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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meday Jan 05. 2025

『우리말, 지친 어깨를 토닥이다』 조현용 저

소통이 어려운 아픈 곳을 토닥여 주는 글에서 삶의 위로를 받는다.

『우리말, 지친 어깨를 토닥이다』 책은 

언어학자인 조현용 교수가 세상을 바라보며 소통을 전하는 책이다.

저자는 '나를 돌아보고, 우리를 둘러보게' 이끌어 주고, 

우리는 그의 절제된 한국어를 통해 많은 것들과 만난다.  



|제1부| 나, 돌아보다


쉬다 - 세상의 아름다움을 깨닫는 시간

쉰다고 하는 것은 숨을 돌리고 삶을 돌아보는 것이다. 

쉬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을 멈추어 보는 것이다. 


내 코가 석 자! - 내 삶에 대한 깊은 고민

'내 코가 석자'라는 말은 자신을 먼저 생각해 봐야 할 중요성 일깨워 준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 부처의 유아독존(唯我獨尊),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도 모두 자신이 귀한 존재임을 발견하고 선언하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스스로 귀하게 여기는 것은 이기적인 생각이 아니라 이타적인 생각의 출발점이다. 


나쁜 놈 - 내가 알고 있는 나

우리는 '나 정도면 괜찮은 사람', '난 그래도 잘 살아왔어', '내 행동엔 다 이유가 있어' 등의 착각을 하면서 산다. 

저자가 아는 가장 '나쁜 놈'은 이런 몇 가지 착각에 대한 답일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 어렵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위와 같은 착각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이 그동안 해온 해악, 잘못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은 아는 바가 그다지 없이 단편적인 모습으로만 평가하려 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제일 나쁜 놈은 바로 '나'다. 남을 쉽게 평가하고, 비판하고, 비난하고, 단죄한 내가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을 마음속에 떠올려 본다. 용서하는 삶을 살고, 저지르는 잘못의 양을 줄여가야겠다. 

 

진짜 가짜 - 진짜인 척하는 가짜

거짓인 '가짜'와 참인 '진짜'는 한자어이다. 어떤 경우에는 가짜를 구별해 내기가 어렵다. 

학창 시절엔 무슨 상표의 옷을 입었는지, 어떤 신발을 신었는지가 큰 관심사였다. 

저자가 당시 가정 형편에 맞는 가짜 '조다쉬' 청바지를 입었을 때, 사람들은 가짜인 것을 잘도 알아차렸다. 그는 마치 자신이 걸친 모든 것이 가짜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나이를 먹고 생활이 안정되면서 가짜에 손이 가질 안는 것은, 스로에게 맞지 않는 명품들로 굳이 자신의 겉모습을 채울 필요가 있을까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우리의 마음이 입고 있는 가짜 '조다쉬'를 바라보면서...

 

값어치 - 세상에 필요한 내 가치

'값어치 있다'는 말은 비싸다는 의미보다는 그 물건은 그 값에 맞는다는 의미다.

값어치 있는 삶은 다른 사람을 따라 하고, 부러워하고, 그렇게 되지 못해 아쉬워하는 삶이 아니다. 

자신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지 말고 자신의 가치에 맞게 살아야 한다. 저마다의 재능을 세상을 위해서 귀하게 사용하면 누구나 값어치 있는 사람이다. 


최선(最善) - 가장 착한 아름다움

최선의 반대말은 최악(最惡)이다. 즉 가장 나쁜 것의 반대말이다. 

최선을 다하는 것은 '선한 것을 위해서 노력한다'는 의미가 된다. 

최선이라는 가치 속에 담긴 선한 목적(가장 착한 아름다움)은  모든 이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미치다 - 밑 치고 미치면 미칠 수 있다는 것

'미치다'는 '정신이 이상하다'는 듯과 '도달하다'라는 뜻이 있다. 

그리고 단어를 잘 분석해 보면 '밑을 치다'라는 의미의 '밑 치다'라는 표현도 발음이 같다. 당연히 '밑친 사람'은 올라갈 곳밖에 없다.

이 세 가지 의미는 원래 다른 단어들이다. 그러나 비슷한 발음의 표현들이 보여주는 깨달음의 세상이다. 

스스로 하고 있는 일에 자신의 가슴을 비추어 보는 일이 어쩌면 나를 '미치게 하는' 시작이 아닐까.


불광 불급(不狂不及)이란 한자성어는 '미치지 않고서는 미칠 수 없다' 즉, '미쳐야 미친다'는 뜻이다. 

한자에서는 '광'과 '급'이 동음이의어가 아니지만 한국어에서는 동음이의어여서 절묘한 느낌을 주는 표현이 됐다. 


발이 넓다 - 아는 양보다 아는 질이 중요

'발이 넓다'는 말은 아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인맥이 좋다는 의미도 된다. 

하지만 인간관계가 넓어지면 우리는 나 아닌 모든 사람을 남으로 만든다.

사람들은 유전적으로 약 150명과의 인간관계가 가장 자연스러운 사회집단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자연스럽다는 말에는 행복을 공유할 수 있다는 의미가 포함되지만, 150명 정도의 인간관계에 충실하게 되어 있는 사람들이 수많은 인간관계에 얽혀 있으면 그야말로 인간의 본성인 '서로 어우러짐'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가족 이기주의가 팽배하게 되고, 웬만한 남의 슬픔은 내 슬픔으로 다가오지도 않는다. 

저자는 발이 넓은 사람이 되기보다 아는 이에게 충실한 사람이 되자고 말한다. 


감정의 고향 - 늘 나를 돌아보게 하는 곳 

저자는 어릴 때 남산을 뛰고 또 뛰었다. 서울에 살았지만 늘 남산 밑에 살았다.

좀 더 나이를 먹고, 이 산속은 노래를 부르고, 소리도 지르고, 종종 눈물이 나기도 했던 피난처였다.

지금은 몸담고 있는 학교의 교수회관에서 남산의 저녁놀을 바라본다. 

사람은 누구나 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감정의 고향이 있다. 


첫 - 설레고 애틋한 처음 

"첫'은 어떤 일정한 구조에서 벗어나는 어휘인 보충법에 해당한다. 시작이라는 의미,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이라는 의미가 있다. 

'첫'이 들어간 '첫 번째 사랑', '첫날', '첫날밤' 같은 어휘는 왠지 설레고 애틋하다.


자식(子息) - 숨 쉬는 것만으로 기쁨인 존재

우리에게 자식은 여러 가지 이유로 기쁨이 되기도 하고, 고통이 되기도 한다. 궁극적으로는 스스로 깨달음의 근원이 된다.

태어나서 숨을 쉬고 있는 것만으로 나에게 기쁨이 되는 존재이니 그 자체만으로도 기쁨일 수 있다.

부모는 자식을 어떠한 조건 없이 사랑하는 존재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식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있다. 그래서 자식은 우리에게 아픔이 되기도 한다. 


아버지 - 외롭고 그리운 이

사실 아버지는 슈퍼맨이 아니다. 똑같은 인간에 불과하다.

언제부터인가 아버지는 슈퍼맨이 되어야 했다. 요즘에는 예전보다도 더 큰 능력이 있어야 한다.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는 역할뿐 아니라 자상한 아빠의 모습도 더 요구된다. 

저자 조현용은 아버지로 사는 일이 때로는 힘이 들지만, 자신에게 '즐거운 콤플렉스'가 되기를 희망한다. 


‘피에타’와 ‘헬로 고스트’ - 부모가 있는 사람은 사람다워야 한다

'헬로 고스트'는 고아로 자란 한 청년에게 '변태 할아버지, 골초 아저씨, 울보 아줌마, 만화영화를 좋아하는 아이'의 귀신들이 눈에 보이는 설정이다. 그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그 귀신들을 다시 만났을 때, 그들이 모두 자신의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 형이었음을 알게 되는 이야기다. 그들의 소원은 모두 자신을 알리려고 보내는 죽은 이의 신호였다. 

청년은 그제야 사고로 죽은 가족들이 한시도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았었음도 알게 된다. 

부모님은 돌아가셨다고 나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것. 부모 없이 태어난 자식은 없다는 이야기가 가슴을 아프게 한다. 


피에타의 주인공은 부모가 살아있든, 돌아가셨든 간에 마치 부모는 나와 함께 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 

부모 없이 자랐기 때문에 악행에도 거리낄 것도 죄책감도 없다. 그저 닥치는 대로 살아갈 뿐이다. 완전히 악마 같은 존재이다. 

그런 주인공에게 그를 낳자마자 버렸다고 주장하는 어머니가 나타난다. 처음에는 강하게 거부하지만 점차로 마음을 열게 된다.

사실 그 어머니는 주인공 때문에 자살한 사람의 어머니였고, 가족 잃은 고통을 느끼게 해 주려고 일부러 어머니인 척을 했던 것이다. 

결국 그 여인은 주인공 앞에서 자살한다. 오열하던 주인공은 어머니를 묻으려다 모든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속죄의 마음으로 자신이 괴롭힌 이의 차 아래에서 자살을 한다. 


부모가 없는 사람은 없다.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을 뿐이다. 

'피에타'와 '헬로 고스트'의 영화를 보고 나서, 우리는 모두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제2부| 우리, 둘러보다


생각 - 서로를 위한 마음

생각이 없었다면 문명의 발달도 없었을 것이다. 

서로에 대한 마음이 생각이라면 어떤 생각이 좋은 생각인지도 알 수 있다. 

서로를 위한 마음, 도우려는 마음이 좋은 생각이다. 

서로를 생각하고, 서로 사랑하고, 우리말 '사랑하다'라는 말의 어원이 '생각하다'인 것은 생각의 소중함을 보여 주는 것이다. 


거짓 - 겉으로만 하는 짓

거짓을 분석해 보면 '겆'을 찾아낼 수 있다. '겆'은 '거죽'과 통하는 말인데, 살이 아니라 겉에 있는 가죽이라는 뜻이다. 

거죽은 모음을 바꾸어 '가죽'이라는 어휘가 되기도 한다. 

우리말에는 이와 같이 모음을 바꾸어 어휘를 만드는 예가 많다. '넣다/놓다', '앉다/얹다, '마리/머리', '맑다/묽다 등이 대표적이다.

거짓을 '겉'으로 하는 것이라고 보면 거짓의 의미에 대한 실마리가 풀린다. 

즉, 거짓은 겉으로만 하는 것이고, 진솔한 마음을 담지 않는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거짓은 속에 있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고, 마치 속에 있는 말처럼 이야기하는 것이다. 

'속이다'라는 말의 어원이 ' 속에 있는 말'처럼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의견은 민간어원으로 보이지만 발상은 재미있다. 

종종 민간어원이 우리에게 반성과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원수, 원쑤, 웬수 - 사랑해야 할 사람, 사랑하는 사람

북한에서 '원수'는 김일성 주석을 부르기 때문에 '원수'를 사랑한다는 말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우리가 '원수'라고 부르는 적대감 가득한 대상을 북한에서는 '원쑤'라고 한다. 

남한에서는 '원쑤'라는 표현은 없지만 '원수'에서 의미가 분화된 '웬수'라는 표현은 흥미롭다. 물론 사전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사전에 없다고 우리말이 아닌 것은 아니다. 사전은 늘 보수적인 경향이 있다. 

우리가 '웬수'라고 표현하는 사람은 주로 '남편'과 '자식'인 것 같다. '자식이 아니라 웬수!'라는 표현도 한다. 

사람들에게 '원수'가 줄어들고 '웬수'가 많아지면 세상은 아름다워질 수 있지 않을까? 주변의 '웬수'들을 생각해 보라. 


사이가 좋다 - 서로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사람

우리말의 '사이가 좋다'라는 말은 '인간'이라는 상황에 딱 맞는 표현이다. 각각의 사람이 좋은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의 사이가 좋은 것이다. 두 사람이 각기 아무리 잘났더라도 사이가 안 좋은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다른 사람의 필요성을 덜 느끼기 때문이다. 혼자라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모자란 사람 취급하면서 사이가 좋아지길 바랄 수는 없다. 

'사이'는 서로 필요로 하고 서로를 배려할 때 좋아진다. 반대로 이야기하자면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려 노력하고, 서로의 배려가 기쁘게 받아들여질 때 사이는 더 좋아진다. 


따라 하다 - 좋은 점을 닮아가는 것

따라 하다 보면 닮게 된다. 외국어를 배우면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문화도 닮으려고 해야 한다. 많은 사람을 따라 하고, 닮아가는 것은 좋은 일이다. 부모와 자식도 닮는다. 사랑을 하면 닮는다고 한다. 하찮은 인간이 하나님을 닮았다니 감사할 일이다. 우리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용서해야 한다. 


토닥임 - 힘든 어깨를 감싸주는 것

누군가 내 힘든 어깨를 감싸주고, 토닥거려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힐링'을 유행처럼 만들어 놓았다. 

요즘 치유를 위해 유행하는 것에는 '한옥', '옛 노래', '올레길' 등이 있다. 주로 옛 것에 대한 그리움이 치유의 조건이 되는 것이다. 

예전에 보던 책을 다시 들추어 보는 일도 재미있다. 행마다 발견되는 메모에서 옛 생각을 만나게 된다. 

힐링의 시작은 과거에서 지금을 만나는 것이다. 추억을 되돌아보며 외로움을 치유해 보시길 바란다. 


퇴계 선생- 다른 이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느낀 이

퇴계 선생의 아버지는 퇴계가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돌아가신다. 퇴계 선생은 어머니의 엄격함과 자상함으로 외로움을 이겨내며 성장한다. 퇴계 선생의 결혼 생활도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았다. 퇴계가 27세 되던 해에 부인이 둘째를 출산지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난다. 아내를 보내는 슬픔은 아버지 없는 외로움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고통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을 바라보았을 애틋한 선생의 눈빛이 느껴진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결혼을 앞두고 그만 비명횡사한다. 그때 퇴계의 나이는 48살이었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지극한 아픔을 견뎌내야 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퇴계 선생은 말년에도 귀하게 생각하던 증손자가 두 돌 무렵 세상을 떠나 무척 상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퇴계는 사회적으로도 갑자, 기묘, 을사사화를 겪는 고통의 시기를 산다. 우리 역사상 지식인에게 가장 비참한 사건 중 하나가 '사화'인데, 그 사화를 세 차례라 겪었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것이 두려운 사회, 스스로가 늘 생각을 가두며 살아야 하는 세상은 불행한 사회이다. 자기 검열 속에 자신을 얽매어 놓게 되는 것이다. 

퇴계의 삶을 보면 생로병사의 고통이 더 깊게 다가온다. 내 고통이 커질수록 다른 이의 고통도 내 고통처럼 느껴져야 한다. 그래서 더 인간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깨달음이 생겨야 한다. 퇴계 선생의 삶이 오늘 우리의 고통에 답을 들려주고 있다. 


간디의 자서전 - 진리에 겸손하게 다가간 이

간디의 글은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강렬함보다는 잠시 생각에 잠기게 되는 잔잔함이 있다. 

간디의 소박함과 겸손함은 그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간디의 자서전을 읽으면, 스스로 솔직해지게 된다. '나는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가?' '그동안 나를 속이고, 사람들을 속이고 살아온 일들이 부지기수가 아니던가?' 부끄럽다. 진리를 찾아 나서고 싶다. 


동네 목욕탕 - 추억 여행의 장소

동네 대중목욕탕 '만복탕'은 어릴 때의 추억을 그대로 안겨주지만, 동네의 가게들도 하나둘씩 문을 닫아가고 있다. 

옛 모습의 세탁소도 녹슨 간판만 남아 있다. 6~70년대와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는 가게들도 사라지고 있다. 가게가 나간 자리는 카페나 편의점이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 추억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 

옛 모습의 정육점, 약국, 목욕탕도 이제 모두 나이 드신 분들이 문을 열고,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저자는 아이들에게 동네에 남아 있는 옛 기억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이에게 다음 주에 '만복탕'에 함께 가자고 했으나 아이는 싫단다. 


친구 엄마의 목소리 - 들을 일이 없어진 소리

예전에는 친구의 가족도 다 가족이었다. 

이젠 아무 데서도 걸려오지 않는 집 전화를 보면서 예전에 자주 듣던 그리운 표현들이 떠오른다. 

친구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얘야, 전화 왔다. 전화받아라!', '어머니 건강하시죠?', '너희 어머니도 안녕하시지?' 등, 무척 그립다. 


노후 준비(老後 準備) - 필요 없는 게 좋은 것

모두에게 노후가 걱정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예전의 노후 준비는 자식을 잘 키우는 것, 마을 사람과 잘 지내는 것이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굳이 덧붙이자면 건강을 잘 유지하는 것 정도였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노후 준비가 반드시 필요한 세상이 되었다. 

예측할 수 없는 일로 문제가 생기는 것에 대처하기 위해 보험이 필요하고, 은행이 필요한 사회가 됐다. 

그럼에도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족의 가치, 노년의 가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았다.  


스마트폰 - 헛똑똑이가 될 수 있는 전화 

현대는, 손 안에서 정보를 찾고, 모르는 길과 지하철 시간도 알려주고, 사진기가 되기도 하고, 책도 되고, 영화관, 음악 감상실도 되어주고, 은행 업무도 볼 수 있고, 지갑의 역할까지 하는 스마트폰이야말로 천사 같다. 

하지만 한시도 스마트폰을 손에서 떼어 놓기 어렵다. 집에 와도 휴가를 떠나도 일에서 해방되는 것 같지 않다. 혹시 전화를 받지 못했을까 불안해하고, 내 정보를 다른 사람이 알아낼까 두렵다. 어딜 가든 추적이 가능하니 종종 내 손에 악마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악마는 늘 모습을 바꾸면서 우리의 곁에 있다. 

어려운 숙제이지만, 천사의 측면을 더 사용할 수 있도록 스마트폰 제조사들을 포함하여 모두가 함께 이야기하는 수밖에는 없어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라면 가정과 학교의 고민이 더 깊어져야 할 것이다. 


별 - 신비롭고 재미난 신화 

별을 보지 않고 지내는 우리의 삶이야말로 '별 볼 일'이 없는 삶이 아닌지. 

우리말에 빛에 해당하는 말에 '비읍'으로 시작하는 말이 많다. '별, 빛, 볕, 밝다, 반짝거리다, 번쩍이다, 번개, 반딧불이 등.

시골길을 걷다 보면 어두컴컴해서 앞이 안 보이면 안 보일수록 별빛이 반갑다. 하늘이 온동 별이고 빛이다. 

예전에는 땅이 어두워지면 세상은 온통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되었다거나 은하수는 하늘에 흐르는 강이고, 그곳에 사는 용의 이야기. 그리고 1년엔 한 번밖에 만나지 못하는 견우와 직녀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를 들으며 훌쩍이던 어린 소녀도 있었을 것이다. 

윤동주 시인이 별을 헤며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아름다운 이름을 기억하듯이 별이 만들어 놓은 신화를 직접 만나고 싶다. 


스펙(spec) - 미래를 위한 경험 

스펙은 2004년 신어 자료집에 나오는 데 뜻은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학력, 학점, 토익 점수 따위를 합한 것을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다. 영어 'specification'을 줄여서 사용하는 표현으로 어원을 밝히고 있다. 

어원상 추론해 본다면 자신에 대한 자세한 '설명서'를 '스펙'이라고 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스펙을 쌓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스펙이 나한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가 중요하다. 

함께 모여 책을 읽고, 토론을 하고, 언어를 통해 서로의 감정을 나눈다면 점수로 평가받는 스펙이 아니라 진정성으로 평가받는 스펙이 될 것이다. 


일 - 즐거워야 잘할 수 있는 것

이왕 하는 일이라면 애정을 갖고 하는 것이 좋다. 그러다 보면 일이 더 좋아질 것이다. 

자신의 일과 관련된 물건이나 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일이 즐거운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관광(觀光) - 빛과 어둠을 함께 보는 것

관광이라는 말은 여행과는 왠지 다른 느낌이 있다. 觀光이라는 말은 빛, 즉 밝은 곳을 본다는 의미다. 

하지만 최근 올레길이니, 힐링 여행이니 하는 말을 떠올려 보면 관광의 개념을 달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밝은 곳이 아닌 어두운 곳도 찾아다니는 것이다. 세상의 밝은 빛과 어두움까지 몸소 체험하는 귀중한 경험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행(旅行) - 익숙한 것과 헤어지는 순례

우리는 살면서 익숙한 곳을 조금씩 벗어나게 된다. 살던 집을 떠나고, 다니던 학교를 떠나고, 부모님의 곁을 떠난다. 

어떨 때는 반대로 익숙한 모습들이 예상치 못하게 나를 떠나기도 한다. 친구들이 그렇고, 선생님이 그렇고, 가족이 그렇다. 슬픔을 한가득 안겨 놓고.

우리네 삶이 순례라는 것을 늘 깨닫는 것이, 우리를 깨어 있게 한다. 

익숙한 것과 헤어져야 하는 우리네 인생은 순례일 수밖에 없다. 

저자 조현용은 여행을 갈 때마다 순례라는 단어를 가슴에 담고 간다. 

자신과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의 편협함과 교만함을 들여다본다. 

이해할 수 없는 삶과 문화에 대한 우월감, 지나치게 높게 우러르던 문화에 대한 반성도 하게 된다. 

어떤 여행지에 가든지 오늘은 무엇을 배울 것인가 하는 기대를 갖는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 부모가 많은 따뜻한 세상

임금과 선생과 아버지는 한 몸이라는 군사부일체에서 부모님이야말로  내가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는 존재이다. 즉, 임금이나 선생을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따르라는 의미인 것이다. 그런데 현대의 임금이나 선생은 '나의 부모'처럼 되려고 하지 않는 듯하다. 정말 많은 반성과 노력이 필요하다. 선생님이 부모 같고, 임금님이 부모 같다면, 더 할 수 없이 좋은 세상일 것이다.


선생과 스승 - 인생의 마른 뿌리에 물을 주는 사람 

先生이라는 말은 나보다 먼저 태어난 사람이라는 의미다. 요즘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면 가장 일반적이 호칭이 선생인 것 같다. 예전 경제 성장기에는 모르는 사람을 부를 때, 무조건 '사장님'이라고 부르던 경우가 많았다. 요즘엔 선생님이 좋은 호칭인 것을 보면 사회가 물질 만능에서 좀 벗어나고 있는 것일까? 

소크라테스가 죽기 전 제자들과 나눈 대화를 엮은 <<파이돈>>이라는 책을 보면, 그 내용에도 감탄하지만,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제자들과 대화를 이어간 그 열정에 더 감동하게 된다. 올바르게 살기 위해 참 스승과 나누는 대화만큼 값진 것이 있을까? 인생의 마른 뿌리에 물을 주는 스승의 말씀은 늘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한다. 


저녁놀 - 시간을 담은 따뜻한 빛

'단풍이 아름다운 것은 세월을 담았기 대문이다.' 세월의 힘을 깨닫게 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단풍처럼 세월을 겪으며 내면에 있는 빛을 찾는 일이다. 세월을 잘 살아낸 사람들에게 그 빛은 자신의 모습이 되어 나타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저녁놀처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세상을 비추는 것이다. 단지 겉모습의 화려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따뜻함이 있어야 한다. 


지옥(地獄) - 싫은 것이 많은 곳 

천국과 지옥의 정의는 모두 현재의 삶에서 비롯된다. 지금 생각하기에 좋으면 천국이고, 지금 보기에 견디기 힘들면 지옥이다. 천국에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천국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살아도 지옥인 삶은 불행하고, 불쌍하다. 어차피 내게 주어진 삶을 묵묵히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간이라면, 고통스러운 삶도 행복하게 바꿀 수 있도록 작은 것부터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빌다 - 주변을 감싸는 간절함

'빌다'는 부탁한다는 뜻이다. 잘못을 빈다고 하면 용서를 부탁하는 것이다. 

비는 것은 행위와도 관련이 된다. 빈다고 할 때는 주로 두 손을 비비게 된다. 신에게 빌고 있다는 말도 부탁하는 의미가 강하다. 손으로 빌면서 하는 부탁은 더 적극적인 행위로 보인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떠오르는 이들의 행복을 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누군가를 위해 빌 일이 많아진다. 몸도 여기저기 말을 안 듣는다. 가족에게도 예기치 않았던 문제가 생겨난다. 친구들의 슬픈 소식도 마음을 아프게 한다. 서로를 위한 기도는 서로를 아끼고 보호하게 한다. 


감정이입(感情移入) - 아픔과 기쁨을 함께 느끼는 본성

다른 사물이나 상황에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이 담기게 되는 것을 감정이입이라고 한다. 

생각이라는 것은 참 무섭다. 생각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고통스럽다. 우리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면서 고통스러워하는 것이다. 이미 내 생각은 내가 붙잡을 수 없는 곳으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일어나지 않는 일을 상상한다는 점에서 동물과 구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본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우리는 생각만으로도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 


하얀 찔레꽃 - 맑은 그리움으로 남은 향기이연실의 '찔레꽃'은 대중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명곡이다. 음악적 완성도만 높은 것이 아니라, 가슴 깊은 곳을 파고드는 애절함이 시대를 초월한 공감대를 형성한 노래다. 

엄마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지 /  배고픈 날 가만히 따먹었다오 / 엄마 엄마 부르며 따먹었다오 /  밤 깊어 까만데 엄마 혼자서 / 하얀 발목 바쁘게 내게 오시네 / 밤마다 보는 꿈은 하얀 엄마 꿈/ 산등성이 너머로 흔들리는 꿈 /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 / 찔레꽃 하얀 잎은 맛도 좋다 / 배고픈 날 가만히 따 먹었다오 / 엄마 엄마 부르며 따 먹었다오

하얀 찔레꽃은 순박하지만 힘이 없는 아이들을 닮았고, 여인을 닮았고, 서글픈 민초(民草)들을 닮았다. 

부모는 늘 자식이 어여쁘고 가엾다. 자식은 늘 부모님께 고맙고 죄송하다. 



|제3부| 그리고, 토닥이다


고맙다 - 미안한 마음이 많아서 아픈 말

내 자식이어서, 우리 부모님이셔서, 아내로 남편으로 옆에 있어줘서, 잘  자라서 고마운 것이다. 다른 거창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가득해서 더 고마운 것이다.


내면에 말 걸기 - 내게 새로운 울림을 주는 시간

나에게 말 걸기를 혼잣말이나 독백과 굳이 구별을 하자면 '나 스스로와 대화하기'라고 할 수 있다. 나에게 묻고 그 물음에 대답하는 방식으로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이때 제일 중요한 것은 '소리 내어'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은 말들은 논리적인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머릿속의 생각을 소리 내어 이야기해 보면 금방 자신의 오류를 발견할 수도 있다. 논리적인 오류 외에도 발음상의 오류도 덤으로 알게 된다.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고, 듣는 것과 같이 여러 감각을 동시에 사용하면 내게 새로운 울림과 힘을 줄 것이다. 나에게 말 걸기는 나를 자라게 하는 말 하기이다. 


의사소통(意思疏通) - 순리대로 상대와 공감하는 것

'바벨탑'의 이야기는 하늘에 닿으려는 욕심으로 탑을 쌓자, 하나님이 탑을 무너뜨리고 언어를 갈라놓았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언어가 나누어졌다. 종교에서는 사실이라 믿고, 과학에서는 터무니없는 이야기 취급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두 입장이 공통적으로  간과하고 있는 사실도 있는 듯하다. 왜 언어가 서로 달라지게 되었을까? 왜 사람들은 소통이 막히게 되었을까? 

'하늘의 뜻'대로 산다면, 즉 순리대로 산다면 공감은 쉽다. 순리를 거스르고, 자신의 이익만을 취하려 한다면 당연히 공감은 사라지고 말이 안 통하는 상태가 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바벨탑의 결말은 뿔뿔이 흩어지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소통이 막힌 결과다.


화법(話法) - 자신을 잘 나타내는 방법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말할 때 자기도 모르는 많은 버릇들이 나타난다. 스스로는 잘 못 느끼지만 청중의 위치가 되면 금방 보인다.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인간의 특징이다. 말을 해야 한다면 늘 자신의 말과 태도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게 자신을 잘 나타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토론(討論) - 배려와 비판이 조화로운 말하기

서양식 토론에 익숙해진 사람은 한국 사람의 토론이 답답하기만 할 것이다. 자신의 주장을 강력하게 이야기하고, 상대방의 논리적 허점을 파고들어 두 손을 들게 만들어야 토론이라고 생각하기 대문이다. 

한국의 토론에는 배려가 근간에 깔려 있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는 토론은 상대에 대한 무시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저자는 토론이기 대문에 더 예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만 미국에서 토론을 공부한 학자들의 의견은 좀 다른 듯이 보였다. 

토론의 목적은 합리적인 의견을 찾는 것이다. 서로의 의견을 모으는 것, 더 좋은 의견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토론 이후에 합의된 일을 같이 해야 하는 경우라면 더더욱 토론 이후의 상황도 생각해야 한다. 


말 같은 소리 - 소통이 안 되면 말이 아니라 소리

말이라는 표현 대신에 '소리'라는 표현이 쓰인 어휘들을 살펴보면, '잔소리'는 말이 아니라 소리일 뿐이다. 잔소리는 소리 중에서도 작은 소리를 의미한다. 부스러기 같은 말이니 핵심이 되지 않는 말을 의미한다. 

'한소리'도 '크게 나무라는 말'로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 없을 때 우리는 나무라는 말도 쉽게 '소리'로 취급을 해 버린다. 

'흰소리'는 터무니없는 말을 떠벌이는 '헛소리'와 통한다. 

'잔소리, 한소리, 큰소리, 흰소리, 헛소리' 등의 우리말 어휘들은 우리에게 깨달음을 준다. 


문맹(文盲) - 말로 하지 않아도 아는 사람

한글이 창제되기 전에는 문맹이 아닌 사람이 오히려 이상했을 것이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 입장에서 볼 때 왜 글을 배우는지 이해가 안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문자로 서로의 약속을 적는다는 것은 못 믿겠다는 표시이기도 하다. 각서, 차용증, 계약서도 다 그런 이유에서 쓰게 된다. 

장수로 유명한 많은 마을들이 문맹률이 높다는 것은 우리에게 또 다른 생각거리를 준다. 어떤 경우에는 글이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다. 

책을 덮고 더 생각을 깊게 하는 시간,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을 늘려보면 어떨까? 우리가 다시 문맹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으나 종종 글 없는 또 다른 지혜의 세계를 만나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감동 주기 - 우리는 같은 사람이라는 것

감동은 듣는 사람이 갖고 있는 '느낌을 움직이는 것'이다. 말하는 사람의 감정에 일치하는 감정을 갖게 되면 느낌이 움직인다. 이런 상태를 '동감(생각이 같은 것)', '동정(불쌍한 사람을 도우려는 마음)'이라고 한다. '동감'이 같다는 의미이기 대문에 '공감'에 비해서는 일치도가 높다는 느낌이다. 감동은 달변에서 오지 않는다. 화려한 미사여구를 구사하는 사람들, 스스로 감동적인 연설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감동을 통해 '우리는 같은 사람'이라는 확인을 한다. 모두 내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가 될 때, 그게 동감이다.


대화(對話) - 알맞은 시간을 나누어하는 이야기

대화는 쌍방향의 행위이다. 서로 비슷한 시간을 말하는 것이 좋다. 조심하는 말하기는 '내용'이 아니라 '길이'이다. 잘 들어주면 좋은 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짜증 내는 말하기 - 상처를 남기는 말하기

짜증은 전염된다. 어쩌면 그 사람의 짜증 섞인 말투는 내게서 전염된 것일 수도 있다. 

특히 가까운 사람 사이에서 짜증 나는 말 하기는 오랜 기간 상처로 남을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말을 듣다 - 몸과 마음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는 것

듣는 것은 '귀'가 하는 행동이기도 하지만, 몸이나 마음이 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내 말 좀 들어라'라고 할 때 단순히 듣기만 해서는 안 된다. 말을 잘 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몸이 말을 안 듣는다', '손이 말을 안 듣는다'는 표현도 한다. 우리 식으로 하자면 몸에도 귀가 있고, 손에도 귀가 있는 것이다. 내 마음이 하는 소리를 몸도 들어야 하고, 내 몸이 하는 소리를 마음도 들어야 한다. 우리는 마음 귀, 몸의 귀를 열어놓고 잘 들어야 한다. 


싫은 소리 하기 - 믿음이 전제되어야 하는 말하기

다른 이의 잘못을 이야기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이다. 내가 너를 믿고 있다는 마음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두 사람의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비난과 단순한 나무람이 된다. 

표현을 잘 골라 쓰는 것도 중요하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옛일 끄집어내 말하기, 욕설 섞어 쓰기, 비꼬는 말하기 등은 다 역효과가 난다. 


칭찬하기 - 장점을 살피는 관심

사람을 칭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칭찬은 '아부'와 가깝게 닿아 있다는 점에서 쉬운 행위가 아니다. 굳이 칭찬과 아부를 나눈다면 나에게 돌아올 것을 기대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있다. 말을 할 때 내게 돌아올 이득을 생각하지 않고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칭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반드시 진심이 담겨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을 만날 때 상대편이 오늘은 무엇이 달라졌나를 살핀다. 사람들의 장점을 살필수록 그 사람과의 관계가 긍정적으로 변화한다. 좋은 점이 더 많아 보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편찮다 - 아픔에는 치료가, 편찮음에는 관심이

'아프다'의 높임말은 '편찮다'이다. 아픈 것을 편하지 않은 상태로 보았다. '몸이 불편하다'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몸이 무언가 익숙하지 않은 상태가 돼있는 것이다. 아픈 것과 편찮은 것은 느낌이 좀 다르다. 아픔에는 직접적인 고통이 느껴지지만 편찮은 것은 그것보다는 범위가 훨씬 넓어 보인다. 아프지는 않지만 불편한 상황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픈 것은 치료가 필요하지만 편치 않은 것은 관심이 필요하다. 마음은 사소한 일에도 금방 불편해지고, 금방 좋아진다.


덕담(德談) - 외롭지 않기를 바라는 말

우리는 사람이다. 아플 수밖에 없고, 슬플 수밖에 없다. 

서로 기대어 살고, 서로 위로가 되고, 서로 어깨를 토닥이며 함께 울어주기도 하는 사람이다. 

새해에는 모두 아프지 말기를, 아프되 슬프지 말기를, 슬퍼도 외롭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존경(尊敬) - 서로를 하늘처럼 생각하는 마음

서로를 하늘처럼 생각하라는 말에는 서로의 좋은 점을 보면서 닮아가라는 생각이 담겨 있다. 

누구에게나 하늘의 모습이 있다. 존경의 마음은 그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잊고 산다. 



넋 건짐 굿 - 위로와 치유의 울음

인간은 '걱정'이라는 것을 한다. 좋게 보면 '준비'라고 하겠지만 나쁘게 보면 '괜한 짓'이다.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해 두려워하는 마음이 걱정인 것이다. 돌이켜보면 걱정했던 일이 결국 일어나지 않은 경우도 많다. 또한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슬쩍 지나갔거나 잘 이겨낸 적도 많다. 그야말로 괜한 걱정인 것이다. 

저자는 미신으로 이야기하지만, 우리 고유 신앙 중의 하나인 '굿'에는 위로의 힘이 강하게 존재하고 있다고 본다. '굿'은 퍼포먼스가 강한 행위예술이기도 하다. 굿의 근본적인 목적은 공감이다. 어떤 경우에는 굿을 요청한 사람보다 무당이 더 슬프게 울고 있다. 무당의 '넋 건짐 굿'을 보면서 종교의 존재 이유를 깨닫게 되기도 한다. 


고해(苦海) - 아름다운 소풍

인생은 고해라고 한다. 고통의 바다라는 말이니, 굉장히 힘들게 살았음을 보여주는 표현이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한다. 아픔이나 고통이 이유가 될 수도 있지만, 헤어짐은 참 어렵다. 죽음이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눈물이 나는 것은 다 그런 그리움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얻어 해탈을 하고, 윤회의 사슬을 끊기를 바란다. 

천상병 시인은 인생을 소풍에 비유했다. 그는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이라고 표현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왜 고통이 없겠는가? 고통이 없다면 삶의 기쁨도 모를 수 있다. 




|제4부| 모두, 한국어로 만나다

선진국(先進國) - 아름다워야 하는 나라

중학교(中學校) - 평등하고 행복해야 할 곳 

머리 - 영혼을 담고 있는 곳

1등 - 어떤 때는 꼴찌가 더 좋은 것

가장 아픈 1등을 보자면 '이혼율'과 '자살률'이고, '청소년 불행지수'도 세계 1위다. 

빨리빨리 - 바쁜 부유함보다는 여유 있는 부족함

욕(辱) - 나쁜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작은 저항

느낌 아니까 - 우리의 오늘을 보여 주는 말

다이얼 - 추억 속으로 사라진 것

헐버트와 안중근 -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었던 사람

띵! 핑! 찡! - 작은 변화에도 민감한 우리말 

‘ㅎ’과 ‘ㅋ’ - 나를 보여 주는 글씨 그림

이모티콘에 쓰이는 'ㅎㅎ', 'ㅋㅋ'은 '하하'와 '큭큭, 키득키득을 줄인 표현.

성(姓) - 가문을 앞세우는 생각

숫자 -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의 크기 

수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의 크기가 담겨 있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감정도 담겨 있다. 그 속에는 수없이 많은 별과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사투리 - 사라지지 말아야 할 언어 유산 

책(冊) - 생각의 가시덤불을 없앨 무기

책 속에서 과거도 만나고, 현재도 만나고, 미래도 만난다.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애국가(愛國歌) - 나라를 사랑하며 불러야 할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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