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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샌님 May 04. 2023

혼자 살면서 아프면 서럽나?

첫 감기몸살 ★경축★

1인 거주 자취인들이 곤란할 때는 꽤 많다. 

배달음식을 1인분만 시키기 어렵다던지(0.68인분쯤 먹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식재료를 열심히 소분해 놓고도 요리에 다 쓰지 못하고 썩어서 버린다던지, 점검을 나올 때 집에 아무도 없다던지 등등.


그중 최고봉 중 하나는 '혼자 사는데 아플 때 서럽다'가 있다. 그렇다 지금 내가 아무래도 감기몸살에 걸린 것 같다. 거의 확실하다.


상황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이번 주 내내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던 지, 직장에서 한 번씩 돌아가며 이미 감기나 독감을 했다던지 하는 일은 놔두고, 퇴근 즈음부터 목을 옥죄는 고통이 시작되었다. 평소에 컨디션이 안 좋으면 인후통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음 공기가 안 좋나?' 하며 따뜻한 물을 받아 마시고 우선 마스크를 더 철저히 착용했다. 계속 으슬으슬 춥다고 생각했으면서 '음 우리 부서가 해가 안 들어서 추운가 보당'하며 해맑게 생각했다.


퇴근 후 집에 와서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린 후 파스타를 해 먹었다.(얼려둔 꼬리곰탕을 먹었어야 했다... 그러면 감기가 오려다가 갔을 수도 있는데)


설거지를 하고 어깨가 좀 찌뿌둥한 것을 느끼며 혹시 몰라 잠옷을 따뜻한 것으로 갈아입고, 목에 수건을 감고, 목감기약을 두 알 먹고 꿀차를 한 잔 타마셨다. 보통 이러면 목을 옥죄는 고통이 저녁 내내 지속되더라도 다음날은 괜찮아진다. 


그리고는 오늘부터 하기로 한 공부가 있었기 때문에 택배박스를 뜯어서 책을 꺼내고 자리에 앉았다. 집중력은 하늘로 떴지만 언제 공부가 술술 풀린 적이 있던가? 그냥 앉아서 한 시간만 하자~하며 앉아 있었다. 끝난 후 시각은 pm 8시 40분이었기 때문에 우유를 한 번 더 데워 마시고 양치를 하고 누웠다. 컨디션 안 좋을 땐 잠이 보약이다. 


누워서 뒤척이면서도 몸이 군데군데 쑤시고 아픈 게 이상했지만 슬쩍 잠이 들었다. 그런데 am1시 20분쯤  잠옷의 무게가 무거워서 깼다. 온몸이 두드려 맞은 듯 아파서 깨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자세가 좋지 않아서 자주 어깨가 아프지만 지금 잠옷이 살에 닿을 때마다 아파서 깬 거야?


잠이 완전히 깼을 때 반쯤 확신했다. 코로나 아니면 감기몸살이라고...

너~무 빨리도 알아챈 감이 있지만 나는 원래 목이 막힐 것처럼 아픈 일이 남들 감기 걸리는 것만큼 있다. 콧물까지 나기 시작하면 감기 시작이고, 웬만해선 이 단계에서 멈춘다. 


몸이 아릴 듯 아프고 목이 확 부어있는 느낌이 딱 몸살이었다. 가장 먼저 든 걱정은 슬프게도 '내일 출근 어쩌지?'였다. 그다음으로 조금 억울해졌다. 오늘 공부 진짜 하기 싫었는데 아픈 걸 핑계로 내일로 미룰걸.


세 번째 걱정은 동생이 본가에서 책과 짐을 더 가지고 와주기로 했는데, 코로나면 오지 못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건데. 맛있는 거 먹이고 데리고 다니면서 구경도 시켜주려 했는데.


하지만 우선 나는 할 일이 있었다. 아무도 나 대신 결근 전화를 해주거나, 병원에 데려가 주지 않기 때문에 주변에 일찍 여는 병원을 물색했다. 근처에 있는 곳 오케이. 

다음으로 검사키트를 꺼냈다. 물론 효능이 의심되긴 하지만 우선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 일단은 음성 오케이. 

그 후 냉장고에 잠자고 있던 편의점표 대추쌍화탕을 꺼내어 데워서 마셨다. 알싸하고 들쩍지근한 게 정말 입에 안 맞았지만 이걸로 내일 출근할 수 있다면 2병도 더 마실 수 있다. 그리고 혹시 몰라 종합감기약을 두 알 더 먹었다. 부디 아침엔 멀끔하길 바라며.


보일러를 더 강하게 돌리고 경량패딩과 담요를 두르고 이불을 둘러썼다. 열이 날 거라면 미리 내서 땀을 빼고 싶었다. 그러고 나니 이 시간. 잠이 저절로 온다면 좋겠지만 오지 않아도 괜찮다 싶어 책을 꺼냈다.


이렇게 상세히 남기는 이유는 지금은 전혀 서럽지 않기 때문이다. 어차피 한 번쯤은 겪을 일이기도 했다. 우선 이사 온 후 적응하고 조금 살만해질 즘엔 꼭 한 번은 아프기 마련이다. 언제까지 이 직장에 다닐진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을 하고 이렇게 대처했던 나를 기록해두고 싶었다. 이후 언젠가 혼자 산지 오래되어 서럽게 된 내가 보길 바란다. 이렇게 잘 대처했어.


두 번째 이유로 목감기약, 종합감기약, 대추쌍화탕, 검사키트, 꼬리곰탕 등은 부모님이 준비해 두고 간 것이었다.(ㅋㅋㅋ) 그러니 외롭거나 서러울 새가 없다. 


평소에 절대 먹지 않을 꿀차나 대추 쌍화탕을 데워 마시면서도 엄마의 잔소리가 생생히 들리는 것 같았다. 

'봐라, 준비해 두길 잘했제? 엄마가 누고 김준비다.'


전에 다른 지역에 있을 때도 감기기운에 약국에 들어왔다가 푸대접을 받고 온 적이 있었다. 물론 본가와 많이 멀지 않은 곳이라 주말에 부모님이 바로 오실 수 있기도 했지만, 그다음 날 부모님은 약국에서 살 수 있는 모든 약을 사들고 찾아오셨다. 그리고 벌써 멀쩡히 다 나은 나를 앉혀두고 이건 언제 먹고, 이건 이후에 먹고, 이건 이럴 때 먹거리며 단단히 일러뒀다. 아빠손에 든 약 박스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이번에도 그랬다. 이미 이사올 때 인후통이 자주 오는 나를 위해 목에 듣는 종류의 약과 종합감기약 여러 개, 코감기약, 액체로 된 약, 쌍화탕이나, 소분한 꿀차, 키트 등 사러 가야 하나? 있던가? 싶은 웬만한 물건은 모두 구비해 두셨다. 뭔가 당당하게 혼자 사는 어른이라기엔 나는 아직 너무 응애였다. 


응애인 나는 혼자 아파도 혼자인 게 아니다. 

아무튼 이곳에서의 신고식을 치렀으니 당분간은 괜찮지 않을까? 우선 응애이면서 직장인 자아를 가진 나는 내일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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