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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도리 May 25. 2021

가족이란 이름의 다양한 얼굴

우리가 생각하는 가족의 모습은 거침없이 하이킥인가, 주말 막장드라마인가?

우리가 생각하는 '가족'이란 어떤 모습일까?

<2016년도에 썼던 글을 옮겼습니다>


방송에서 보여주는 가족 시트콤에서 우리들에게 전달되는 그저 희극적인 요소에서 발생되는 웃음과, 가족 구성원들의 서열 구조나 인물들의 현실과 약간은 동떨어진, 어쩌면 우리들이 생각하는 평범과 보통을 뒤엎는 요소들에서의 현실성과 비현실적인 차이점들을 대중은 그저 드라마일뿐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비현실적일 수 있지만 구성원 각자의 신뢰와 책임을 다한다면 이상적인 가족 관계를 유지하는데 현실 가능성을 꿈꾸는 것에 어느 정도의 교훈을 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거침없이 하이킥>을 비롯한 <안녕, 프란체스카>, <순풍 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와 같이 통념을 깨고 이기적이거나 현실에서 보여지는 특정 가족 구성원들의 관계들을 전복시킨 시트콤들이 가족들이 볼 수 있는 시간대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딘가 호락호락해보이지 않는 가족이다


어쩌면 일부 사람들은 그것에서 이상을 꿈꾸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유아적이고 유치하면서도 가끔은 상대를 무시하지만, 끈끈한 가족애를 보여주는 것에서 웃음을 찾아 내면서 새로운 시도를 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또 다른 일부는 상식에서 벗어난 등장인물들의 행동에서 그저 유치함과 억지적인 면들만을 바라 보았을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시트콤에서 보여진 전반적인 웃음 유발 코드가 그저 기대를 무너뜨린 전복된 가족 관계를 통해 발생되는 사건들에서만 오는 것인지, 아니면, 비현실적이지만 일부 시청자들에게 이상을 꿈꾸게 하며 어쩌면 대리적 통쾌감이나 기대 이상의 해결방법을 제시한 것에 기인한 것인지에 대해 좀 더 이 글에서 고찰해보고자 한다.




2006년 부터 일 년간 방영된 <거침없이 하이킥>이 시청률 20%를 넘나드는 높은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거침없이 하이킥>의 김병욱 피디가 말했듯, 시트콤 상의 특수한 가족 관계의 설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개되는 사건들이 웃음 발생의 원천중 하나라 여겨진다.


대중문화평론가 김헌식은, <거침없이 하이킥>의 웃음 유발이 기대불일치 이론에 철저히 기초하며, 현실에서의 권위자인 시부모와 남편 캐릭터를 희화화함으로써 시청자들의 상식적인 기대를 무너뜨리고, 다수 시청자의 대리적 통쾌감을 불러 일으키며 웃음을 증폭시킨다고 한다. 이렇게 현실과 대조되는 가족의 모습이 <거침없이 하이킥>의 웃음의 토대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시트콤의 애청자로서 바라본 극의 웃음 유발과 폭발적인 인기는 그저 시청자의 기대를 무너뜨리는 전복된 가족관계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거침없이 하이킥>의 전반적인 웃음 유발은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들, 또 그들이 벌이는 엉뚱하고 엽기적인 사건들로 인한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극 중 전복된 가족관계로 인한 웃음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이들의 관계는 사실 지극히 현실적인 가족과 닮아있기에 오히려 많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지금보니 꽤 젊으셨던 야동순재 할아버지


극 중 가장인 이순재는 일반적인 아버지, 시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며느리를 비롯해 손주들, 그리고 집에 놀러오는 손주의 친구들마저 손윗사람인 이순재를 대하는 것에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심지어는 웃음 거리로 여길 때도 있다.


극 중 이순재는 번번히 집안의 기강을 잡으려 애쓰지만 중구난방으로 튀는 가족들을 거느리지 못하며, 표면적으로는 실질적 권력을 상실한 가장으로 보여진다. 또, 몰래 야한 동영상을 보다 가족들에게 들켜 ‘야동순재’라는 별명으로 어린 손주들에게까지 놀림까지 받는 그가 집안의 최고 어른으로서의 권위적인 모습을 되찾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바보 느낌의 준하


극 중 이순재의 장남인 준하는 일찍이 명예퇴직을 당해 전문직인 아내 해미에게 의존하며, 괴물같은 식성탓에 온 가족들 앞에서 매번 아버지에게 구박 당한다.

준하는 경제적인 무능에도 아내에게 주눅들지 않고, 오히려 유능한 아내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적극적으로 외조하며 역전된 부부관계를 당연히 여긴다. 또, 까칠한 성격의 늦둥이 동생 민용을 어려워하고 아들들 앞에서마저 권위를 챙기지 못함에도 그저 해맑은, 어떻게 보면 모자란 캐릭터로 비춰진다.


이렇게 극 중의 전복된 아버지상과 가족관계는 다양한 웃음 유발의 도구로 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극히 현실적인 현재의 가족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가부장적인 형태와 수직적인 가족관계가 사라져가고 좀 더 수평적인 관계로 변한 현재의 가족상을 조금은 극단적일 수 있지만 시트콤의 성격에 맞게 유머러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트콤 속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다소 우스꽝스럽게 그려내는 것이 그저 현실의 권력자를 희화화함으로써 웃음을 유발하려는 것이라기 보다는, 세대간의 벽을 허물고 수평적인 관계를 이루는 것으로 이상적인 가족 관계가 수립될 수도 있겠다는 교훈을 주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몇 십년 동안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다가 하나의 가족으로 합쳐지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불협화음을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그 해결 과정 속에서 많은 좋은 방법을 찾는 가정도 있고, 문제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서로를 피하거나 미워하게 되는 악순환을 반복하다 더 이상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가정도 있을 것이다.

특히나 <거침없이 하이킥>에서와 같은 대가족의 경우에는 가족 구성원 간의 관계가 훨씬 더 복잡한데, 특히 비혈연관계인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고부관계는 그 중 가장 어렵게 느껴진다.


대중문화평론가 김헌식의 글 중, 극 중 시어머니인 나문희가 며느리에게 ‘당하는’ 모습에 현실의 며느리들이 대리적 통쾌함을 느낀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는 입장이다. 극 중 나문희는 구세대지만 여느 신세대 못지않은 귀여운 시어머니로 자신을 무시하는 며느리에게 귀여운 투정을 부리거나, 괴력으로 강도를 때려잡는 둥, 혼자 기상천외한 일을 벌이며 회를 거듭할수록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다.


억울한 나문희여사


앞에선 꾹 참지만 매일같이 친구에게 통화해 하소연하는 나문희의 모습을 보면서, 현실의 며느리들이 시어머니의 입장에서 한번 더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많은 다른 드라마에서 비추는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이미지의 시어머니들과는 상반되는 모습이다.


나문희가 기가 센 며느리에게 눌려 불만을 혼자 속으로만 삭히는 것이 통상적으로 생각되는 고부관계의 모습과 대조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 초반 전복된 고부관계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점점 서로와의 타협점을 찾아가는 모습을 그리기 위한 하나의 장치일 뿐이라고 보여진다. 이러한 고부간의 갈등은 현실에서 흔하게 찾아 볼 수 있다.


서로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이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관계로 묶여 그 안에서 충돌하면서 서로에 대한 적대감이 생기는 경우도 아주 흔하다. 그렇게 서로에 대한 불만과 불편이 쌓여, 이상적인 관계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느끼는 가정도 많을 것이다. 시트콤에서는 극 중 나문희와 며느리 박해미처럼 서로 다른 성향때문에 생긴 사소한 오해들로부터 시작되는 가족 간의 갈등의 해결책이 의외로 쉽고 간단할 수도 있다는 것을 웃음과 더불어 보여준다.


아직도 기억나는 오케이 해미씨


며느리 박해미의 직선적이고 화통한 말투가 소심한 성격의 나문희에게는 무시당하는 느낌을 주어, 기분을 상하게 하는데, 이러한 불만이 쌓이다 문희가 결국 폭발하게 된다. 사실 제 3자의 관점에서 볼때는 쉽게 해결책이 떠오르지만 당사자들간의 소통의 부재로 빚어진 갈등은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기 마련이다.


시트콤에서는 나문희와 박해미가 함께 가족 행사때 녹화된 비디오를 보면서 해미가 문희에게 무시하는 투로 말하는 장면들을 돌려보며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모습을 그린다. 문희가 혼자 속앓이를 하며 친구에게 며느리 험담을 하는 것은 둘 사이의 거리를 더 멀어지게 하지만, 해미와 진솔한 대화를 나눔으로써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며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가능성을 예기한다.


여러 에피소드에 걸쳐 등장하는 이 고부의 갈등, 그리고 그것을 풀기 위한 시도들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다른 의미의 통쾌함과 대리만족을 주리라 생각한다. 시트콤은 가족간의 크고 작은 갈등들을 유쾌하고, 코믹하게 풀어나가는 모습을 그려내며, 가정의 불협화음에 대한 다양한 해결 방법을 제시한다.


이러한 특이하지만 화합적인 가족의 모습에 시청자들이 대리만족을 느끼고, 더 나아가 자신도 그러한 화목한 가족을 꿈꿀 수 있게 해줬기에 <거침없이 하이킥>이 그저 희극에 지나지 않고,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복잡함과 동시에 또 아주 단순하다.

시어머니와의 갈등을 남편이 중간에서 조율해 줄 수 있기도 하고, 부부간의 다툼이 자식으로 인해 누그러 질수도 있고, 또 손주가 태어나면서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가까워질수도 있다. 따라서 이상적인 가정이 만들어지기 까지는 여러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의 가족들이 서로에 대한 사랑과 이해, 그리고 깊은 신뢰로 안정되기까지의 우여곡절을 통해 시청자들이 이상의 현실 가능성과 다양한 해결 방법을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시트콤에서 보여지는 다소 억지적인 설정이나 등장인물의 성격이, 현실에서는 전혀 가당치 않게 다가올 수 있겠지만 이런 비정상적인 가족관계가 충분히 잘 유지되는 모습을 통해 가족상의 다양함이 수용되길 바라는 제작진의 염원이 담겨 있다고 볼수도 있다.


누구나 화목한 가정을 꿈꾸며 노력하겠지만 모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은 제각기 다른 모습일 것이다. 전통적인 옛 가족의 모습을 따라야만 안정된 가족이 아니듯, 아버지가 꼭 권위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맞벌이 가정이 크게 늘어난 현재에는 남편도 함께 집안 일을 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며, 경제적 능력과 책임을 아내가 도맡는 가정도 많아졌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의 전복된 가족 관계는 다소 파격적이지만 새로운 모습의 가족상을 제시하며 누가 가정내의 실권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모두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더욱 더 가치있는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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