트를 해야만 한다. 애써 다이어트라는 거대한 산맥을 넘었건만, 제법 높은 언덕길이 끊임 없이 펼쳐지는 꼴이다. 다만 다이어트라는 산보다는 훨씬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걸을 수 있는게 유지어트다. 험난한 등산과 하이킹은 마음가짐부터 다르다. 주말 아침 일찍 일어나 공들여 운동화 끈을 단단히 매고 배낭에 간식을 챙겨 걷는 일은 유지어트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코로나 때문에 모두가 둘러 앉아 함께 하는 식사가 어색해지면서 나는 오히려 아주 약간 혜택(?)을 본 셈이 되었다. 사실 유지어터에게 하루 1끼 정도 가볍게 먹기는 아주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3끼 모두 제각각의 사정으로 가볍게 먹기란 참 힘들다. 아침은 하루를 시작하니 든든하게 먹지 않으면 힘들다. 점심은 일하는 와중에 끼니까지 허섭하게 먹자니 서운하다. 저녁은 말로 다 하지 못할만큼 중요하다. 하루의 보상이자 마무리 같은 시간이다. 그래도 꼭 가볍게 먹어야 하는 끼니를 고른다면 나는 역시 점심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난 아침에는 빵과 커피를 먹어야 하는 탄수화물 중독자니까.
그런고로 유지어트를 위해 도시락을 싸서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최근 도시락을 싸는 직장인 분들이 정말 많아졌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도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는 분들이 적잖이 보이곤 한다. 아침 출근길에도 앙증맞은 도시락 가방을 든 분들이 눈에 제법 띈다. 코로나로 인해 식당 방문 대신 가볍게 챙겨 먹는 분들이 늘어나니 너도나도 덩달아 용기를 낸 것이다.
하지만 도시락은 필연적으로 나의 노동력이 들어간다. 처음에는 제법 공들이던 도시락이 점차 간소해졌다. 다이어트 내내 마르고 닳도록 사다 먹던 닭안심과 냉동야채는 도시락에서도 아주 유용하게 쓰였다. 최근 내 도시락은 주로 구운 식빵 1장에 간단한 내용물을 끼워 돌돌만 샌드위치다. 아무래도 식빵이 마음에 걸려 1장만 사용하고 햄이나 치즈를 최소화 하는게 유지어터의 자존심이랄까. 내용물은 간단하다못해 허접하다. 친구가 몹시 궁금해해서 과정을 사진으로 찍어보았는데, 올리기 참으로 민망할 정도다.
먼저 냉동 닭안심을 잘게 잘라 볶는다. 기름을 최소화 해서 적당히 익힌 후 냉동 야채를 투입한다. 후추 간을 하고 센불에 달달 볶는다. 냉동 야채는 약한 불에 오래 볶으면 질척해지기 때문에 가급적 센불에 빠르게 볶는게 더 맛있다. 여기에 시판 파스타 소스를 한스푼 넣어 마무리 한다. 크림이나 로제보다는 토마토 함량이 높은 소스를 골랐다. 5분 이내에 만들 수 있는 간단한 토스트 속재료가 완성된다.
바삭하게 구운 식빵을 반으로 접어 내용물을 넣는다. 가끔 풍성하게 먹고 싶으면 계란 후라이나 치즈를 한 장 곁들이는 식이다. 생야채도 자주 넣는다. 채썬 양배추나 양상추, 냉동 브로콜리나 청경채가 주로 들어간다. 너무 간단해서 사진으로 찍으면 참 못생기고 없어보인다. 하지만 그게 내 점심식사고 유지어터의 도시락이다. 어디가서 기죽지는 않지만 sns에 곧잘 올라오는 예쁘고 건강한 한끼 접시를 보면 좀 민망스럽다. 플레이팅도 어쩜 그렇게 예쁘게 하셨을까? 먹기가 아까울 정도로 귀엽고 건강해 보인다. 토마토와 생치즈를 잘라 만든 샐러드와 생야채들과 내 도시락을 바라보다보면 한없이 초라함을 느낄 때도 있다. 사람인지라 타인과 비교하게 되는 마음은 영원히 버릴 수 없다. 중요한 건 비교한 끝에 에라 모르겠다 하고 포기하느냐, 마느냐다.
'나는 저렇게 못 만들어 먹는데.'
'다른 사람들은 저정도로 만들어 먹는구나.'
'저렇게 먹으려면 부지런해야 할텐데.'
'식비에 쓸 돈도 부족한데 생야채에 과일에... ...'
화려한 요거트볼이나 샐러드, 건강을 지킨 식단은 당연하게도 수고롭고 값비싸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먹을 수 있는건 아니다. 나조차도 그렇게 챙겨먹기 힘들다. 그래서 내 도시락은 영 못생겼고 형편없다. 하지만 내가 가진 조건과 시간 하에 만들 수 있는 최선이고, 이 도시락보다 나은 음식을 바깥에서 사먹을 수 없다. 식빵을 사용한다고 해서 다이어트가 망하는 건 아니다. 밥을 싸는 것도 좋지만 여름인지라 상하거나 반찬이 반드시 필요하니 수고롭기 그지 없다. 삶은 계란 등등 다양한 단백질원과 먹기에도 식빵은 최적의 음식이다.
여러모로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고, 현재 내 유지어트는 나름대로 순항중이니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식빵 1장을 다른 것으로 대체한다면 더 도움이 되겠지만 말했듯이 유지어트는 내 삶과 다이어트 사이를 걷는 하이킹이다. 최근에는 저당 식빵이나 통밀 등등 다양한 제품이 나와서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물론 나라고 해서 매번 다이어트나 유지어트 식단만 먹지 않는다. 친구들과 모임이 생기면 잘도 먹는다. 어디서 굶다온 사람마냥 잘 먹고 집에 들어가서 죄책감에 심란해할때도 있다. 하지만 오래 심란해하지 않는다. 그 시간에 30분 정도 운동을 하고 들어오는 편이 훨씬 낫다는 것을 다이어트를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내가 겪는 모든 시행착오는 유지어트라는 하이킹이자 언덕길이다. 돌부리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듯, 다이어트에 정해진 루트는 없다. 내 행복과 건강, 체중 감량이라는 3박자가 들어맞는 삶을 찾아내고자 노력한다.
그나저나 다이어트가 끝나면 모든 고민도 끝나고 편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건만. 유지어트도 나름 시간과 머리를 써야 하는 일이란걸 왜 몰랐을까? 인생 쉬운 일 하나 없다는 만고의 진리를 깨닫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