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샌님 Nov 21. 2023

임영웅 콘서트가 뭐라고 (1)

영웅샘 콘서트를 위한 대장정

 우리 부모님은 적은 월급을 한 푼 두 푼 허투루 쓰지 않고 모아서 집도 사고, 자식도 건사하고, 노후도 준비하는 세대였다. 특히 보통 외벌이 아빠+가정주부엄마의 조합이 가장 보편적이었는데 그 탓에 자식이 서른을 바라보도록 여전히 알뜰함을 유지하고 계신다. 


노래를 돈 주고 듣는다는 개념도 최근에 알게 된 두 분께는 스트리밍 서비스란 매우 생소해서, 내 카드로 결제가 된다는 소릴 듣고 잘 듣던 노래도 듣지 않으시겠다고 선포할 정도였다. 

가격을 아주아주 낮춰서, (한 달에 무제한으로 듣는데 3천 원이라고) 뻥을 쳤는데도 비싸다며 안 듣겠다고 하시는 걸 겨우겨우 설득해서 두 분이 나눠 듣는 걸로 합의를 보았다. 

(하나에 10만 원이 넘는 블루투스 이어폰을 각각 선물로 드렸을 땐 매우 좋아하셨는데 뭐지. 엄마아빠의 기준을 알 수가 없다.)


아무튼 몇 년 전 엄마가 임영웅을 좋아한다고 선포를 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미스터 트롯이 시작할 때쯤 "요즘 영웅이가 너무 좋더라~"하며 지나가는 말로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앨범인가 뭔가 나온 것 같은데 사줄까?" 했더니 당신은 TV로 보는 것만 좋아한다며 분명히 이것저것 다 거절하셨단 말이다. 그 뒤론 한창 까먹고 있었는데...


직장에서 영웅샘 광팬을 만나면서 콘서트를 향한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9월의 어느 날 엄마연배의 선배님이 콘서트 용병을 구하며 온 회사에 일정을 퍼트리기 시작했다. 어떤 자리라도 상관없이 되기만 하면 된다며 간곡히 부탁하면서 카톡으로 일정을 공유할 때까지만 해도 "어머~ 우리 엄마도 임영웅 좋아해요!"라고 말했을 뿐이었다. 티켓팅은 시간 되면 큰 기대 없이 한 번 시도나 해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이었고, 이후 티켓팅에 이렇게 진심이 될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엄마한테도 "엄마가 좋아하는 영웅이가 콘서트 한다더라~ 내가 한자리 잡아줘?" 하며 농담할 뿐이었고 엄마도 크게 기대하지 않는 눈치였는데... 서울콘서트를 넘기고 대구 콘서트는 아예 까먹고, 부산에는 조금 진심이었는데 엄청난 대기 순번에 "엄마 미안 ㅠ 담에 해줄게."하고 말았다.


  이윽고 4번째 티켓팅인 대전 티켓팅. 

준비 중이던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을 시점이라 폰에 티켓팅 알림을 맞춰 놓고도 완전 깜빡했고, 입사 동기가 "티켓팅했어요?"하고 온 카톡을 한 시간 뒤에 보고서야 놓쳤다는 걸 깨닫고 "ㅠㅠㅠㅠ"만 보냈다.


!!!! 그런데,

그 동기가!!!

" 학교 선배가 다른 티켓팅 연습하면서 안 좋은 자리지만 한 자리 잡았다는데 샌님씨 받을래요?"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이래서 평소에 주변인들에게 잘하고 살아야 한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갑자기 심장이 뛰기 시작하며 바로 양도를 성사시켰고, 맛있는 거 사겠다고 한 뒤 엄마에게 빠르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좋아할 거라는 기대반 좌석을 확인한 후의 걱정반으로 말을 고르며,


"어어 엄마. 아니, 그, 음... 그게"

"왜? 뭔 일 있나?"

"그... 전에 엄마 좋아한다 한 거, 대전에 콘서트 한다는데.  진짜 안 좋은 자린데 딱 한자리 돼가지고, 젤 뒤긴 하는데... 엄마 가볼래? "


혹시 처음이 될지도 모르는 콘서트에서 자리가 별로라 엄마가 너무 기대했다가 실망할까 봐 매우 매우 쿠션어를 써가며 넌지히 횡설수설을 했는데 엄마가 "진짜????? 나 영웅이 보는 거야????" 하며 너무 좋아하시는 게 아닌가... 


심지어 거의 두 달 뒤인 콘서트인데 이미 가있는 듯. 

"아니, 엄마는~ 처음 가는데 처음 가는 티 나면 어쩌노? 한자리라고? 내 혼자? 자리 못 찾으면 어쩌노?"하며 들떠서 어쩔 줄 모르시는데 아 진작 한 번 보내드릴걸 싶었다. 너무너무 좋아하는 엄마에게 티켓이 엄마이름으로 집으로 12월 중순에 도착할 테니 잘 받으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고 임영웅 굿즈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콘서트를 간다는데, 응원봉은 당연히 사야 하고, 공식 티셔츠도 사야 하고, 가져갈 가방도 있어야 한다 싶어서 급하게 이것저것 골라서 11월 10일 순차배송인 굿즈를 주문했다.


그리고 그 주에 한번 집에 내려갔더니 응원봉을 받고 너무 예쁘다고, 신기하다고 한참을 만지작 거리는 엄마를 만났다. 얼마냐고 비싸지 않냐고 묻길래 응원봉은 필수라고 기왕 가는 거 재밌게 보고 와야지 하고 일축했더니 그제야 "콘서트 티켓은 얼마고? 공주 돈 많이 쓴 거 아니가?" 하셨다.


돈이 있어도 못 가는 콘서트라며 가서 재밌게 노는 게 돈 아끼는 거라고 하니까 딸내미 말이 맞다며 웃으시는데 그게 딸이 어떤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는 걸 엄마는 모르시겠지^^...


그 뒤로도 종종 전화 와서 주변에서도 못 구한 사람 많다거나, 아는 언니들도 구했다고 하는데 나는 가기 전까지 자랑 안 할 거다! 라며 티켓을 선물한 나에게 실컷 자랑하시는데 그런 모습을 보니 너무 웃겼다. 


아무튼 우리 엄마의 첫 임영웅 콘서트는 12월 말이 아니게 되는데~




매거진의 이전글 남들은 본가에 간다는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