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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day Nov 26. 2024

『총은 총을 부르고 꽃은 꽃을 부르고』이다혜,이주현저

각기 다른 위치에 있는 인권

『총은 총을 부르고 꽃은 꽃을 부르고』 책은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하고

<씨네 21> 이다혜, 이주현 기자가 써서

한겨레출판에서 2023년 12월 출간한 인권 관련 책이다.



이 책은 영화를 통해 우리 사회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청년의 인권, 고독사 하는 노인의 존엄하지 못한 죽음, 장애우의 이동권과 학습권 그리고 홀로서기에 관한 왜곡된 시선,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총을 들지 않겠다는 신념의 한계 등을 다루고 있다.

독자로서 아쉬웠던 점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10편의 영화를 실제 감상하지 못한 채 활자로 만났다는 것이다. 영화의 줄거리를 대충 글로 읽으면서 소외된 사람들의 인권문제에 깊이 공감하는 데 한계도 있겠지만, 인권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이므로 우리는 제법 커다란 교집합 속에서 이런 문제를 바라볼 수 있으니 다행이다.   

* 인권(人權, 영어: human rights)은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인간의 권리 및 지위와 자격을 의미하는 개념.



1장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해야 할 일 - 13쪽

이옥섭 감독의 2018년 작 영화 〈메기〉는 사랑스러운 동시에 매서운 영화라고 소개된다. - 글 이다혜

마리아 사랑병원에서 찍힌 엑스레이 사진을 둘러싼 인물들의 믿음과 의심을 다룬 영화로, 하필 엑스레이실에서 섹스하는 장면이 사진이 아닌 X레이로 찍힌 것이다.

영화는 불법 촬영과 연인 간 폭력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사람들은 엑스레이 버튼을 눌러 남의 사생활을 촬영한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고 찍힌 당사자에게만 관심을 갖는다.

사회에서 피해자를 바라보는 전반적인 태도를 마주할 수 있다.

이런 문제들로 불안을 안고 살게 되거나 누군가를 의심하게 되는 청년이 있다.  

'메기'는 영화에서 내레이션을 맡고 있다.

여러 크고 작은 의심과 사람 간의 신뢰에 대한 이야기들을 계속 보여준다.

청년은 누군가를 계속 의심하거나 불안을 안고 산다.

아무도 믿지 못하니 더 고독할 수밖에 없다. 영화 속 주인공은 내내 의심하고 오해하는 감정이 반복돼서 보는 이로 하여금 혼란스러운 감정을 끄집어내게 한다.

불안은 금세 내부로 들어와 균열을 만든다.

주인공 윤영과 성원은 외부로부터 생긴 불안으로 불신 사이를 오가게 됐고, 진실을 알고 싶었다.

그러나 진실을 알게 된다고 해서 해피엔딩이 찾아오진 않는다.


“청년을 위한 해피엔딩은 어디 있을까” 희로애락의 사건들을 자신의 언어로 재정의 할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청년의 삶은 온전히 그들의 것이 될 것이다.



2장 어쩌다 학교는 이토록 살벌한 공간이 되었을까 - 35쪽

영화 〈우리는 떡볶이를 먹을 권리가 있다〉 최익환 감독. - 글 이주현

주인공인 여고생 지수에겐 떡볶이가 '전부'다.

떡볶이는 지수와 친구들의 세계를 건강하게 지탱해 주는 무엇이다.

지수의 떡볶이 사랑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학교에 있다.

굳게 닫힌 교문, 교문을 닫기로 한 결정, 그 결정을 실행하는 선생님이 모두 장애물이다.

닫힌 교문이 지수의 떡볶이 사랑을 막을 수 없었던 것처럼, 문을 닫는다고 학생들의 마음과 생각까지 가둘 수는 없다.


“혁명을 하기에 좋은 타이밍이라는 게 있다면 그건 지금 당장이다” - 학교는 유토피아를 선취하는 소우주여야 한다.

우리는 모두 '배운 사람'이다. 바른생활, 슬기로운 생활이 무엇인지 모두 학교에서 배웠다.

다만, 그것을 잊고 살아서 문제다.

우리에겐 떡볶이를 먹을 권리뿐만 아니라 학교와 교육의 본질을 바로 세울 의무가 있다.



3장 추앙받지 못하는 낙오된 아이돌 - 57쪽

남궁선 감독의 영화 〈힘을 낼 시간〉의 주인공 세 사람은 은퇴한 20대 아이돌이다. - 글 이다혜

침묵 속에 존재하는 세 사람의 얼굴에 설핏 스치는 슬픔을 우리는 읽어야 한다.

수민과 태희는 이제 26살. 10년 전 아이돌이 되기 위해 학교에 가는 대신 꿈을 키웠다.

몸은 배불리 먹지 못하고, 귀에는 이어폰은 끼고 세상과 단절된 채로 통제되지 않는 일상을 살아야 했다.

세 명의 '망돌'(망한 아이돌)은 인기가 없어서 행동이 뜸하거나, 인지도가 낮은, 나아가서는 해체 위기에 놓인(혹은 해체된 그룹의) 아이돌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들에게 그런 낙인을 찍지 않는다.

대신 제주 여행을 떠난 세 명의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길 위의 시간을 통해 만들어내지 않은 그들의 맨 얼굴을 응시한다.

그리고 드러나는 것은, 그들이 꾸며내야 했던 태도들의 비인간적인 측면이다.

잘잘못을 가리는 대신 논란을 만들지 않기 위해 미안하다고 해버리기, 식사를 하는 대신 입에 든 음식도 뱉어버리기, 이들이 여행을 떠나야 할 정도로 상처를 입게 만든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너무 많은 것을 포기하고 너무 많은 것을 투자하다 보니 포기를 잘 못하게 되는 사람들도 있다.

영화의 주인공은 그런 친구들이다. K-Pop의 이면, 너무 일찍 낙오를 받아들여야 하는 아이돌이다.


“이른 나이부터 너무 힘을 내고 살아온 사람들” - 영화는 여행을 가고 싶어 했던 다른 한 명 또래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동료가 죽어도 마음껏 애도할 수 없다는 것이 이들에게 남긴 상흔은 무엇일까?

궤도에서 이탈한 친구에게 손을 적절한 때 내밀었나?

다 같이 죄책감을 느낀다.

<힘을 낼 시간>은 뒤에 남은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영화다.

'다음'을 생각할 수 있는 에너지를 모두가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4장 아이와 노인은 무엇이 닮았을까 - 79쪽

영화 〈봉구는 배달 중〉감독 신아가, 이상철의 휴먼 코믹 감동 드라마다. - 글 이주현

봉구는 실버택시 기사다. 영화에는 봉구가 겪는 다양한 노인 소외된 현실이 담겨 있다.  

봉구는 유치원에 가지 못하고 혼자 길에 남겨진 6살 행운이의 집을 찾아주려다가 졸지에 유괴범이 되어버린다.

봉구 할아버지의  드라마틱한 하루를 그린 이 영화는 특히 독거노인이라는 주제가 주는 편견을 깨고 시종일관 유쾌한 웃음을 전한다.

노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나이가 들면 자연히 신체 기능이 저하된다.

시력이 떨어지고 걸음이 느려지고 호르몬 변화도 생긴다. 질병에 쉽게 노출되며, 육체적 건강은 정신 건강에도 영향을 준다.

피할 수 없는 자연법칙이지만 언젠가 세월의 변화와 그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어지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는 사실을 우리를 두렵게 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가 사라지고 있다." - 육체적 쇠퇴와 함께 사회적으로 도태된다고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이 영화에서 안타고니스트(antagonist)는 사회다.

봉구를 괴롭히는 건 사람이 아니라 사회이며, 그가 맞서야 하는 건 노인을 불편한 존재로 여기는 사회 인식이다.

사회는 노인을 공경하면서 멸시한다. 그래서 어렵다.

봉구를 유괴범으로 오해한 행운 엄마에게만 사과를 받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봉구의 선의는 CCTV로는 확인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들이 생각하는 나의 불일치는 노년이 될수록 심하다.

그런 인식이 쌓이고 쌓이면 노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과 소외로 이어진다.


안타고니스트: 반동 인물 '反動 人物(antagonist)'이란, 영화, 드라마, 무대 연극, 소설 등의 작품에서 사건을 이끄는 주동인물(주인공)과 대립하는 인물을 뜻한다. 반동 인물은 이야기 안의 갈등 구조를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 중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악당, 악인 (villian, 빌런)과 반동 인물이 겹치는 경우가 많지만, 결코 "반동 인물=악인"은 아니다. 일단 주인공과 대립하는 인물이라면 선과 악에 관계없이 모두 반동 인물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흔히들 말하는 선의의 라이벌 또한 반동 인물에 들어가며, 둘 다 선(善)역 또는 악역이지만 가치관이나 입장의 차이로 인해 대립하거나, 주인공이 악인인 작품에선 그 주인공에 맞서는 선인 또한 주인공의 대척점이므로 반동 인물이다. 자료출처: 나무위키  



5장 누구도 자신의 희망이 되어달라고 강요할 수 없다 - 99쪽

정지우 감독의 영화 〈4등〉은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 2016년 4월 13일 개봉한 영화. - 글, 이다혜

초등학생인 수영 선수 준호는 대회만 나가면  4등을 한다.

1등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준호 엄마는 새로운 코치 광수를 들이고, 엄한 체벌까지 동원해 가며 준호를 1등으로 만든다.

광수 역시 과거 체벌의 피해를 입었었고, '폭력이 폭력을 낳는' 문제를 드러낸다.  

영화는 자식에게 1등과 최고만을 강요하는 극성 부모들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당신은 성적을 위해 어디까지 희생할 수 있나요” -  결국 준호는 맞기 싫어서 수영을 그만둔다. 그러나 준호는 여전히 수영을 좋아한다. 아무도 없는 밤, 수영장에 몰래 가서 혼자 수영을 한다. 좋아하는 수영을 계속하기 위해 잘해야 하지만, 모두가 각성만 하면 1위를 할 수 있는 좋아하는 마음과 뛰어난 실력을 동시에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면 가장 행복하겠지만.



6장 미우나 고우나 곁엔 사람들이 있다 - 119쪽

영화 <하늘의 황금마차>는 제주 4.3 사건을 다룬 영화 <지슬>로 유명한 오열 감동의 작품이다. - 글, 이주현

<하늘의 황금마차>는 죽음을 앞둔 말기 암 환자인 한 노인과 3명의 동생들의 이야기로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로드무비 장르다.

큰형은 치매 증상까지 보이며 간암 말기 환자로 죽음을 앞두고 있다.

둘째는 젊은 시절 노름에 빠져 집안의 돈을 날려 먹고 떠났다 쓱 돌아온다.

셋째는 큰형 집에서 함께 살며 형을 돌보고 있으나, 매일같이 집문서를 어디 뒀는지 물어본다.

막내 '뽕똘'은 동네 동생들을 모아 '하늘의 황금마차'라는 그룹사운드(밴드)를 결성, 매니저를 자처하지만 껄렁한 이들이 모였다.

큰형은 모여서 싸움이나 하는 동생들을 지켜보다 "같이 여행 가는 놈한테 이 집을 주마!'라고 불쑥 한마디 던진다.



<하늘의 황금마차> 영화에는 표현의 미화가 없다.

큰형은 기저귀만 찬 채로, 밴드 멤버들 잠옷 바람으로 여행을 떠난다.

영화는 누추함과 자유로움을 오간다.

현실의 모든 가족이 화목한 건 아니고, 모든 밴드가 단합이 잘 되는 건 아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이웃과 가족들에게 꽤나 민폐를 끼치며 살아가는 적당히 속물인 사람들이다.

<하늘의 황금마차>는 아프고 가난하고 잘난 것 없는 이들이 어쩌다 길을 떠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가족을 다시 생각하고 인생을 바라보는 이야기다. 사회적 기준으로 보면, 이들이 처한 표면적 상황은 우울하고 암담할 수 있다. 집도 돈도 변변한 직업도 없고 우애도 없다. 큰형의 집문서를 차지하기 위한 속내까지 투명하게 드러내고 떠난 길이다.

매번 부대끼고 싸우지만 이들 곁엔 미우나 고우나 함께 걸어갈 가족과 친구들이 있다.

그 길 끝에서 철없던 어른들은 무언가를 깨닫는다.

이들의 유랑은 유치하고 궁상맞지만 슬프고 우울하진 않다.


“아름다운 죽음에 대한 힌트” - 영화는 큰 형이 죽고, 남은 형제들과 밴드 멤버들이 형이 남기고 간 집을 다 함께 수리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끝난다. 남겨진 사람들에겐 새로운 보금자리는 물론 의지할 사람들이 생겼다.

현실은 죽음에 대해 학력, 직업, 소득, 지역 등에 따른 죽음의 불평등성을 '잘 살고 잘 죽어야 한다'(웰다잉)는 윤리적 언어의 표현으로 가리거나 정당화한다. 아프지만 진실이다. 삶이 평등하지 않은 것처럼 죽음 또한 평등하지 않다.

존엄한 돌봄을 받다가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선 경제적, 사회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한다.

결국, 저자 이주현은 '불평등한 삶의 조건을 개선하려는 노력 없이 '좋은 죽음'은 요원하다고 말한다.



7장 가깝고도 먼, 고독사와 생의 의지 -139쪽

이광국 감독의 영화 〈소주와 아이스크림〉은 고독사를 다룬 영화다. - 글 이다혜

무더운 여름날, 주인공 세아는 보험을 팔기 위해 지인을 만나지만, 지인은 살갑게 구는 세아에게 모진 말을 한다.

상처받은 세아는 일주일 넘게 연락이 되지 않는 언니를 찾아가지만, 연락이 닿지 않는다.

집 앞에서 무작정 언니를 기다리던 세아는 앞 집 아주머니로부터 곁에 수북이 쌓인 소주 공병을 들고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다 달라는 뜬금없는 부탁을 받는다. 세아는 보험 가입을 받기 위해 누구의 부탁이든 들어주며 살다 보니,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소주병 안에서 돌돌 말린 종이를 발견한 세아는 그것을 끄집어내 읽는다.

'원망하지 않기. 원망하지 않기. 포기하지 않기. 대책을 세우기. 술을 끊기. 웃음을 잃지 않기. 깨끗하게 떠나기.' 낭독하는 목소리를 타고 우리는 글 쓴 여자의 방으로 들어선다.

집세가 밀려 있어 집주인에게 사정하지만 집주인은 냉담하고. 그녀가 소주병 입구에 대고 숨을 불어넣는 소리가, 기묘하게도 소주병을 팔러 간 세아의 귀에 들어온다. 이제 세아는 계속 엿듣는다.

여자는 딸에게 전화하지만 딸도 그녀를 도울 생각이 없다. 연결을 강요할 순 없다. 누군가에겐 생존의 위협이기에.

영화 〈소주와 아이스크림〉은 가족으로부터 외면받은 사람을 통해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인을) 외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이들의 사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소통의 부재는 고독사로 이어지는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인 셈이지만, 연결을 강요할 수 없는 이유를 영화에서는 동시에 보여준다.

사회가 더 편해지고 빨라졌다.

소통이라는 단어도 전보다 더 많이 쓴다.

SNS는 언제나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그런데 정작 옆에 있는 사람이 어떤 상태인지는 전보다 더 모른다.

멀리 있는 유명인을 훨씬 더 가깝게 느끼고,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어떤 상태인지는 더 모른다.

이 사람을 제쳐두고, 소통하고 싶어 하는 욕망은 SNS나 쳇 GPT를 통해 직접 상대하지 않고 대화를 즐긴다.


“나의 고독에 안부를 묻다” - 이 영화는 죽음이 아니라 삶, 살고자 하는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감독은 무기력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만을 말하고자 하지 않았다. 삶의 매 순간 살고자 애쓴 모습까지 담아냈다.

고독사를 다루는 출발점은 서로 안부를 물어주는 데서부터이다.



8장 양심을 허락받아야 하는 세상 - 159쪽

영화 〈얼음강〉에서 민용근 감독은 양심에 다른 종교적 신념으로 병역을 거부하는 한 청년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 글 이주현

사회적 합의점을 찾기 어려워 보이는 주제다. 감독은 군대도 다녀왔고, 종교인도 아니다.

우연히 알게 되고 만나게 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의 이야기가 자신의 마음에 어떤 파문을 일으켰다고 한다.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몸의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1년 6개월간 수감 생활을 하고 나면, 평생 '전과자'라는 이름으로 인생의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 살아가는 것 또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주인공 선재는 입대를 앞두고 처음으로 엄마에게 비밀이 생겼다.

고민 끝에 총을 들 수 없다는 종교적 신념을 따르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러나 선재를 좋아하는 연주가 집 앞에서 기웃거리는 걸 본 엄마는 아들 지갑에 용돈을 몰래 넣어주려다 입대 일이 하루 남은 영장을 발견하게 된다.

입대를 거부하면 감옥으로 가야 한다. 선재는 각오가 되어있지만, 엄마는 사랑하는 아들을 감옥에 보낼 수 없다.

이미 남편과 큰아들까지 같은 이유로 옥살이를 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선재만은 다른 선택을 하길 바랐다.

"그 착한 애가 도대체 왜 감옥에 가!"라며 소리친다.



“한국에서 군대가 무엇이기에” - 감독은 부모와 자식의 마음을 편견 없이 고루 살핀다.

무엇이 옳다고 주장하거나 일방적인 정보를 전달하지 않는다. 논리적 설득 대신 감성적으로 표현한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문제는 유독 이성적으로 접근하기보다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얼음강> 영화 마지막 장면에 뜨는 자막엔 다음과 같이 쓰여있다.

'종교적 평화주의적 신념 등의 이유로 병역 거부를 선택한 젊은이들이 지금도 매년 700명 이상 감옥으로 보내지고 있다.

UN 인권이사회는 한국 정부에 대체복무제 도입을 강력히 권고하고 있지만 아직 받아 들어지지 않고 있다.'

영화가 개봉됐던 2013년 상황이다.

그리고 2018년 11월 1일, 대법원에서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 사건에 처음으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

1939년 이래 지난 80년 동안 총을 드는 대신 감옥을 택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수는 1만 9천7백 명에 달했는데, 더 이상 그 수가 늘어나지 않게 된 것이다.

총을 들지 않겠다는 것은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고 평화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는 여전히 전쟁 중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까지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다.

당연히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강해져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는다.

어쩜 전쟁을 거부하는 목소리와 실천이 더 필요한 때인지도 모른다.



9장 장애를 은유가 아닌 실제로 표현하기 - 179쪽

박정범 감독의 영화 〈두한에게〉는 장애를 가진 두한과 가정 형편이 어려운 철웅의 우정을 그린 영화다. - 글 이다혜

겉모습도 환경도 다르지만 이리저리 부딪히고 상처받으며 성장해 나가는 10대 남자아이들의 일상이 덤덤하면서도 재치 있게 그려졌다.

우리가 지나온 성장통이기에 더욱 와닿는다.

뇌 병변 장애를 가진 두한은 경제적으론 부유하지만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

두한의 유일한 친구 철웅은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학교생활에서도 곤란이 크다.

두한이는 철웅이에게 많은 것을 의지한다.

철웅이는 두한이 집에 놀러 갔다가 태블릿 PC를 보고 충동적으로 훔치고 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 갖는 함의를 보여주는 설정이기도 하다.

영화의 다음 이야기는 이 책에서 이어지지 않는다.

대신 <두한에게> 이후 10년, 장애인을 향한 시선의 변화들을 담고 있다.

<학교 가는 길>은 발달 장애인의 교육권부터 공동체의 가치가 충돌하는 과장까지 두루 살피는 작품.

뇌성마비 장애인 배우 김문주 씨가 출연한 <대륙 횡단>, 구본권과 김민아 등이 공저한 <<별별 차별>>, 드라마로써 큰 사랑을 받은 자폐아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캐리커처 작가이자 다운증후군 배우인 정은혜가 출연한 <우리들의 블루스> 등의 작품이 짤막하게 소개된다.


“왜 ‘장애인 흉내’를 내는 것에 손뼉 치는가” - 장애인으로 존재하지만 사회 구성원으로 존재하기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 작가이자 코미디언인 호주의 스텔라 영은 "장애는 그가 지닌 개성의 일부분이지 그를 규정짓는 전부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희귀 유전병으로 평생 휠체어에서 살았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며 서로의 삶에 개입하는 전개 속에서 우리는 장애와 비장애의 이분법적 구분이 아니라 여러 면에서 제각기 다른 위치에 서있을 뿐이다.



10장 모르는 척하고 싶겠지만, 당신도 감시당하고 있어요 - 199쪽

신연식 감독의 영화 〈과대망상자(들)〉은 감시사회 속에서 개인의 불안을 다룬다. - 글 이주현

주인공 우민은 오래 사귀지도 않는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고한다. "내 옆에 있으면 위험해져." 그는 자신이 감시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자친구조차 자신을 감시한 것이 아닌지 의심한다.

이 단편영화는 거대한 농담 같다.

감시사회 속 개인의 불안을 과대망상과 연결 지으면서 주인공은 처음엔 사람을 의심하고, 다음엔 사회와 시스템을 의심한다.

영화는 보이지 않는 시스템을 의심하는 사람의 이야기 혹은 그런 사람을 과대망상자로 치부하고 배격하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다.

신연식 감독은 "의심하지 않았던 것을 의심하게 하고, 질문하지 않았던 것을 질문하게 하고, 꿈꿔보지 못한 것을 꿈꾸게 하는 열 가지 영화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인권 감수성이 한층 벼려지고 깊어질 것이다."라고 말한다.  


“욕망 자체를 거세당한 세대” - 영화가 집중하는 것은 고도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나의 소비 단위로 설정된 개체인이 시스템의 설계에 예속된 채 자신의 정체성을 알지도 못한고 살아가는 현실이다.

우리는 주류에 대항하는 이단아가 될 수 있을까?

디지털과 패놉티콘(panopticon)에서 사람들은 고문받는 것이 아니라 트윗하고 포스팅한다.

심리 정치적 조종이 권력의 새로운 콘셉트란다.

우리는 소통과 정보에 도취하여 혼미한 상태로 정보의 지배를 받고 있다.

자발적으로 투명해진 나머지 '유리 인간'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패놈티콘: 패놉티콘(panopticon)은 영국의 철학자이자 법학자인 제러미 벤담이 제안한 일종의 감옥 건축양식을 말한다. 패놉티콘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본다'를 뜻하는 'opticon'을 합성한 것으로 벤담이 소수의 감시자가 모든 수용자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감시할 수 있는 형태의 감옥을 제안하면서 이 말을 창안했다.

벤담은 자신의 제안서에서 이 감옥의 본질적인 장점을 한 단어로 표현하기 위해, "진행되는 모든 것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는 "패놉티콘"이라고 부를 것이라고 하였다...

벤덤의 개념은 실제 감옥 건축에서 보다 철학적으로 더 고찰의 대상이 되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는 그의 저서 《감시와 처벌》(Surveiller et punir, 1975)에서 벤 담의 패놉티콘 개념을 다시 부활시키고 고찰하였다. 푸코에게 있어서 패놉티콘은 벤덤이 상상했던 사설 감옥의 의미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것은 새로운 근대적 감시의 원리를 체화한 건축물이었고, 군중이 한 명의 권력자를 우러러보는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한 명의 권력자가 다수를 감시하는 '규율 사회'로의 변화를 상징하고 동시에 이런 변화를 추동한 것이었다. 푸코의 패놉티콘은 현재 정보화 시대의 '전자 감시'와 많이 흡사하다....  자료출처: 위키백과


  

인권 영화 프로젝트 20년의 기록 - 2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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