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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과학하는 여자M Mar 21. 2022

낙인이론과 실험실 탈출법

낙인찍힌 실험실의 미운오리새끼들을 위하여

낙인 이론

범죄자를 만들어 내는 과정은 꼬리표를 붙이고 규정하고 인정하고 차별하고 평하고 강조하고 의식하고 자의식을 심어주는 과정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다. 저 때 아무런 반항도 없이 묵묵부답으로 속병을 앓아야 했던 이유는 이미 사고를 치는 이미지가 돼 버린 나를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는 데다가 이젠 뭐 아무렇지도 않다는 식으로 일종의 빈사 상태에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중략)

다른 맥락에서 낙인 이론을 겪는 대부분의 사람은 안 좋은 시선으로 인해 좋지 못한 쪽으로 흘러간다.그 사람이 정말 수준 미달이거나 질 낮은 사람이 아니라 그러한 시선과 의식함에 따라서 말이다. 낙인 이론이 내게도 적용되었을 때 과연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나. 마음이 곪지 않게 사소한 압박도 굴하지 않았다. 그러한 결과로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졌지만 이상하게 마음속 화는 침전을 계속했다. 나를 방어할 사람은 나 하나뿐이지만, 가끔은 타인의 도움 또한 필요한 듯 보인다. 이를테면 낙인찍고 그것을 계속 상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해 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 말이다. 현실적으로 어려울지 몰라도 이론적으로는 분명 그러하다.
                                                                       [관계를 정리하는 중입니다] 발췌

                                                                                      

한 박사님(A)이 나에게 발표를 못하는 애라고 하셨다.

처음에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다음번엔 준비를 더 잘해야지'라고 마음먹었고 심지어 그 말이 자극이 되어 발표준비를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 다음번 발표 때에도 그 A 박사님은 나에게 "M은 발표를 항상 못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어"라고 하셨다. 그때에도 나는' 다음번에는 오늘 지적받은 내용을 수정해서 다시 잘 해봐야지'라고 생각하며 그 지적들을 복기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우리 실험실에서 발표를 못하는 애를 고르라고 하면 내가 꼽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후배들이 도움 요청이 오면, "나는 발표를 잘하는 편이 아니니깐, 다른 선배한테 물어보는 것이 도움 되지 않을까?"라고 말하게 되었다. 나 스스로 정말 못한다고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혹시 내가 도움을 주었다가 저 후배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해를 끼칠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가 정말 힘들었던 것은 낮은 나의 실력이 아니라 나를 무시하는 사람들의 시선들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나를 인정해 주는 한 분을 만났다. 인생 멘토라고 볼 수도 있는데, 그 박사님(B)은 나도 미쳐 발견하지 못한 나의 잘하는 점을 인정해 주시고, 내가 보완해야 할 점을 말해주시며 본인이 생각하는 해결책까지 말해주셨다. 그분을 만난 이후로 나는 정말 많이 바뀌었다. 자신감도 많이 커지고 일하는 즐거움도 찾게 되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B 박사님!             


가장 힘들 때, 나의 손을 잡아주신 B 박사님이 안계셨더라면, 나는 지금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있을까?

내가 어느 학회에서 발표 상을 받았다.

그 이후에, 나를 낙인찍었던 A 박사님이 본인이 잘 가르쳐주어서 내가 발표를 잘하는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닌다는 소문을 들었다. 더 크게 말하고 다니시길... 그 말을 듣고 그 어떤 누구도 당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나를 낙인찍으셨던 A박사님 덕분에 나는
내 속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게 되었고,
나를 인정해주신 B박사님 덕분에 연구에 대한 즐거움을 갖게 되었다.


낙인이론이라는 글을 접했을 때, 왠지 모를 위로를 받았다. 내가 예민하고 쿨하지 못해서 가볍게 던진 말을 아픔으로 받아들여서 생긴 일일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다.




대학원 생활 중 낙인찍힌 것 같을 땐 한가지 방법뿐


탈. 출. 하기

그 낙인을 없애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서 멋지게 실력으로 인정받는 것도 정말 드라마 같고 영화 같겠지만, 그 과정에서 마음이 많이 다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한번 스스로 판단해보자. 우리 실험실이 그렇게 버텨도 되는 이 세상의 제1의, 최고의 실험실인가? 버티면 100프로 교수를 만들어주나? 아! 만약 그렇다면 버텨도 된다. 그것이 아니라면, 탈출! 낙인을 없애기 위한 엄청난 노력을 새로운 다른 곳에서 쏟아내자. 


탈출의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1. 그만두기

2. 졸업하고 다른 곳으로 가기

나는 힘이 들 때마다, A 박사님이 나에 대한 험담을 할 때마다, 그리고 그 박사님이 나에 대한 부정적 피드백을 교수님께 업데이트 할때마다 포닥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포닥 인터뷰를 볼 때, 나도 그 PI와 그 랩의 박사들의 성향을 확인해 보게 되었다. 막상 가게 되면 다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나와 맞는 사람에 대한 눈이 생긴 것이다.


졸업을 하게 되었고, 돌이켜보니 낙인찍혀보았던 그 시기가 내 인생에 크나큰 자산이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다만, 마음을 너무 다치시지만 마시길.




추신

To. 실질적인 방법이 없어서 실망하셨을 분들께,

네... 낙인을 없애는 실질적인 답은 슬프지만 없습니다. 스스로 낙인의 굴레에 넣어 두지 마시고, 누군가 뭐라고 하면 눈으로는 불쌍한척하는 유병재의 표정을 짓고, 마음속으로 '오케이 반사! 자기소개 잘하시네!'라고 하며 생각하며 버텨봅시다. 그 사이에 쌓은 수많은 실력들은 정말 큰 자산이 되는 것은 확! 실! 히! 보장합니다.

사진출처_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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