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문체론 기법으로 풀어쓴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論
나는 일전에 1970년부터 2019년까지 가요 순위 차트 100위 노래들 중 4000여 곡을 선곡하여 데이터 분석을 한 적이 있다. 이 글에서 「한국 대중가요」라고 할 때는 그 자료를 전제로 한 것임을 밝혀 둔다.
오래전부터 이 노래를 좋아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좋아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래방에 갈 때면 아버지를 위해서 이 노래를 어김없이 불렀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가족은 한때 부산항 근처에 살았기에 아버지는 연락선 선창가에 대해 누구보다 진한 향수를 간직하고 계시지 않았을까.
<낭만에 대하여>는 최백호가 1995년에 직접 작사 작곡하여 발표한 곡이다. 발표 당시 그의 나이 45세다. 불혹과 지천명의 사이에 걸친 나이, 어쩌면 ‘낭만’을 노래하기에 가장 좋은 나이일지도 모른다. 초창기에는 경쾌한 탱고 리듬만 있었는데 요즘은 애절한 반도네온까지 가세하여 감정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난감할 만큼 매력적인 노래가 됐다. 변함이 없는 것은 70의 나이에도 무릎을 반쯤 굽히고 상체를 조금 뒤로 젖혀 영혼을 뿜어 지르듯 진지하게 낭만을 부르는 그의 창법이다. 순간을 잊게 하는 진통제 같은 노래가 있지만 <낭만에 대하여>만큼은 마음의 상처를 보듬고 가슴을 따스이 덥혀주는 힐링의 노래다.
나는 <낭만에 대하여>가 왜 좋은 노래인지, 왜 진귀한 한 편의 시(詩)인가를 말하려고 한다. 문학 작품을 비롯한 모든 글들이 그렇듯 노래 가사도 글쓴이의 심정을 스펙트럼처럼 펼쳐 보여준다. 때로는 사용한 단어들이 글쓴이의 분신이 되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최백호를 ‘낭만 가객’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노래의 영향이 지대할 것이다. 노래에서 사용한 가사 어휘들을 중심으로 이 노래가 어떻게 특별한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제목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낭만에 대하여>는 노래 제목부터가 매우 도전적이다. 노래를 듣기도 전에 제목에서 ‘이것이 낭만이다’라고 선언한다. ‘-에 대하여’와 같은 꼴의 노래 제목은 내 데이터베이스에서는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1991)뿐이다. 제목을 짧게 <낭만>이라고 지을 수 있었을 법한데도 최백호는 ‘-에 대하여’를 써서 이 노래의 초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강조했다. 노래는 애청자들로 하여금 첫사랑 소녀에 대한 아련한 추억 여행을 시킨다. 그리고 노래를 들으며 낭만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게 하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 그의 결론에 공감하게 만든다. 최백호는 두 개의 연 말미에서 낭만은 ‘잃어버린 것’이며 ‘다시 못 올 것’이라고 정리해 준다. 과거는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후회와 미련의 대상들이다. 그렇다고 낭만을 사연 많은 구세대의 하소연쯤으로 치부할 수도 없다. 요즘 많은 젊은 가수들이 이 노래를 리메이크를 해서 부르는 것을 보면 <낭만에 대하여>는 족히 전세대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노래가 되었다.
a. 모든 것이 낭만이었지만 그것은 우리의 이별의 시작이었어 -김학래 <새장 속의 사랑은 싫어>(1985)
b. 나는 낭만 고양이 슬픈 도시를 비춰 춤추는 작은 별빛 -체리 필터 <낭만 고양이>(2002)
c. 니가 하면 로맨스 로맨스 -케이윌 <니가 하면 로맨스>(2016)
낭만을 다룬 노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낭만(적)’ 또는 그와 유사한 외래어 ‘로맨스’(‘로맨틱’ 포함)’란 단어를 쓴 노래들을 찾아 보았다. 1977년부터 2019년까지 24곡의 노래에서 61회 쓰였는데(a~c:대표적인 노래 3곡) 그것은 대개 단어의 단순 반복이고 ‘낭만’을 뭐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는 것들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최백호는 한국 대중가요사에서 유일하게 ‘낭만을 해석한’ 가수라고 칭할 만하다.
가사들을 대충 훑어 보자.
궂은 비
짙은 색소폰
비어 있는
잃어버린 것
밤늦은 항구
슬픈 뱃고동
가버린 세월
서글퍼지는
다시 못 올 것
……
한 소절 한 소절이 어딘가 우수에 젖어 있고 사무치는 그리움을 자아낸다. 이 정도만으로도 ‘이게 최백호구나’하며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이것은 겉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나무를 보고 숲을 보라는 말이 있듯 노래도 눈을 바짝 대서 샅샅이 살펴보기도 하고 먼 발치서 주위의 다른 노래들과 비교하다 보면 안 보이던 게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낭만에 대하여> 가사를 한 어절 또는 두세 어절 이상으로 쪼개고 그 빈도를 1970년~2019년 사이에 발표된 다른 대중가요들과 비교를 해 보았다. 그게 아래의 표다.
<낭만에 대하여>는 1996년 KBS 가요대상에서 작사상을 수상했다. 그만큼 단어 선택이 시적이고 남다르다는 방증인 것이다. 이 노래에는 다른 노래에서 흔히 쓰지 않는 가사가 많이 등장한다. 위의 표에서 상위 13개의 가사는 오로지 <낭만에 대하여>에서만 쓰였고, 다음으로 28위까지의 가사는 한국 대중가요 가사에서 그리 자주 쓰지 않는 표현들이다. 그리고 29~32위 가사는 다른 노래에서도 종종 쓰였지만 <낭만에 대하여>에서 재해석할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최백호가 옛날 세대 사람이라 고루한 단어를 많이 써서 우연히 그것이 남들과 차별화되었을 거라는 반론이 있을 수 있지만, 1995년까지의 쟁쟁한 곡들과만 비교해도 그의 가사는 독보적이다. 문체를 다루는 학문의 시각에서 보면 최백호만이 사용한 ‘그야말로/옛날식/옛날식 다방/도라지 위스키/…’ 등 13개의 표현은 최백호의 가사의 특징을 대표한다.
다른 노래에 나오지 않은 가사를 특별히 가려가며 쓰기도 쉽지 않다. 최백호가 7/7·5조의 운율을 맞추려고 한 흔적은 보이지만 1995년 이전에 나온 노래 가사를 일일이 비교하지는 않았으리라 본다. 그렇기에 노래를 짓는 작사가로서도 최백호는 참으로 소중한 존재다. 노래의 여러 소절 중에서도 ‘그야말로~’라든지 ‘도라지 위스키’, ‘옛날식 다방’, ‘첫사랑 그 소녀’ 부분을 들을 때 특히 우리 귀와 심장이 자동 반응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흔하디 흔한 가사보다는 생소한 가사가 귀에 더 잘 박이고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이것이 <낭만에 대하여>가 어째서 그렇게 심금을 울리는 노래인가에 대한 하나의 답이다.
「도라지 위스키」를 위스키와 도라지의 퓨전 양주쯤으로 추측하는 사람들이 많다. 도라지 위스키는 바야흐로 지금부터 60여 년 전인 1960-70년대 일본 주류회사 산토리가 만든 「도리스 위스키(Torys Whisky)」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도리스 위스키는 위스키 향료와 색소, 주정을 혼합한 일종의 유사 주류인데 그와 비슷한 이름으로 국내에서 나온 상표가 바로 「도라지 위스키」인 것이다. 즉, 「도라지 위스키」는 도라지나 위스키가 전혀 들어 있지 않은 삼류 주류인 셈이다. 1968년 한 일간 신문에 따르면 다방에서 판매가 금지되었던 위스키를 서울 명동의 모처 다방에서 한 잔에 300원에 팔았다가 단속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그 외에 1970년대도 서울의 다방은 위스키와 관련된 사건을 유발하는 장소로 신문지상에 올랐었다. 그러니 단속이 허술한 지방 허름한 다방들은 오죽하였으랴. 당시 다방의 모든 위스키가 도라지 위스키는 아니였겠지만 싼 값에 몰래 마시는 삼류 위스키의 짜릿함이 그 세대에겐 되돌아 보면 충분히 낭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도라지 위스키」에는 1960-70년대를 살았던 세대들의 애환과 사회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 갈까’ 중년 남성의 마음을 가장 심하게 후벼파는 대목이 있다면 이 소절이 아닐까? 그렇게 애절하게 꽂혔던 그 소녀는 누구일까?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첫사랑 그 소녀’라는 가사는 단순한 단어의 나열이 아니다. 그 조합은 매우 강렬하다. 사랑도 첫 번째 사랑을 가리키는 ‘첫사랑’이고 소녀도 이름 모를 소녀가 아닌 ‘그 소녀’다. ‘소녀’(91회)나 ‘첫사랑’(89회)이란 단어는 노래 가사에서 자주 나온다. ‘그 소녀’란 가사도 간혹 보인다. 하지만 이 노래에서처럼 ‘첫사랑’이 바로 ‘그 소녀’라고 대상을 명확하게 한정하여 지칭하는 가사는 한국 대중가요 어디에도 없다. 고작 해야 ‘나의 첫사랑 그대’(임현정 <첫사랑>1999) 정도다. 심수봉의 <그때 그 사람>(1978)처럼 ‘첫사랑 그 소녀’는 사건과 대상을 직접 연결하여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어릴적 모습이 그 소녀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었을 테니 세월이 흘러도 그의 첫사랑은 여전히 풋풋하고 어린 여자아이로 남아있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첫사랑 그 소녀/그 소년’의 추억이 있으리라. ‘그 소녀’가 자신처럼 어디에선가 똑같이 늙어간다고 생각하면 세월의 무상함 앞에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의 단어들은 온통 예스러운데다 도시적인 구석을 찾아볼 수도 없다. 최백호의 노래에 바다 소재가 많이 등장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그도 부산 사나이이기 때문이다. 또한 다방의 풍경을 그렇게 생생하게 묘사할 수 있었던 것도 살롱이라 불리던 다방에서 오랫동안 노래를 불렀던 경험에 기인한다. 뱃고동 소리가 들리고 색소폰 음악이 흘러나오는 항구 다방의 풍경이 그려진다.(실제는 바다에서 조금 떨어진 동래의 한 다방이었다고 최백호는 나중에 회고했다) 남자는 쾌쾌한 담배 연기 속에서 야하게 화장을 한 마담과 도라지 위스키를 걸치며 농담을 주고 받는다. 그 소녀가 나이가 들었다면 마담 또래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마담에게서 옛 첫사랑을 투영한다. 지금은 기차역 앞과 도시 곳곳의 지하로 숨어버린 ‘반(半)퇴폐’로 각인된 다방이지만 그 시절의 다방은 가난한 필부(匹夫)가 돈 몇 푼 들고 가서 커피향을 만끽하며 죽치고 앉아 바다 건너 온 째즈나 블루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이었다. 빨간색, 세속에 찌든 중년의 여성을 상징하는 ‘마담’은 순수하고 청초한 어린 ‘소녀’를 돋보이게 한다. 그러나, 이 중년의 남성에 비친 다방의 마담이 마냥 초라하거나 선정적이지 않다. 그녀도 한때는 누군가의 첫사랑일 터이고 누군가의 가슴에 남아있을 영원한 소녀일 테니.
중년 이상이라면 누군들 한 번쯤은 ‘새삼 이 나이에’라며 자신을 나이에 가두려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새삼’의 사전적 의미를 덧붙여 다시 길게 풀어 쓴다면 ‘하지 않던 일이나 생각을 이 나이 들어서 갑자기 할 때의 멈칫함’이다. 반백이 된 나이에 첫사랑을 그린다니 헛웃음이 나오며 ‘주제 파악’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자기를 주체할 수 없는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허전함이 스멀스멀 솟아오르는 때가 있다. 그것이 청춘이고 젊음 아니겠는가. 사무엘 울만(Samuel Ulman)이 78세에 썼다는 시 <청춘>에서도 청춘이란 ‘이팔청춘’이니 ‘2,30대’니 하는 말처럼 인생의 어떤 시기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가슴 속에 경이로움을 향한 동경을 잃지 않았다면 늙어도 청춘이라는 역설이 성립한다. 그런 힘은 ‘왠지’ 즉 아무 이유도 모르고 불현듯이 일어나는 것이다. ‘잃어버린 것, 다시 못 올 것을 간직한’ 것은 부끄럽고 서러운 것이 아니라 젊음의 한가운데 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