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찰카기 Jul 19. 2024

나는 아직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세운상가 작은 골목에서 가만히 누워 있었던 고양이. 죽었나 싶어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본능적으로 머리만 들어 나를 피하려고 했다. 가만히 살펴보니 몸은 어디가 불편한지 바닥에 축 늘어져서 바닥에 고인 물에 코를 박고 있었다. 그래도 눈에는 아직 생기가 있었다.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여기저기 미안한 전화를 돌려서 일요일 새벽에 진료하는 동물 병원을 알아보고 고양이를 데리고 차를 몰았다. 종이 박스에 들어간 그 고양이는 옮길 때만 몸부림을 쳤을 뿐. 더 이상 아무런 반항을 하지 않았다.


병원에 도착해서 진료가 시작되었지만 피검사를 위한 채혈은 쉽지 않았다. 탈수가 심해 피의 점성이 높았다. 링거를 맞고 다시 몇 번이나 시도한 끝에 채혈을 마칠 수 있었고, 이런저런  걱정하는 사이에 검사 결과가 나왔다.


심한 탈수와 배고픔으로 신장 기능이 마비되었지만 다행히 간 기능은 괜찮다고 했다. 그런데 한 번 악화된 신장은 회복이 불가능하며 만약 치료를 시작한다면 꽤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어간다는 설명을 들었다. 덧붙여 신장 이식 수술을 받거나 신장 투석을 해야 한다는 수의사 말에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주저하는 날 보며 수의사는 조심스럽게 안락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고민했지만 결국 나는 안락사를 선택하고 말았다. 비용적인 부담이 너무 크게 다가왔다. 병원 문을 나서기 전에 고양이가 누워 있는 곳으로 가서 한참을 서 있었다. 바라보았다. 고양이는 누워서 한 곳을 응시하고만 있었다. 미안하다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너무 미안해서. 그저 수의사에게 잘 부탁드린다는 말만 했다.


다음날 나는 병원에 전화를 걸지 못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할 말도 없었다. 그날부터 그 고양이는 내 마음 한 구석으로 걸어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계절이 두 번 바뀌고 2010년의 마지막 날까지. 나는 여전히 작별을 말할 수 없다. 어쩌면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함께 할 것 같다.


-------------------


벌써 14년. 세월은 정신없이 달려가지만 기억은 2010년에 멈춰 있다. 세운상가 고양이의 눈빛이 지금도 아른거린다. 수술을 받으면 살릴 수 있었을까.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발견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자책을 한 적도 있고, 뒤이어 밀려오는 미안함과 죄책감에 며칠 동안 힘들었던 적도 있었다. 강연 중에 세운 상가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멈추지 않는 눈물 때문에 강연을 중단했던 적도 몇 번 있었다. 그 눈빛은 여전히 화살처럼 가슴에 박혀 있다. 익숙해지지 않는다. 여전히 보는 것은 힘들다. 아니 괴롭다. 그럼에도 다시 사진을 본다. 그리고 보여준다. 보여주는 것을 멈출 수 없다. 지금도 저런 눈빛으로 길에서 살아내고 있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인사를 할 때. 아이가 들을 수는 없겠지만. 내가 사진기를 들 힘이 없을 때까지. 내가 누군가의 앞에서 더 이상 말할 수 없을 때까지. 어쩌면 눈 감는 그날까지. 너에 대해 알리며 이야기할 것이라고. 그래서 너의 후손들과 이 땅의 모든 고양이들의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직도 그 약속을 지키는 중이다.


작가의 이전글 배도 고프지 않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