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나는 법
나에게는 이상한 습관이 하나 있다. 뭔가 압박받거나 중요한 일을 하기 전에는 꼭 유튜브 홈화면을 의미 없이 스크롤링하다가 막장 드라마 몰아보기를 누르고 그 세계 속으로 빠져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중요한 일을 할 시간을 더 부족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빠져나와 현실 세계로 돌아왔을 때 남아있는 것은 두가지다. '그럼 그렇지' 하는 나 자신에 대한 비하의 마음과 내 머릿속 드라마 서재에 새로이 꽂힌 오늘자 드라마 줄거리 요약본이다(이렇게 나는 매일매일 새로운 드라마가 나오는 OTT 세상에서도 내 사전에 모르는 드라마가 있을 수 없도록 누구보다 부지런하다).
나는 최근까지 단순히 이것이 해야 할 일을 미루는 귀차니즘이거나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현실도피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에 줄리아 캐머런의 '아티스트 웨이, 마음의 소리를 듣는 시간'이라는 책을 따라서 세상의 소리와 내 마음의 소리를 듣는 연습을 하다보니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나는 내 머릿속의 시끄러운 소음이 듣기 싫어 더 큰 소음을 틀고 있었다는 것이다. 회사에서 해야 하는 새로운 업무가 생겼을 때, 내 머릿속에서 엄청 난 소음이 발생하고 있었다. '이거 하기 싫은데 또 해야 하네', '거봐 퇴사하자고 했잖아. 용기도 없으면서 무슨 불평이야?', '그럼 난 앞으로 나에게 의미 없는 일들을 계속해야 하는거야?', '그럼 뭘 할건데?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면서', '이것도 제대로 못하면 안 돼', '다른 사람이 나를 일 못하는 사람으로 보면 어떡해?' 순식간에 엄청난 수의 관중이 광장에 몰여와 한마디씩 하는 것처럼 내 머릿속은 어지러워졌다.
나는 이 관중들의 소음을 하나하나 마주할 용기가 없어 얼른 집으로 들어와 문을 걸어잠그고 암막 커튼을 치고 이불 속에 숨어 크게 드라마를 틀어놓고 그 드라마 소리에 집중했다. 그러자 관중들의 소리가 멀리 희미해지고 나는 나만의 세계에서 안정감을 느꼈다.
그리고 드라마가 끝난 뒤 광장에 나오자, 이제 아무도 없고 나만 덩그러니 서 있다. 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밀린 일을 처리하는 데 집중한다. 촉박해진 시간 덕에 지체할 수 없다. 일을 끝내고 메일을 보내고 나면 잠깐이지만 안도감이 밀려온다. '오늘도 무사히 내가 해야 할 일을 끝냈구나.' '욕은 먹지 않겠구나.' '밥값은 했구나.' 그리고 나의 상사나 함께 일하는 상대 담당자의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의례적인 답변 메일을 받으면 현재 나의 상태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 안심한다. 보완이나 추가 요청이 있는 경우 다시 위 과정을 반복해야 하긴 하지만.
내가 핸드폰을 더 자주 찾고 유튜브 컨텐츠를 보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것은 내 머릿속에 듣기 싫은 소음이 많다는 뜻이었다. 심할 때에는 자기 전 침대에서도 소음에 괴로워 밤새 유튜브를 보게 되기도 했다. 이 굴레, 의미 없는 영상 시청과 자기 죄책감의 고리를 어떻게 하면 탈출할 수 있을까?
정답은 하나다. 내 머릿속의 화가 난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밖에 없다. 달래줄 뾰족한 해결책이 없더라도 들어줄 수밖에 없다. 왜 이 일이 하기 싫은지, 어떤 일이 하고 싶은지, 그렇다면 그만 둘 것인지, 그만 못 둔다면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내 인생의 성공을 어떤 잣대로 결정할 것인지, 가족과의 관계인지, 돈인지, 건강인지, 나의 꿈인지 등등에 대하여 말이다.
나는 사실 비겁했다. 남들로부터 현재 나의 상태가 괜찮다는 것을 확인받으려고만 했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책임지려고 하지 않았다. 나의 부모님, 상사, 동료, 지인들이 '괜찮다', '이 길이 더 좋다', '지금처럼만 하면 된다', '이것만 더 하면 된다'라는 말들만 믿고 싶어했고, 다른 사람들이 괜찮다고 한다면 괜찮은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고 싶었다. 다수를 거스르는 수고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가장 중요한 소리를 소음 취급했다.
요즘은 아침마다 나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이 역시 줄리아 캐머런의 '아티스트 웨이, 마음의 소리를 듣는 시간'이라는 책에서 알려준 방법인데, 아침마다 내 내면의 소리를 3 페이지정도 써내려 가는 것이다. 매일 아침 45분 더 일찍 일어나 내가 소음 취급했던 내 내면의 소리들을 최대한 놓치지 않고 받아적고 있다.
이 습관의 좋은 점은 내가 나의 하루를 이끌어가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다른 사람이 보낸 메일, 카톡, 앱푸쉬 알림 등을 확인해가며 내가 하루에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남들이 주는 과제를 꾸역꾸역 '미션 클리어'하면서도 무엇인가 채워지지 않는 느낌에 괴로웠다. 물론 지금도 하고 있는 일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나의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적어도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각성하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오히려 타인의 말을 걸러듣게 된다. 어떤 말이 나에게 중요한지, 아닌지 명료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내면의 목소리 중에서도 특히 두려움의 소리를 분간하게 된다. 타인을 의식하는 두려움인지, 정말 나에게 중요한 것이 위협되고 있어서 느끼는 두려움인지를 판별하기 쉬워진다.
내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임으로써 내 인생이 어떻게 바뀔지까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하다. 내가 도파민 중독을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진짜 소음을 분간하기 시작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