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르 Sep 29. 2021

오천 원의 추억

가난과 사랑 그 사이



때는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였는데

어머니께 용돈으로 받은, 낡은 가방에 넣어놓은 꼬깃꼬깃한 오천 원이 없어졌다.


그 오천 원은, 부모님이 힘들게 버신 돈이었다. 엄마가 백화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서있으면서 발과 다리가 퉁퉁 부은 채로 일하며 벌은 돈이었고, 아빠가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 잡부로 일하며 받아온 돈에서 꼬깃꼬깃한 한 장짜리 용돈으로 주신 거였다.


아빠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하면, 당시 아빠는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잡부였는데, 늘 작업복의 시멘트를 군데군데 묻힌 채로. 열 평 남짓한 우리 집, 작은방 두 개가 바로 이어지는 현관으로 들어오시곤 했다. 우리 엄마, 아빠는 했던 말을 또 하는 버릇이 있는데. 그 시멘트를 가득 묻힌 작업복 차림으로 현관문으로 들어오실 때면, "우리 딸, 아빠는 행복해.”라고 하셨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던 건지, 지킬 가족이 있어서 행복했던 건지, 그러면서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셨던 건지, 힘들게 일한 날 내가 돌아가서 안아줄 아내와 작은 두 딸이 있어서 행복했던 건지, 그 ‘행복해’라는 말은 내 두 눈에 들어온 아빠의 작업복에 묻은 시멘트 자국과 함께 가슴속에 멍 자국처럼 남아있다. 애잔하고, 따뜻하고, 그런데 슬프고, 그런데 행복한. 그런 하나의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감정.


나는 그날을 잊지 못한다.


그 어린 시절의 나는 그렇게 엄마와, 아빠가 벌은 그 돈, 꼬깃꼬깃하게 받은 오천 원이 얼마나 큰 가치를 지닌 건지 알고 있었다. 마치 아빠의 작업복에 묻은 시멘트 자국과,

엄마의 부은 발과 다리와 맞바꾼 오천 원처럼 여겨졌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오천원이, 교실에서 가방에 넣어 놓은 채로 없어진 것이다.

아주 어린 날이라 많은 기억이 나진 않지만 나는 그날 바로 펑펑 울며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다.


라면을 끓이는 엄마의 힘없는 뒷모습.

초라해 보이는 어깨.

부은 발과 다리.


아빠의 낡은 작업복.

작업복에 군데군데 많이도 묻어 있는 시멘트 자국.

그 모습으로 현관문으로 들어오며 환하게 웃는 아빠의 모습.


그리고 그것과 맞바꾼 오천 원.


나는 그날, 그런 눈앞에 떠오르는 모습들을 가슴속으로 껴안은 채 펑펑 울었다.

숫기가 없었던 나는 그래도 그럴 용기는 있었던 건지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고,

그날 선생님은 같은 반 학생들을 모두 앉혀놓고 두 눈을 감게 시켰다.


"오늘 한 친구의 가방에서 오천 원이 없어졌다고 한다.

모두 눈을 감고, 가져간 친구는 손을 들어라."


지금도 나는 기억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까짓 오천 원 가지고.."


엄마의 부은 다리, 팔, 힘없는 어깨.

아빠의 작업복 가득 묻은 시멘트, 그리고 환하게 웃는 그 아빠의 얼굴.

그리고 그 오천 원.


그 작은 돈이 없어진 것에 눈을 감고 손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 못마땅했던 건지, 수군수군거리던 주변의 아이들. 누구나가 겪을 수 있는 사소한 풍경 사이에서 나는 그렇게 눈물을 삼켜냈다.


결국 오천 원은 찾아내지 못했지만, 그날의 기억은 30대가 되어버린 나의 가슴의 한편에 아직 남아있다.


성인이 되고, 어른이 되어. 나는 경제력이 생겼고 누구에게나 오천 원짜리 커피 몇 잔쯤은 살 수 있는 일반인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각자의 환경이 무척이나 다를 수 있고, 그래서 서로 주고받는 말 한마디가 어쩔 땐 아주 큰 상처로, 때로는 나를 보듬는 위로로 다가오는 우리네 현실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느끼며 그렇게 30대를 걷고 있다.


가난의 끝에서 우리의 마음은 어쩌면 우리가 가난했어서 더 맑아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래서인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을 때,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누렸다는 생각을 곧잘 하게 된 건 아마 그 때문인 것 같다. 우리는 가난했지만, 그래서 더 서로를 사랑했고, 그만큼 더 소중했고, 또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었고, 세상을 조금 다른 시야로 볼 수 있었다.


그 맑은 마음을 내어 주신 사랑하는 어머니, 아버지에게 이 글을 바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