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서산은 '봉황이 날개를 펼치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형세'를 지닌 명산
천안 봉서산(鳳棲山)은 봉황이 깃들어 살았던 산으로 서쪽 쌍용동, 남쪽 월봉산, 북쪽 노태산까지 뻗어있는 산으로, 천안시 서북구 백석동과 동남구 봉명동 경계에 있다. 봉서산의 높이는 158.1m로 등산을 한다기보단 산책을 즐길 수 있을 만큼 대부분의 코스가 완만한 경사가 이루고 있다. 특히, 봉서산은 대단위 아파트 단지들과 인접하고 있어 천안시민들의 산책코스이자 쉼터이기도 하다. 봉서산은 천안 서부 지역의 유일한 녹지로 산 전체가 자연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서부 육교를 건너면 아름다운 쌍용 공원과도 이어진다. 이는 봉서산 동쪽으로 서부 대로가 관통하면서 산자락이 잘려 나간 탓이기도 하여 한편, 안타까운 마음도 든다. 봉서산의 서쪽에는 천안 시청과 천안시 종합 운동장이 자리 잡고 있다.
『해동 지도(海東地圖)』[천안]에 내서면 동쪽 봉서산(鳳栖山)으로 한자 지명을 달리해서 나온다. 풍수지리상 이 산에 비봉 귀소형(飛鳳歸巢形)의 명당이 있으므로 봉서산이라 부른다고 전해진다. 비봉 귀소형은 봉이 제 집으로 돌아온다는 뜻이며, 봉서산 부근에는 봉황이 울었다는 뜻의 봉명동(鳳鳴洞)을 비롯한 방리(坊里) 지명이 남아 있다. - 자료 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봉서산 주변은 신생대 4기 퇴적층이 남아있고, 봉서산은 침식에 강한 화강암 지질로, 산자락에는 상수리나무와 키가 큰 리기다소나무가 군락을 이룬다. 걷다가 잠시, 동일하이빌이 있는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초계 변용래 효행비가 있다.
초계 변용래(1900년~)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로, 1919년 4월 1일(음력 3월 2일)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여 시위를 주도했다. 시위 과정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과 옥고를 치렀으며, 이로 인한 후유증으로 인해 순국했다.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은 유관순 열사 등 여러 독립운동가들이 참여한 대규모 만세 시위였다.
봉서산 정상을 향해 계속 걷다 보면, 겨울산이 주는 풍경은 비슷한 장면이 이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숲 속 산길의 매력은 오르막과 내리막 경사가 번갈아 나타나는 것이다. 마치 우리네 인생과 같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교차한다는 것은 상승과 하강이 번갈아 찾아오는 삶의 여정과 다르지 않다. 고된 나날 속에서 다양한 변화를 맞닥뜨릴 때마다 삶은 성장한다. 그 높낮이를 미리 알 수 없는 것도 우리 인생의 도전과 변화를 대변하는 것 같다. 늙었다고 성장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그 폭과 깊이가 다를 뿐이다.
가만히 고개 들어 하늘을 보면, 두 눈 가득 키 큰 니기다 소나무들의 행렬이 끝없이 늘어선 틈으로 파란 겨울 하늘에서 햇볕이 쏟아져 내린다. 봉서산 나무들과 함께 즐기는 이 시간에도 겨울은 점점 더 깊어간다.
겨울 숲의 매력은 낙엽이 밟히는 바스락 소리도 빼놓을 수 없다. 두 귀를 열고 걷다 보면, 가까이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발걸음의 바스락 소리와 조화를 이룬다. 천천히 내딛던 발걸음의 힘을 조절하면, 낙엽 밟히는 소리도 리듬을 탄다. 청량한 숲 속 새소리와 바스락 발자국 소리가 경쾌한 리듬으로 교차하면서 매력적인 조화를 이룬다.
정상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쉼터를 지나친다.
사람들은 쉼터에서 운동을 하기도 하고, 의자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 꽃을 피우기도 한다.
쭉 뻗은 나무 기둥에 굳은살(옹이)이 삥 둘러 박히기까지 나무가 견뎌낸 짧지 않았을 인고의 세월이 느껴진다. 사람도 세월의 흔적을 곳곳에 드러내며 살아가는 것이 나무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봉서산 정상 그리고 삼각점
정상을 향해 왔지만, 막상 정상에 서면 그곳은 끝이 아니다.
'뭔가 한 획을 긋는' 느낌이 드는 이곳에서 우리는 돌아가야 할 목표와 책임감을 다시 챙기게 된다.
정상은 우리가 바라던 '더없는 최고의 상태'가 아니다.
정상에서도 우리에겐 다시 오르막과 내리막길을 교차해 가면 계속 가야야 할 길이 떡 버티고 서 있다는 걸, 떨쳐낼 수 없다.
봉서산 정상 표지판을 살펴보면, 봉서산 동쪽 기슭에서 석기·청동기 시대의 돌도끼 등이 출토되어 이곳이 선사 시대부터 인류의 정착 생활이 이루어졌음을 알려준다.
봉서산 정상, 돈대 같은 봉의 삼각점은 국토의 평면 위치를 측정하기 위한 중요 시설이다.
봉서산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쉼터 정자와 봉황알 바위
정상에서 왼쪽 내리막 길을 내려다보면 쉼터 정자와 둥근돌무더기가 보인다.
둥근돌무더기는 '봉황알 바위'이다. 바위 무더기 앞에는 제단흔적도 남아있다.
봉황알 바위는 봉황알처럼 생긴 여섯 개의 둥근 모양 바위가 다닥다닥 붙어있어 신비스러운 느낌이 든다.
쉼터 정자와 봉황알 바위를 지나면, 운동기구들이 늘어서 쉼터를 왼쪽에 두고 내려간다.
나무 그림자들이 점점 더 길어지는 걸 보면, 역시 겨울 해가 우리 곁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짧아진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겨울 한낮 내리쬐는 햇살이 세상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그 느낌이 더 소중하게 전해지는 것 같다. 하산길도 오르막과 내리막 길이 계속 교차한다. 봉서정 팔각 정자 쪽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봉서산 남근 바위
큰 남근석은 봉서산 쌍용 공원 내 봉명동 북쪽 개목 마을에 있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놓았다. 곁에 있는 작은 여근석은 천안 에덴 조경사에서 보관하던 것을 기증하여, 이곳에 함께 조성되어 충청도의 중요한 민속 문화 자료가 되고 있다.
봉서산 자연 생태학습장
봉서산에는 '자연 생태학습장'도 조성되어 있다.
2008년 산림청과 협의를 통해, ‘국민의 숲’ 지정 절차를 거쳐 구축됐다.
총사업비 4억 원을 들여 1만 8,546㎡에 야생화와 조경수를 심고 편익 시설을 설치하여 만들어진 자연 생태 학습장이다. 자연 생태 학습장은 어린이와 학생들에게 자연 학습 효과를 주는 것은 물론, 시민의 건강과 정서 함양에도 도움을 주는 도심 생태 공원의 역할을 하고 있다.
봉서산을 한 바퀴 돌아왔다. 이제 하산은 주공 9단지 아파트 쪽 길을 택한다.
호젓한 숲길에 빈 의자가 있다.
멈출까, 쉴까? 설까, 앉을까?
봉서산 빈 의자는 쉼과 소통의 여백으로 남겨두려고...
초록빛 새싹 움트는 날이 오면 멈추어 서리.
무성하게 짙푸른 그늘이 불러 세우면 쉬어갈 것이며,
울긋불긋 단풍 옷 단장하고 기다린다면, 멈춰 서서 다채로운 세상을 바라보며 앉았다 가리.
그러나
해거름도 사람도 바빠진 겨울엔 남겨두고 지나쳐도 별나지 않은 빈 의자!
봉서산을 내려가면, 바로 GS더 프러시 뒤쪽이다.
봉서산은 '봉황이 날개를 펼치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형세'를 지닌 곳으로, 구석기시대의 유물들인 돌도끼, 돌칼, 질그릇, 비늘무늬그릇, 붉은 질그릇 등이 출토된 곳으로 부드러운 능선이 고운 명산이다. 봉황(鳳凰)은 주작(朱雀)이라고도 불리는 동아시아 신화에서 등장하는 상상의 새다. 봉황새의 봉은 수컷, 황은 암컷을 이른다. 고대묘 벽화에 많이 그려졌던 이 봉황은 태평성대인 요순시대에 한번 지상에 왔다가 그 후, 아까지 지상에 온 일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봉황새는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않고, 죽실(竹實, 대나무 열매)이 아니면 먹지를 않으며 서강(실제 강이 아닌 지명의 상징이 담김)이 아니면 목욕하지 않는다고 전해 내려온다. 봉황새는 온몸이 붉은 깃털로 싸여있는 신비스러운 새로 전해지는데, 천안 '봉서산'이야말로 이름 그대로 봉황새가 깃들어 살고 있는 산이다.
쌍용공원 봄 풍경
봉서산을 오르내리는 길은 각자 선택하면 된다. 우리가 하산한 곳부터 올라가서 반대쪽으로 내려가는 사람들도 있고, 봉서산 사잇길까지 모두 돌며 걷는 이들도 있다. 봉서산은 아무리 천천히 둘러보며 걸어도 2시간이면 충분하다. 도심 한가운데를 지키며, 마치 정겨운 이웃 같은 산책길을 품고 있는 산이다. 서부육교 쪽으로 건너가 쌍용공원까지 함께 둘러보는 것도 추천할만한 멋진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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