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서 생존하기 위한 질문
아이가 쑥쑥 자란다. 퇴근 시간이 늦어 평일에는 아이의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 주말에서야 아이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때마다 콧잔등이 시큰하다.
아마도 아이가 자라는 과정을 함께 할 수 없는 현실이 서글퍼서 인듯하다. 마땅히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늘 아내가 2인분 이상의 역할을 하며, 대신하고 있다.
새벽 수유를 하고, 아이가 깨면 놀아주고, 다시 재운다. 그리고 마지막엔 샤워를 시킨다. 이 모든 과정을 평일에는 아내가 담당한다. 아내의 조리원 동기는 샤워까지 담당하고 있는 아내의 모습에 깜짝 놀라며, 연민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고 한다.
나를 둘러싼 치열하고 퍽퍽한 상황으로 인해, 최근에 마음에 많이 약해졌다.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 것인지 잘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 웃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히고, 아내의 고생이 신경 쓰인다.
새벽 근무가 계속되니 몸까지 말썽이다. 앓고 있는 질환이 다시 시작되고, 각막에는 혼탁이 생겼다. 몸의 회복을 도와주는 자율신경은 고장 나 있다.
가족을 잘 보살피지 못하고, 내 몸도 건사하지 못하는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일을 시작할 때 했던 나의 다짐과 열정 정말 견고해 보였는데.. 지금은 굳은 낙엽처럼 온갖 걱정에 바스락 하고 부서진다. 부서진 낙엽은 흩날리고 나를 고통 속에 위치하게 한다. 성공과 행복에 대한 불확실한 영역에서 나는 또 한 번 과도기에 쳐해 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내 안에 충돌되는 자아가 내게 말을 걸어온다. 한 자아는 지금 빨리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는 게 나아. 다른 자아는 당장 힘들더라도 조금 버텨봐 좋은 날이 생길 거야.
자아의 충돌 속에 어렵사리 결론을 내린다. 이번만큼은 쉽게 후퇴하거나 포기하지 않겠다고.. 이 결심과 대립하는 자아에게는 조금만 더 내게 시간을 줘라고 말하며, 그의 충동적인 마음을 조금은 달래주었다.
내가 이런 결심을 하게 된 이유는 고통을 이기는 새로운 능력을 갖추고 싶어서였다. 과거를 돌아보면 이런 고비(고통)에서 회피하고 무너졌다. 충동적인 선택을 내리고 현실을 도피했다. 그래서 고통을 이겨 성장하기보다, 새롭게 시작되는 고통에 위치하게 되어, 나의 선택과 무기력함을 자책하곤 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게 위해, 한 번은 고통이라는 감정을 버티며 넘어서는 과정도 필요하겠다 느꼈다. 그래야 다음 고비가 왔을 때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겨날 수 있지 않을까?
결정의 다른 이유는 가족에게 떳떳해지고 싶어서였다. 집에서 하염없이 나를 기다리는 아내와 딸에게만큼은 고통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 조정석이 가수로 데뷔하는 과정을 담은 넷플릭스 예능 신인 가수 조정석의 인터뷰에서 그가 인터뷰에서 한 말을 감명 깊게 들었다. ‘하고 있는 일에 있어 딸에게 당당하고 멋진 아빠가 되고 싶다’ 훗날 딸의 시선으로 향하는 나의 모습이 이처럼 좋은 방향이었으면 했다.
손 잡히지 않는 곳에 행복이 있다 하더라도, 지금은 그냥 해봐야겠다고 다짐한다. 아직은 버틸 만한 힘이 남아 있으니, 이 힘은 다 써봐야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미련 없이 등을 돌리게 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