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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석환 Oct 25. 2022

'목탁 속 작은 어둠'에서 찾은 꿈

경남배우열전 (15) 김해 극단 이루마 이정유 배우

학창시절 축제·학예회 등 학내 행사 사회 독차지
남달랐던 끼 알아본 은사 제안 후 연극인 길로
연극 불모지였던 김해서 극단 만든 뒤 꾸준히 활동
"이루마 연극은 믿고 보는 작품...더 공연 만들고파"

창원 대산고 재학 시절, 남다른 끼가 있던 이정유(49·극단 이루마 대표) 배우는 학교 축제며 학예회며 가리지 않고 온갖 행사에 참여했다. 사회는 이 배우 차지였다. 행사가 열릴 때마다 기획에도 함께했다. 때로는 전교생이 모인 무대에 서서 춤을 췄다. 일명 박남정 '기역니은 춤'과 비보잉을 선보이며 끼를 발산했다.


이 배우에게 대산고는 잘 맞는 학교였다. 교사들은 종종 공부 안 한다고 혼낼지언정 무조건 공부만 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다. 학생들을 그 자체로 존중했다. 재능을 살려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랬기에 예술로 가는 길을 막거나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이 배우의 끼를 눈여겨본 고3 때 담임교사는 어느 날 불쑥 이 배우에게 이상용 대표가 이끄는 극단 마산에 가볼 것을 권유했다. 마산에서 연극을 보라는 것이었다. 담임교사 말을 곧잘 들었던 이 배우는 그 뒤 마산에 가서 생애 첫 연극을 봤다.

극단 이루마 이정유 배우. /극단 이루마

그때 그가 마산에서 만난 작품은 <그것은 목탁 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였다. 전국 연극경연대회인 전국연극제(현 대한민국연극제)에서 대상(대통령상)을 받은 연극이다. 극단 마산 창단 이래 사상 첫 대통령상이자, 전국연극제에서 경남지역 극단이 거머쥔 첫 번째 단체 대상작이기도 하다.


이 배우는 이 작품을 보고 나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회상한다. 무대 위 선배 배우들의 모습에 매력을 느껴서다. 자연스레 그간 경험하지 못했던 분야에 흥미가 생겼다. 별다른 꿈 없이 살던 이 배우는 진지하게 진로를 고민했고, 그런 끝에 연극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고3 때 일이었다.


“문종근 선생님이 연출한 <그것은 목탁 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를 처음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날 ‘연극이 이런 거구나’라는 걸 알게 됐는데, 너무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극단에 가입하고 싶었지만, 집과 극단 간 거리가 멀다 보니 뜻대로 되지 않았어요. 선망의 극단으로만 남게 된 거죠. 그러다 20살 때 제가 살던 김해에 있는 김해연극협회에 들어가게 되면서 연극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해 10~11월쯤에 처음으로 무대에 올랐어요. 오래전 일이라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마냥 무대에 서는 게 좋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이정우 배우 공연 모습. /극단 이루마

고등학교 졸업 이후 그는 경남과 부산지역 극단에 오가면서 철저하게 연극인 삶을 살았다. 다른 일은 하지 않았다. 불러주는 곳이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가리지 않고 갔다. 한창 바쁠 때는 하루에 3편씩 공연했다. 연극에 큰 뜻이 없었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여러 연극인과 협업을 이어오던 이 배우는 2004년 3월 극단을 창단했다. 현재 자신이 이끌고 있는 김해 극단 이루마다. 창단 이후 그는 더 바쁜 시간을 보냈다. 20년 가까이 이루마를 운영하는 동안 극단 대표로, 배우로, 연출가로 나서 무대를 꾸몄다. 이 배우가 출연한 작품은 90편, 연출작은 30편에 이른다. 쉬지 않고 연극만 하며 쌓은 결과다.


“창원에 있는 나비아트홀을 빼고 지역에 있는 무대란 무대는 다 서봤어요. 극단별 연출가들과도 모두 만나봤죠. 아마 이런 배우는 지역에 저 말곤 없을 거예요. 지금보다 더 젊었을 때는 선배들과 연극 얘기를 하며 술을 밤새워 마셔도 취하지 않을 때가 있었거든요. 배우도 하고 연출도 하면서 꾸준히 연극을 해왔는데, 저는 가정보다 연극을 더 우선시해왔어요. 그만큼 연극을 좋아했죠.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다시 돌이켜봐도 연극 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정우 배우 공연 모습. /극단 이루마

연출가로서는 ‘김해 역사 인물 찾기 시리즈’라는 이름을 내걸고 지역 인물을 조명하는 연극을 창작해왔다. 1979년 12.12 군사 반란 당시 체포조 10여 명에 맞서 상관인 정병주 사령관을 지키려다 목숨을 잃은 인물 김오랑 중령과 조선시대 임진왜란 의병장이었던 사충신, 공산주의자라는 누명을 써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김해 한얼중학교 설립자이자 목사였던 강성갑 선생 등을 조명했다.


2018년부터는 김해에서 국제 아동극 축제를 열어 지역 문화 발전에 힘을 쏟고 있다. 자발적으로 나서 미국, 태국, 일본 등 국외 극단과 국내 극단 등을 초청해 지역에 볼거리를 제공해온 것이다.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2일까지 3일간 김해 서부문화센터 등지에서 열린 5회차 행사까지 포함해 올해로 5년째 아동극 축제를 주최했다.


지역 문화예술계에 활기를 불어넣어 온 이 배우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 경남연극인 대상자로 선정됐다. 경남연극인 대상은 경남연극협회가 경남연극 발전을 위해 유의미한 작업 과정을 개척하고 인정받을 만한 성과를 낸 연극인 1명에게 주는 상이다. 이 배우로서는 경남연극 위상을 높이는 데 역할을 했다는 걸 동료 연극인들에게 인정받은 것이어서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지난 1일 오후 8시께 김해서부문화센터에서 만난극단 이루마 이정유 배우. 그는 2004년 3월부터 지금까지 18년간 극단 대표를 맡아 김해지역에 문화를 싹 틔우고 있다.

그는 지금껏 그래온 것처럼 좋은 작품을 제작해 관객과 만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자신이 줄곧 생활해온 김해에 문화적으로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게 그의 계획이다. 극단 이루마만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창작극을 꾸준히 만들어서 선보이는 것도 목표 중 하나다.


“이루마를 창단하고 공연을 처음 열었을 때만 해도 거의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지금은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하면 유료 관객이 60~70%까지 차요. 찾아오는 사람이 정말 많아진 거죠. 믿고 보는 공연이 되었다고 자부하고 있어요. 저희는 아동극 축제도 만들어서 사람들이 김해에 모일 수 있게 하고 있잖아요. 무엇보다 시민들이 우리가 기획한 공연을 보고 나서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나갈 때 기분이 정말 좋아요. 앞으로도 관객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우리의 역할을 다하고 싶어요.”




이 글은 경남도민일보 지면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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