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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처돌이 Jan 20. 2022

유지어트는 쉬울 줄 알았는데: 변명은 아닙니다만

36kg를 감량한 탄수화물 중독자의 유지어트 이야기




2022년이 시작하고도 1월의 절반이 지나서야 브런치를 업로드 한다는게 내 양심을 몹시도 찔리게 한다. 주기적으로 글을 쓰겠다는 것은 나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했고, 또 생각보다 잘 지켜나가고 있는 것이 흐뭇했는데 사람의 일이란 것이 늘 계획대로만 가지 않는 것 같다. 제목에도 썼듯이 변명은 아니지만 정말로 바빴다. 사실 짬 내려면 글 하나 못 쓰겠냐 싶겠냐만은 마음이 바빴다.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만큼, 빈틈머리 하나 나오지 않을 정도로 여유가 없으면 글을 쓰는 일조차 대단히 사치스러운 취미가 되어버린다.


올해로 내 나이가 3n이다. 물론 어른들은 아직 뭐든지 할 수 있을때, 하고 싶은거 다 하라고 하는 나이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이 숫자가 어색하기만 하다. 정신연령과 실제 나이의 괴리감이 커져가고 현실에서 이뤄놓은 것 하나 없는데 점차 사회가 기대하는 '어른'이 되어버린 나 자신이 한심했다. 정말로 20대 초반과 요만큼도 성장하지 않았는데 내가 어른이란다. 한국 사회의 변화와 유행을 이끄는 MZ세대란다.


한때 나는 서점에서 코웃음을 치며 '대체 이런 책은 누가 읽냐' 류의 밑도 끝도 없이 긍정적인 제목의 자기개발서를 무시했다. 오늘도 괜찮아, 잘했어, 힘냈어 같은 모호하고 공허한 위로가 적힌 책들 말이다. 최근에서야 이런 마음을 다독이는 책들이 왜 그토록 잘 팔리는지도 알았다. 내 나이를 겪어가며 어른이 되어가던 사람들 모두 나처럼 불안한 사람들이었던거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위로도 돈을 주고 사서 읽어야 한다.


어느정도 나이가 먹고나자 아무 이유없이 나를 긍정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어졌다. 물론 당연한 일에 칭찬을 받고 싶은 욕구는 없지만 가끔 내가  살고 있는지 뒤를 돌아볼때마다 꼬불꼬불한 비포장도로만 보였다. 나처럼 무던한 사람에게 닥쳐온 인생의 회의감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눈에 보이는 장점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것도 없다. 딱히 크게 이룬 것도 없고 당장 굶지 않을 돈은 있지만 목돈이라기엔  귀여운 액수다. 내가 이룬 성과나 보고서나 모은 돈이  내가 얼마나 똘똘한 사회인인지 증명한다. 친구들과의 대화 주제도 많이 바뀌었다. 재테크나 부동산, 주식 이야기를 하다보면 알아듣지 못해 멍하니 앉아있는  자신이 바보같다. 태어나길 개미로 태어나 돈을 굴리는 재주가 눈꼽만치도 없는 나에게 30대에 은퇴하는 파이어족이니 경제적 자유는 정말이지 꿈같은 소리다.


설상가상으로 내가 결혼에 큰 뜻을 품지 않고 있다보니 사태는 더 심각하다. 보통 이 시기에는 결혼 자금을 위해 바짝 목돈을 모은다지만 내게는 그런 간절함조차 없다. 내 친할머니는 드물게도 손녀딸을 유별나게 사랑하시는 분이셨으나, 내가 결혼적령기임에도 결혼 생각이 없는걸 아시고 요 몇년 사이에는 태도를 싹 바꾸셨다. 할머니의 주변 지인들이 손자손녀가 결혼해 자식을 낳아 데려왔다는 자랑을 했다며 속상하시다고 한적도 있다. 할머니의 서운함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자고로 결혼을 해야 사람 구실을 한다는 어르신의 굳건한 고정관념을 내가 나서서 바꿀만한 깡도 근성도 없기 때문에 나는 결혼 소식대신 얇실한 봉투로 효도를 한다.


나는 천성이 독하지 못하고 느긋한데다 여전히 체력이 약해 가끔 내가 36kg를 뺐다고 생각하면 놀랄때도 있다. 사실 36KG는 내가 다이어트를 멈춘 숫자고, 유지어트를 통해 조금 더 감량했으니 실제 숫자는 38~40KG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왕 빼는거 몸짱이 되어보자는 마음으로 죽자사자 선명한 복근을 만들거나 아이돌처럼 마른 몸매가 되자고 마음 먹은 적도 없다. 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했다. 내가 너무 불행해지지 않을정도까지만 살을 빼고 싶었다. 어중간한 성격은 현대 사회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내가 타고난 재주 중에 도저히 돈을 벌만한 게 없다는 사실은 몇달간 나를 꽤 괴롭게 했다.   


큰 돈을 벌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정말이지 경제적 자유가 간절한 사람이다. 누가 그러지 않겠냐만은 날이 갈수록 내가 이 사회에서 규정한 노동과 맞지 않는 사람임을 절실히 느낀다. 직업이 맞지 않은건가 싶어 고민한 적도 있지만 이건 직업의 문제가 아니라 내 성격의 문제다. 누군가는 몇달 놀면 다시 일하고 싶어진다지만 나는 하염없이 길어지는 백수 시기에도 유유자적하게 잘만 놀았다. 결국 백수가 체질이라는 말을 이렇게 길게 늘어놓을 정도로 한심한 어른인 것이다.


그러나 나의 백수 기질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유구했다. 취업 준비 시절이던 대학교 3-4학년때조차 남들은 자격증이니 토익이니 죽자사자 공부할동안 여행 코스를 짜고 통장 잔고를 소진하며 펑펑 놀았다. 한마디로 타고난 한량이다. 영화 괴물에서 남들이 도망갈때 홀로 이어폰을 끼고 클래식을 듣다가 봉변을 당하는 여자가 딱 나다.


몇개월간 나 자신을 성찰(?) 하며 게으르고 성실하지 않음을, 악바리 근성이 없음을 깨닫고 내심 슬퍼했다. 평생 투덜이처럼 사회의 작디 작은 구성원으로 살다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질 것은 전혀 서럽지 않았다. 내가 진짜로 슬펐던 것은 일개 구성원인 내가 마땅히 버텨야 할 삶의 무게조차 너무 버겁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정말로 다들 이렇게 사는게 힘들지 않은건지 신기했다. 나만 이렇게 출퇴근조차 버거워서 낑낑대며 매일 아침 후유증이 남지 않을 정도로만 다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건지 궁금했다.   


웃긴건 이 와중에도 운동은 꼬박꼬박 했다는 거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거대한 피로감과 미래에 대한 불확신으로 가끔은 자다가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호흡이 가빠지는 증상까지 나타났다. 그래도 꾸역꾸역 운동을 하고 매일같이 체중을 쟀다. 연말을 맞아 회사에서 보내온 와인과 각종 선물과 케이크와 연휴 덕분에 다이어트 이래 최고 몸무게를 찍은 날, 나는 사놓고 2개월이나 방치한 다이어리를 폈다. 예전 다이어트를 할때마냥 식단과 체중을 꼼꼼히 기록했다. 생리와 겹쳐 급작스럽게 불어난 체중은 2주만에 돌아왔다. 그제서야 좀 정신이 들었다. 별 대단치 않은 일을 하며 시간 낭비를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내 몸을 관리하고 있었다.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는 일을 말이다.


우리 모두는 관리직이다.  몸을 관리하고 간섭하는 일은  밖에 못한다. 내가  먹을지, 얼마나 움직일지 역시 내가 관리한다. 물론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뻣뻣한 관절이나 허벅지는 기계 오류인셈 치고도 어쨌든  삶을 착실히 가꾸어주는 일은 외주나 하청으로도 불가능하다.  꾸준하고 작은 노력과 실천으로도 바꿀  있는 일이 존재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화단에 물을 주듯, 작은 동물을 돌보듯  몸을 돌아보는 일도 때로는 사소한 충족감을 준다. 지난 몇개월간 정말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공포를 막아준 것은 나의 운동과 변함없이 유지하는 건강뿐이다. 작고 사소한 노력이 인생의 거대한 우울을 상쇄시켜줄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춥고 울적한 날씨가 계속되지만 언젠가  작은 노력들이 아무 쓸모도 없지 않았음에 기뻐할 날이 온다면  좋겠다. 안오면 뭐, 그래도 어쩔 수 없지 하고 훌훌 털어버릴 어른이 되면 더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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