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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석환 Jun 12. 2022

하고 싶은 일 하며 먹고 사는 제 인생 궁금하세요?

경남배우열전 (11) 창원 극단 나비 장혜정 배우

어려서부터 연극배우가 꿈이었다. 꿈 많고 생각 많던 고교 시절, 그는 연극 무대에 서는 걸 갈망했다. 동시에 돈벌이에 허덕이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보니 선뜻 그 길에 발을 들이기가 어려웠다. 대학 진학 후에는 연극에 빠질까 봐 연극 동아리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회사에 취직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남들처럼 직장을 얻어 뚜벅뚜벅 걸어가는 게 보통의 인생이라 여겼다. 자신 또한 그 사회적 범주에 들기를 바라면서. 그게 꼭 바람직한 인식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학 때 연극동아리에 가입했더라면?' 창원 극단 나비 장혜정(47) 배우는 "그랬다면 연극에 흠뻑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대에 서는 게 매력적인 일이라 여겨온 그는, 자신에게 예술적 끼가 있다는 걸 잘 알았다. 이를 깨닫게 된 건 고교 학예회 시간. 남해 태생인 장 배우는 고2 때 장학금을 소재로 한 연극에 출연해 200여 명이 모인 고교 강당에서 부잣집 엄마 역을 맡아 연기했다. 학교 장학금을 두고 잘사는 집 아이와 못사는 집 아이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 상황을 재치 있게 풀어낸 작품이었다. 호응이 컸다. 그간 느껴본 적 없던 수준의 쾌감을 그는 이때 처음 경험했다.


"그 당시 친구들 반응이 폭발적이었어요. 선생님들도 되게 좋아해 주셨어요. 무대에 오르는 게 재밌고 좋더라고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 이거 하면 완전히 빠진다', '이거 빠지면 절대 안 된다' '연극 하면 거지 된다' '연극 너무 하고 싶지만 해선 안 된다' (웃음) 부모들은 건실하게 직장 다니면서 살길 바라지, 연극 하러 돌아다닌다고 하면 좋지 않게 보고 그랬거든요. 연극하는 사람들은 가난하고 광적이라는 인식이 그 당시에는 강했어요. 그래서 대학에 진학한 뒤로는 극예술연구회와 거리를 두고 멀리 피해 다니고 그랬죠."


창원 극단 나비 장혜정 배우.
어릴 적부터 무대 서고팠지만
돈에 허덕이는 삶 살까봐 외면
돌고돌아 결혼 후 결국 꿈 실현


그는 대학 졸업 후 다른 진로를 택했다. 부산지역 잡지사에 취직해 기자로 활동하다 1년여 뒤 퇴직했다. 자신이 생각한 기자 모습과 실상은 거리가 있었고, 스스로 부족함이 많다고 깨달으면서 퇴직을 결심했다. "학창 시절 책 읽는 걸 좋아했고, 글 쓰는 것도 좋아했어요. 사고 안 치는 모범생이었죠. 졸업 후 부산지역 일간지에 지원했다가 다 떨어지고 잡지사에서 일하게 됐어요. 해보니 기자의 실상은 정의로움과 다른 점이 많더라고요. 누군가를 홍보하는 기사를 쓰거나, 광고 영업 압박도 많았어요.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언론고시를 다시 준비할까도 싶었지만, 그리 열심히 잘 준비할 수 있는 스타일도 아니어서 아예 그만둬버렸어요."


장 배우는 결혼 후 철저하게 '엄마의 삶'을 살았다. 육아에 집중했다. 아이 셋을 키우며 다른 일을 생각할 만큼 여유가 많지 않았다. 그러던 2019년, 배움과 예술을 매개로 공부하는 모임인 '지혜마실협동조합'에서 활동하며 연극에 참여했다. 작품은 <햄릿>. 그렇게 그는 지인을 초청해 연극 무대를 선보였다.


"지혜마실협동조합에서 누군가를 초대해 강의를 듣곤 하는데요. 그때 강사로 만나게 된 분 중 한 명이 부산에서 활동하는 유상흘 배우였어요. 배우가 무엇인가 같이 얘기하면서 <오이디푸스왕>을 같이 읽었어요. 연기도 했고요. 자기 두 눈을 찌르고 자기 영토를 버리고 황야로 떠나게 되는 오이디푸스왕을 유상흘 선생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연기했는데 '잘하네' 이러시는 거예요. (웃음) 진짜 잘해서 그런 말을 한 건 아니겠지만, 그때는 제가 잘하는 줄 알았어요. 이후 <햄릿> 공연을 하게 됐고, 이때를 기점으로 완전히 연극에 대한 속불을 지피게 된 거죠."


장혜정 배우 공연 모습.


그동안 피해왔던 연극 맛을 다시 보게 된 그는 그해 극단 나비에서 열린 연극 아카데미에 참여, 2019년 6월 나비 단원이 됐다. 돌고 돌아 연극 무대에 서게 된 장 배우는 지금의 삶이 숙명이라고 설명했다. "저는 계속 피해 다니기만 했잖아요. 나와 관련 없는 일처럼 도망 다니고 멀어지려고 애썼죠. 결국 이렇게 돌아온 걸 보면 와야 했던 길이었던 것 같아요. 숙명이자 운명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연극 아카데미가 계기가 돼서 극단 생활을 본격적으로 하게 된 건데, 하면 할수록 어렵고 힘들더라고요. 나비 첫 공연 때는 긴장이 돼서 앞도 안 보이고 그랬어요. 아들이 그 공연을 보고는 '엄마 처음에는 지루했지만, 마지막에는 슬펐어'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3년간 활동하며 작품 7편 출연
배우로서 지금이 만족감 절정
깨지고 상처받으면서 성장 중


장 배우는 3년간 나비에서 활동하며 연극 7편에 출연했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무대에 서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창원 연극 중심에 서고 싶다는 포부도 있다. "배우로서 만족감은 지금이 최절정인 것 같아요. 가장 아프기도 한 시기죠. 연출이 되게 아프게 긁고 깨거든요. (웃음) 이상하게도 깨지면 힘든 데 더 잘하고 싶고, 잘 알고 싶고, 무대에 계속 서고 싶고 그래요. 상처받아야 찢어지고, 찢어지면서 더 성장하는 거니까 저처럼 훈련이 필요한 배우들은 그렇게 올라가는 게 맞죠. 이 배우는 늦게 시작했지만 할 일이 많은, 해야 할 배역이 많은 배우로 보이길 바라고 있어요. 성실한 배우로 비춰줄 수 있도록 활동하려고요. 앞으로 나비 식구들과 함께 창원을 연극의 중심지로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도 커요. 관객과 호흡하면서 소극장 문화를 만들어가고 싶어요."


그는 금전적 문제 등으로 꿈을 포기하는 이들에게 이런 얘기도 덧붙였다. "지금 저는 하고 싶은 일을 돌고 돌아서 행복하게 하고 있거든요. 막상 해보니 굶지 않고 경제적인 것도 해낼 수 있더라고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살 방법이 있으니 우리 청소년들, 청년들도 조금 더 자신 있게 욕망에 귀 기울여서 도전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그 안에서 성공의 기회가 분명 있다고 봐요."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 지면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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