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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만별 Jun 19. 2023

오구오구 내 강아지

누군가의 사랑을 먹고 자라는 세상 모든 강아지들


# 오전 9, 커피숍 창밖 풍경 1

  아침부터 커피숍 창밖 아스팔트 길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주인 발꿈치 뒤를 잘 따라가던 흰색 포메라니안이 결국엔 인도에 엉덩이를 찰싹 붙이고 앉아 혀를 빼물었다. 걸음을 멈춘 주인은 억지로 강아지의 목줄을 잡아끌거나 안아 들지 않고 그 김에 같이 쉬어 가려는지 인도 곁에 있는 울퉁불퉁한 바위에 엉덩이를 걸쳤다.

  작은 컵에 따라준 물을 혓바닥으로 감아 달게 삼키는 녀석을 내려다보는 주인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진다.


  '오구오구, 우리 강아지. 목이 많이 말랐구나.'



# 오전 9시 10, 커피숍 창밖 풍경 2

  조글조글한 손으로 유아차를 밀고 가시는 할머니.

  6월 땡볕에 그을렸는지 할머니의 얼굴은 지난주보다 까매져 있었다(손주 어린이집 등원을 책임지는 할머니는 매일 같은 시각, 같은 장소를 지난다). 황혼 육아의 고단함이 움푹 파인 볼에, 물기 없는 푸석한 흰 머리칼에 수북이 내려앉았다.

  오늘도 지옥철을 타고 출근해 직장에서 동분서주할 '내 강아지'를 생각하며 유아차 손잡이를 고쳐 잡은 팔에 힘을 모아 바퀴를 굴려 앞으로 나아가신다.



# 오전 9시 , 커피숍 창밖 풍경 3

  손가락 하트, 볼 하트, 머리 위 하트까지 소, 중, 대 사이즈별로 구성된 '종합 하트 세트'를 날리며 유치원 등원 버스에 올라탄 아이를 배웅하는 엄마.

  '작고 소중한 강아지'가 앉아있는 버스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인도에 서서 손뽀뽀를 멈추지 않는 그녀 얼굴 위로 불과 몇 개월 전의 내 모습이 겹친다.


  '오늘 하루도 재밌는 시간 보내길 바라.'

  '점심 골고루 많이 먹고 친구랑 사이좋게 놀아.'

  '이따 이 자리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너의 하원길을 반길게.'


  이런저런 작은 생각 풍선 위로 제일 커다랗게 부푼 말을 나는 듣고 말았다.


  '아싸! 지금부터 자유다!'



# 10시

  두 시간 전쯤에 시킨 아이스커피의 얼음이 모두 녹아 사라졌으니 이제 일어나야겠다.

  내 강아지는 지금쯤 쉬는 시간 동안 교실 곳곳에 풀어놓은 활기를 정리하고 의자를 바짝 끌고 앉아 3교시 수업을 위해 숨을 고르고 있겠구나.

  정수리에 오후 1시의 열기를 한가득 얹어올 아들을 위해 어제 오전부터 김치 냉장고에 가두어 둔 수박을 갈라야지. 얼음 동동 띄운 달콤 시원한 수박화채를 입가가 붉어질 때까지 먹어보자.




# 일주일 전, 시골 요양병원

  눈 어두워지신 우리 외할머니.

  앙상한 손끝으로 더듬더듬 내 통통한 손을 찾아 잡고, 손등을 천천히 쓸어내리며 저번과, 저저번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당부를 하셨다.


  "내 강아지, 항상 차 조심해야 한다."


  마흔두 살 먹은 강아지는 아흔다섯 할머니의 주름 고랑 사이로 흐르는 눈물을 이번에도 못 본 척하고 돌아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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