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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이 Sep 16. 2024

09. 산부인과 병실에서 응암동 최수종을 꿈꾸며 쓴 글

터프함 보단 다정함을 갖고 싶다

아내는 홀리를 제왕절개로 출산하고, 병원에서 일주일 동안 입원해 있었다. 오래된 병원이어서 입원실의 환경이 생각보다 열악했다. 환기가 잘 되지 않은 3-4평 내외의 좁은 방에 다가 천정에 붙어있는 에어컨의 속은 까만색으로 곰팡이가 듬성듬성 보인다. 요즘 아이를 잘 안 낳는다고 하더니, 병원의 상황이 여간 좋지 않은가 보다 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병실에서 아내는 이틀간을 거의 누워 시간을 보냈다. 수술 후유증으로 인해 몸을 일으키는 일상적인 활동조차 극심한 고통을 일으키게 해서였다. 소변통을 연결하고, 누워만 있는 아내가 무척 안쓰러웠다. 나 아닌 타인이 이렇게 몸이 아팠을 때, 이렇게나 걱정을 했던 적이 있었나? 심지어 부모님께도 느껴보지 못한 애잔한 감정을 37살 산부인과 병동에서 느끼고 있었다. 일주일 동안 아내를 진심을 다해 간호하고, 보호하고 싶었다.


아내의 손과 발이 되어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주거나, 간간히 실없는 농담을 던졌다. 대화의 내용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둘만 공감하는 이야기를 했고, 무료함과 무기력함을 없애려 노력했다. 아내는 수술 후 꿰맨 자국이 아프다며, 더는 웃기지 말라 나에게 간청했지만, 조금 아파도 웃는 게 나을 것이라 생각해 열심히 떠들었다.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우리의 따뜻한 온기가 지나가고 있는 시간을 즐거움으로 채워 주었다.


지금 와서 이때의 상황을 회상하며, 우리의 관계에 대해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본다. 곰곰이 앉아 타자기를 툭툭 두드리며 글을 써 내려가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우리의 관계를 한 마디로 정리해 보면.. 아마도 ‘어려움이 있을 때, 더욱 빛나는 관계’ 일 것이다.


하루하루 서로의 일상을 보내다가, 누군가에게 예기치 않은 어려움이 닥쳤을 때 우리의 관계는 더욱 빛을 발한다. 인생은 스스로가 닥친 문제를 주체적으로 해결해 나아가야 하는 연속된 과정이어서, 누군가에게 닥친 문제를 대신 해결해 줄 순 없다고 생각하지만, 우린 어려움을 마주 했을 때 서로의 등을 마주해 바짝 붙어있으려 한다. 그럴 때 포근한 이불속에 몸이 폭 하며 감싸 안기듯 평안함을 느끼게 된다.


인생의 고민을 함께 주고받으며,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 외부적인 환경에서 서로의 심지가 다 타들어가 없어지지 않도록, 서로의 존재가 큰 힘이 되는 것이다. 나의 인생에 아내와 같은 사람이 함께 한다는 건, 곧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따르며 살아가는 삶을 의미할 수 있겠다.


우리의 관계에 대해 조금 더 깊게 사유해 보니, 나의 인생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조금 더 아내에게 의지 되는 남편이 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지금 이 마음에 폰을 들어 나의 인스타그램 프로필 소개글을 바꾸었다.


‘응암동 최수종을 꿈꿉니다’.


최수종과 션, 사랑꾼 연예인으로 불리는 이들의 공통점은 아내의 존재를 나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인정은 곧 포용으로 이어진다. 나와 다른 생각, 행동을 한다고 해서 그들은 동반자에게 질책하거나 짜증 내지 않는다. 나와는 다른 결의 행동과 생각들을 포용해서 체화한다. 그래서 자신의 시각뿐 아닌 다른 사람의 시선, 즉 배우자의 좋은 시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더 나은 인간, 배려할 수 있는 인간으로 성장한다.


간혹, ‘응암동의 최수종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누군가에게 말하면, 아내에 대한 마음이 과하다고 비웃는 사람을 만나곤 한다. 비웃는 시선은 보통 마초남이라고 부르는 유형의 사람의 특징인 터프함을 내가 갖고 있지 않아, 유약해 보여서 일 것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나의 시선을 비웃을 때면 나도 함께 비웃는다. 자신의 가장 소중하고 가까운 가족조차 다정한 시선으로 보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강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자부할 수 있을까?


나는 가장 가까운 나의 가족,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최고로 배려하고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도 서울의 서쪽 응암동에서 최수종 형님의 다정한 마음을 본받기 위한 이 마음을 조금씩 키워 나간다. 언젠간 최수종 형님의 자리의 위협하는 날까지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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