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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me Mar 10. 2023

Inside-out, Outside-in

대기업 n년차라면 스스로에게 물어야 하는 것


링크드인에서 흥미로운 글을 읽었다. 범선과 크루즈에 비유한 대기업 직원과 스타트업 창업자 얘기다. 


범선은 바람이 적당히 불고 큰 돛대를 달수록 멀리, 잘 나아간다. 그러나 스스로 동력이 없기 때문에 바람이 불지 않거나 너무 거세게 불 경우에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반면 크루즈는 원동기를 부착한 배이기 때문에 선장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의해 어디로 나아갈지 결정된다. 


요약하자면 범선은 외부의 요인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실패 확률이 가장 낮은 방향으로 Operation을 잘 하는, Outside-in 방식을 훈련받은 대기업 직원이고, 크루즈는 오직 본인의 직관과 생각을 통해 밀어붙일 줄 아는 Inside-out 사고방식의 창업자라는 비유였다.  


이 비유를 듣고 뼈를 아주 세게 맞은 기분이 들었는데, 이유는 이 부분이 내가 대기업에서 일하면서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꼈던 지점이기 때문이다. 나는 일을 하는 동안 내 권한 안에서 이루어지는 결정에 대해서는 과거의 경험이나 논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꽤나 자신감이 있었지만, 내 권한 밖이라고 여겨지는-이를테면 다양한 이해 관계자가 얽혀있어 내 의견 따위는 중요치 않다던가, 이렇게 해도 괜찮고 저렇게 해도 괜찮은 상황이므로 높은 자리 누군가의 의사결정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의견을 내지 않았다. 아니, 의견을 내지 못했다고 하는 편이 더 맞겠다. 나의 주관적인 의견이 회사에서 별로 중요한 때가 없었기 때문에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까먹어 버린 것이다. 


게다가 나는 사사건건 주관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들을 보면 진절머리가 났었다. '저렇게 생각하는 근거가 뭐지?' '무슨 자신감으로 저리 당당하게 빈약한 논리를 들이대나?' '저 말이 맞나? 어떻게 검증하지?' 가 그들을 대하는 나의 방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주관이 강한 사람들은 주로 회사에서 일을 못한다고 평가받는 축에 속했었다. '난 일잘러야' 라는 자신감에 도취되어, 그들의 창의력과 주관성을 매우 평가절하했던 것이다. 


이처럼 나는 Outside-in 사고방식을 훈련하며 오랜 시간을 보냈고, 이 방식은 대기업 안에서 대개의 경우에 유효하여 높은 효율과 업무 처리 속도, 성공율을 선사했다. 그러다보니 아주 가끔 스스로 Inside-out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자신감 있게 내 생각을 밀어붙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여론이나 상사의 의견에 의지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판단을 위한 재료들을 모으고 논리적으로 정렬하고 기회와 위험 요인을 분석해 의사결정을 도출하는 데에는 탁월했지만, 재료가 없는 상태에서 나만의 생각을 그리는 데는 젬병이었던 것이다. 


주니어 때야 회사의 일하는 방식과 사고 체계를 흡수하는 단계이므로 Outside-in 을 잘 해내면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지만, 시니어는 다르다. 10년차 이상이 되면, 윗 사람은 그에게 '의견'을 묻기 시작한다. 또한 연차가 쌓여 경영진에게 직접 보고할 일이 많아지면 보고서의 메시지, 즉 핵심 의견을 세우는 것은 시니어에게 매우 중요한 역량이 된다. (경영진이 듣고 싶어할만한 앵글로 보고를 잘하는 것이 능력이 되는 부분은 논외로 하자. 이것이 전부인 조직도 있기는 하다만...) 


때문에 너무 오랫동안 '일 잘하는 주니어'로 머물게 되면, 어느 순간 스스로의 한계에 다다르게 된다. 주변에서 기대하는 능력치와 내가 잘 해온 일하는 방식에 미스매치가 나는 것이 느껴진다. 따라서 팀원이 일정 연차 이상이 되면 조직장은 실무자의 의견을 묻고 듣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수용하고 생각의 토대를 발전시켜서 그 일을 완성시키는 훈련을 시켜줘야 한다. 


물론 이런 조직장을 만나는데는 행운이 필요하다. 여러 다양한 이유로 조직장들은 실무자에게 기회를 많이 주지는 않는다. 실무 역량이 탁월해서 팀장이 된 사람은 계속해서 그 가치를 증명하려 하기 때문에 본인이 사소한 일 하나하나 결정하려 하고, 임원의 입김이 너무 센 경우 팀장은 임원에게 트집 잡히지 않으려고 일하게 되기 때문에 실무자의 bottom-up 의견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따라서 대기업에서 오래 일했다면, 성장의 변곡점을 캐치하기 위해 내가 일하는 방식이 너무 Outside-in에 최적화되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이게 내 사업이라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떠올려 보자. 회사의 방향, 팀장의 성향, 임원의 피드백 따위는 없다 치고, 내가 경영자라면? 이 때 명확하게 답이 떠오른다면 그것을 표현해 보자. 먹히지 않아도 괜찮다. 내 의견을 갖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습 조차 하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팀장 후보'가 된 나에게 꽂히는 예리한 질문들 앞에서 자신감 있게 의견을 말하지 못하는 한심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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