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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ne Doe Jan 09. 2023

이 잼의 이름은 딱총나무꽃

10월의 잼

어느 겨울 나는 코디얼에 매료되어 있었다. 그래서 여름까지 기다렸다가 장미를 몇 송이 구매했다. 식용장미였다. 택배로 받은 스티로폼 박스 안에 채 여물지 않아 자그마한 꽃들이 들어 있었다. 얼마나 빨갛고 예쁘던지! 몇 날을 구경만 하다가 결국 코디얼은 잊어버리고 말았다. 성한 꽃잎을 추려 겨우 케이크에 장식하고는, 끝이었다.


자그마한 꽃이라 커피 잔에 쏙 들어간다! 


이번에는 잊지 말아야지. 올해 내 머리 한구석을 점령하고 있는 것은 잼이다. 꽃에 담긴 향을 잼으로 만들면 어떨까. 꼭 장미일 필요는 없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엘더플라워다. 엘더플라워는 인동과 서양 딱총나무에 맺히는 꽃이다. 칵테일에 관한 책을 읽다가 알게 되었다. 리큐어(liqueur)나 코디얼(cordial)로 만들어 쓴다고 적혀 있었다. 그래서 나도 이걸 이용해 잼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국내에는 엘더플라워를 파는 곳이 많지 않다. 시럽은 정말 많지만, 꽃 자체를 취급하는 곳이 몇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내가 접할 수 있는 곳은 하나뿐이었다. 처음에는 해외 직구를 생각했지만 마침 시절이 좋지 않았다.


나는 실물 엘더플라워는 물론 건조된 상태로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처음 상품을 받았을 때 블렌딩 제품이 잘못 온 줄 알았다. 꽃잎과 잔가지가 섞여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뒤편에는 다른 허브 상품의 용량까지 어지럽게 나열되어 있었다. 그래서 꽤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문의해 보니 원래 그렇게 나오는 상품이었다.


줄기가 다른 허브인 줄 알고 조금 슬펐다.


처음에는 리치와 복숭아를 생각하고 있었다. 복숭아를 베이스로 리치의 식감과 엘더플라워 향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러나 리치의 맛이 생각과 조금 달랐다. 부드러운 단맛에 꽃향기가 난다고 적혀있었는데, 오히려 파인애플 같은 맛이었다. 게다가 손질하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덕분에 리치를 1kg이나 쓰고도 그럴싸한 맛을 찾을 수가 없었다.


엘더플라워는 향이 독특해 아무 과일에나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리치와 복숭아 이후에도 살구, 멜론, 망고 등 다양한 과일을 사용해 봤다. 꽃향기가 때로 과일 향에 묻혀 버리기도 하고, 반대로 압도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포도에 섞으면 나름 어울린다는 것을 알았다. 포도는 존재감이 희미하지만, 대신 엘더플라워의 매운 향을 어느 정도 제어해 주는 것 같다. 거기에 실험적으로 블루베리를 섞기로 했다. 블루베리는 자기주장이 강한 편이다. 딸기처럼 다른 과일 향을 잡아먹지만, 독하지는 않다. 덕분에 엘더플라워의 좋은 부분을 돋보이게 해준다.


재료 : 포도 800g(냉동), 블루베리 400g(냉동), 엘더플라워 1.5ts(건조), 설탕 300g(백설탕)


포도는 압착기로 즙을 짜서 사용했다. 껍질을 거르고 알갱이만 사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신 블루베리를 그대로 넣어서 어느 정도 식감을 주고, 엘더플라워도 따로 걸러내지 않았다. 줄기 부분의 딱딱한 조직이 잼을 끓이는 과정에서 연해지기 때문에 특별히 거슬리지 않는다. 게다가 약간 쫄깃쫄깃한 식감도 있기 때문에 오히려 놔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압착기를 이용하면 부스러진 포도 과육도 함께 흘러 나온다.


재료는 한꺼번에 넣고 졸였다. 약불로 1시간 30분쯤 걸린 것 같다. 포도에 수분이 많지만, 과육도 섞여 있어서 양이 많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점도가 일반적인 블루베리 잼 수준이 되면 완성이다. 완성된 잼은 포도를 베이스로 산뜻한 단맛이 난다. 여기에 엘더플라워 향이 마치 벌꿀처럼 느껴져서 내가 진짜로 꿀을 넣었나 의구심이 든다. 한편 꿀맛 뒤편으로 블루베리의 시원스러운 잔향이 남아있어서 생각보다 개운한 느낌을 주는 잼이다.


콤포트 상태에서도 꽤 맛있다.


개인적으로는 떡을 구워서 곁들여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잼을 꼭 빵에 먹을 필요는 없으니까. 구운 송편에 곁들여 먹으며 꽤 고민했다. 엘더플라워 잼이라고 하면 들인 공에 비해 너무 단순한 것 같았다. 결국 이 잼의 이름을 딱총나무꽃이라 부르기로 했다.


Especially for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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