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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라떼 Oct 25. 2022

<인생은 아름다워>

우리 인생도 아름답다.


<인생은 아름다워>, 내가 선택한 영화였다. 얼마 전 동네 언니가 보고 왔다며 추천을 해줬다. 뻔한 스토리일 것 같았지만 그래도 남편과 함께 보고 싶었다. 지나가는 말로 남편에게 흘렸었는데 남편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럼 그렇지. 사실 남편이 좋아할 만한 장르가 아니라 기대는 하지 않았다. 혼자 보는 게 속 편할 수도 있고 아님 마음 맞는 친구와 봐야지, 했었다. 


"<인생은 아름다워> 보러 가자."

"됐어. 좋아하는 영화 아니잖아."

"오늘 결혼기념일이잖아. 보러 갑시다."


그렇다. 오늘이 결혼기념일이다. 못 이기는 척 남편과 함께 집을 나섰다. 남편은 먼저 나가 내가 좋아하는 바닐라라떼를 사가지고 왔다. 아이들이 엄마 아빠 영화 재미있게 보고 오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녀석들. 언제 이렇게 컸지.. 영화관은 한산했다. 볼만한 사람은 다 본 건지, 아님 인기가 없는 건지.. 좌석이 텅텅 비어 있었다. 


"옆에 두고 써."


남편은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두루마리 휴지였다. 어쩜.. 음료 두는 자리에 딱 맞았다. 남편과 12년을 같이 살고 있지만 참 어이없고 웃긴 구석이 있다. 덕분에 한바탕 웃었다. 남편은 집에 있던 오징어도 챙겨왔다. 손수 찢어서 내 입에 넣어주었다. 참 알뜰살뜰하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눈물샘을 자극했다. 예쁘던 한 여자가 결혼을 하고 한 남자의 아내, 그리고 엄마로 살면서 참 많이 변했다. 남편과 자식들 뒷바라지하면서 아등바등 살다 건강을 잃는지도 몰랐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그녀의 삶이 안타까워 눈물이 났다. 비단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닐 것 같아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우는 내 모습을 보고 휴지를 돌돌 말아주는 남편. 울면서도 웃었다. 왜 하필 두루마리 휴지야. 하긴 남편은 각 티슈가  있었음 통째로 들고 왔을 것이다. 한참 울다 보니 목이 말랐고 남편이 싸온 물을 마셨다. 적당히 따뜻했다. 영화는 어느새 절정에 다다랐고 나는 꺼이꺼이 울었다. 울면서도 든 생각은 '남편이 눈물 한 방울도 안 흘리면 어쩌지?'였다. 남편은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 어쩔 땐 진짜 로봇인가 싶을 정도다. 이 영화를 보고 남편이 하나도 울지 않는다면.. 영화에 대한 평가만 늘어놓는다면.. 그다음은 어찌해야 할까? 눈이 퉁퉁 붓게 울면서도 조금은 걱정이 됐다. 


그런데 곁눈질로 남편을 살펴보니 손이 자꾸 눈가로 가는 게 아닌가. 운다!! 남편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다행이다. 로봇이 아니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우린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영화였는데 남편도 나와 비슷했던 모양이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영화 OST를 틀었다. 좋은 노래들로 잘 선곡한 것 같다. 따라 부르기도 하고 가사를 귀담아듣기도 하면서 영화가 남긴 여운에 심취해 있었다.



"아니, 아내 캐릭터를 너무 없어 보이게 만든 거 같아. 남편은 못되게 나오고. 애들은 또 엄마한테 그게 뭐야?"


운전을 하던 남편이 갑자기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슬슬 발동이 걸린듯싶었다. 그럼 그렇지. 그래야 내 남편이지. 


"어어 그만. 영화는 영화일 뿐. 우린 건강하게 서로 챙겨주고 못되게 굴지 말고 잘 삽시다. 이렇게 마무리하자. 어때?"


결혼기념일에 걸맞은 꽤 괜찮은 영화를 봤다. 잘 맞지 않아 티격태격 다투기도 하지만, 그래도 함께 하는 우리 인생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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