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가을 소풍을 다녀왔습니다.
사실 전혀 계획이 없었습니다. 코로나 19로 정규수업 이외의 모든 활동이 사실상 중지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코로나 19로 인해 학생의 등교가 줄어들자 학교는 미뤄두었던 공사를 벌이게 되었습니다. 현재 화장실, 체육관이 모두 공사 중입니다. 공사 자재가 가득한 학교에서는 졸업앨범 촬영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학교 근처 공원에서 졸업 앨범을 촬영하기로 했습니다.
분명히 앨범 촬영이라고 말했는데, 아이들은 이미 소풍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소풍 때 무슨 옷 입고 가요? 반티 입어요?"라고 질문을 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럴만했습니다. 지금 6학년인 아이들은, 수련회 수학여행 등의 행사가 집중된 5, 6학년 내내 어떤 행사도 없이 집에서 온라인으로 공부를 했으니 말입니다.
버스 등의 대중교통을 타고 가는 것은 조심스러워서, 학교에서 도보로 20-30분 정도면 이동 가능한 '정릉'에서 앨범을 촬영하기로 했습니다. 다수의 아이들은 친구들과 모여서 함께 걸어왔습니다. 몇 명은 부모님이 데려다주시기도 했고, 교사인 저와 학교 정문에서 만나 함께 걸어온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언덕길을 걸어 내려가는 동안 아이들은 제게 동네 맛집에 대해 말해주기도 하고, 친구들 이야기나 부모님의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습니다.
드디어 공원 입구에서 만난 짝수반 4개 학급, 90여 명의 아이들(99명 이하의 행사만 가능한 단계라 홀/짝수 반으로 나누어 이틀에 걸쳐 앨범 촬영을 진행했습니다.)은 아침 9시부터 열정이 넘치는 모습이었습니다.
단체 사진, 그룹 사진, 개인 사진을 찍고, 다른 반이 사진을 찍는 동안 1시간 30분 정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습니다. 평소에 소풍을 가던 놀이공원처럼 재미있는 곳은 아니지만, 아이들은 이미 학급회의를 통해 수건 돌리기 등의 게임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해본 적이 있어서 그랬는지 교실에서처럼 재미있어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징어 게임에 나온 화제의 놀이(제가 아직 오징어 게임을 안 봐서 확실치는 않은데, 나온 거 맞겠죠?) 중 하나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제안했습니다.
유행에 민감한 아이들이어서인지, 아니면 담임 선생님에게 술래를 시키려고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저도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반이 사진 촬영 중이라 배경에 잡히지 않게 하려고 언덕 위에서 게임을 했는데, 덕분에 미끄러지기도 하고 바닥에 눕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즐겁게 게임을 할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 19에 대한 염려 때문에, 소풍의 백미인 김밥 도시락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간식도 마찬가지입니다. 허락된 것은 물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불만을 가지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2년 만에 소풍(?)을 갈 수 있었다는 것 자체를 감사해할 따름이었습니다.
버스도, 자유이용권도, 김밥도 없었던 초등학교에서의 마지막 소풍은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사람들은 2년 동안 생긴 학생들의 학습 격차와 사회성 부족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느새 부쩍 자라 일상의 사소한 즐거움에 감사할 줄 알게 되었고, 허락된 자유 안에서 최대의 즐거움을 느끼는 방법을 찾아낸 것 같았습니다.
졸업식을 하기 전에, 이런 시간이 딱 한 번만 더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중에 반창회에서 만났을 때 할 얘기가 김밥도 없던 반나절의 소풍 하나뿐인 건 너무 안타까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