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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룸펜 Nov 04. 2023

결못남 일기(02) - 소음

브론즈-솔로-인생



# 일요일, 밀린 집안일을 종일 했다. 방 청소, 빨래, 분리수거, 식물 물주기, 다시 빨래, 화장실 청소, 설거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반년쯤 미루던 단추 달기를 해야 했다. 쌀쌀해진 요즘의 날씨에 입을 옷이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계속해서 미룰 수는 없는 법이다.


  TV 방송을 거의 보지 않는 편인데, 단추를 달면서 켜놓기로 했다. 마침 <신랑수업> 재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처음 보는 프로그램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어지간해선 TV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금쪽이가 어쩌고도 1년 전인가 우연히 봤는데, 그 방송을 모른다고 회사 사람들에게 핀잔(충격받았다는 표정으로)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대신 뉴스를 켜놓는 편이었는데, 뉴스에 세상 끔찍한 내용이 너무 많이 나와서 요즘엔 뉴스도 꺼두고 있다. 나는 뉴스 방송을 청소년 시청 불가로 지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단추 달기란 작업에 드디어 착수했는데, 구멍이 2개짜리와 4개짜리 단추를 달아야 했다. 쉽지 않다는 것을, 내 마음대로 시작한 첫 단추부터 실패하며 깨달았다. 유튜브에서 방법을 찾으려고 늘 켜두는 컴퓨터 앞으로 돌아왔다. 채팅방의 회원님이 단추 다는 법은 중고등학교 때 배우지 않았냐고 물었는데, 맞아, 중학교 1학년 가정 시간인가, 아마도 배웠던 것 같았다. 하지만 배운 것을 모두 기억했다면 나의 처지는 지금과 매우 달랐을 것이다.


  유튜브에서 몇몇 영상을 본 뒤에야, 별것 아닌 것 같군, 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도전했으나, 실 여유분이 짧아서 기둥을 묶을 수 없었다. 몇 번의 재시도 끝에, 예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튼튼하게는 해낸 것 같아서 타협했다. TV에서는 김동완씨가 사야씨의 남편, 그러니까 심형탁씨에게, 요리를 (아마도 무슨 고기 요리였나) 제대로 못한다고 핀잔을 줬다. 이에 심형탁씨가 맞받아쳤다. 요리는 미숙해도 나는 결혼에 성공했는데? 김동완씨는 굉장히 멋쩍어했다. 


  으음, 나는 바느질도 제대로 못하고 결혼도 못 한 것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내야 오늘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누워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다시 일어나 세탁실 청소를 하고 잤다.




# 출근 버스에서 매일 마주하는 아저씨가 있었다. 아마 나보다 대여섯 살 많을 것이다. 그는 머리의 탈모가 심화하고 있고, 배도 꽤 나왔고, 늘 동영상을 코앞에서 보고 있다. 내가 그를 기억하는 이유는, 버스에서 내릴 때마다 버스카드를 반드시 두세 번씩 태그하기 때문이다. 이미 처리되었다는 메시지가 들리면 이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곧이어 내가 내릴 차례다. 


  내릴 준비를 하며 나는 그의 왼손 약지에 반지가 끼워져 있음을 매번 확인했다.




# <콰이어트 플레이스>라는 영화를 만든 사람은 분명히 예민한 사람일 것이다. 청각적 고통을 유발하는 무례하고 둔감한 이들을 혐오하는 자신의 강박적 기질을, 멋지게 창작물로 승화시킨 사람이 분명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한국의 성냥갑 아파트에서는 결코 살 수 없을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밤 11시에 창문 열고 파티하는 집의 소음에 잠 못 들며 든 생각이다.

  새벽 2시에 불법 개조된 오토바이의 소음에 잠이 깨며 든 생각이다.

  새벽 5시에 윗집 방바닥에서 10분 내내 진동한 휴대전화 때문에 잠이 깨며 든 생각이다.

  대낮 1시에 밥 먹다가 너는 결혼 청첩장 언제 줄 수 있겠냐며 갑자기 공격하던 회사 윗사람의 헛소리에 든 생각이다.


  이런 소음을 내는 자들을 괴물이 전부 잡아먹어 준다니, 아아, 얼마나 멋진 세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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