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는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 부처 세계가 함께 하는 사찰
불국사는 토함산(745m)의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세계문화유산인 고찰이다.
국가의 안정과 백성의 평안을 위해, 6세기 중반 신라 법흥왕 모친의 발원에 따라 창건되었으며, 8세기 초 신라 경덕왕 때 재상 김대성은 불국사를 80종 건물의 대규모 가람으로 중창했다. 김대성이 창건한 석불사는 훗날 암자인 석굴암이 되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버렸다. 한동안 극락전, 자하문, 범영루 등의 일부 건물만 명맥을 이어왔으나, 1969년~1973년에 걸친 발굴조사 뒤 복원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불국사와 석굴암은 찬란한 신라 불교문화의 정수이다.
우리나라 사찰은 일주문 -> 천왕문 -> 불이문을 통해야 석가모니를 뵐 수 있는 구조이다. 불국사 일주문도 부처를 뵙기 위한 지나야 하는 첫 번째 문이다.
10월 24일, 울산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가을비 내리는 산사의 정취를 생각하면 마냥 낭만적이었지만, 실제 빗발이 거세지니, 낭만보다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하루 종일 변덕스러운 가을비와 바람까지 합세해 밀어댄 날씨가 제법 사납기까지 했다.
반야 연지 위로 내리는 가을비는 묵직하고 조용했다. 이때만 해도 가을비는 마냥 온순했다. 가을 정취를 가득 느끼며 걷기에도 딱 좋았다.
불국사 전각 소개
불법과 세계를 지키는 사천왕을 봉안한 문으로써 가람(伽藍)의 삼문(三門) 중의 하나이다.
천왕문 안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이 있다. 천상의 수문장으로 사바 속세와 경계 지간 가까운 곳이라 생각하면 된다. 사천왕은 천상계(天上界)에서 가장 낮은 곳인 사천왕천에 살면서 제석천왕의 지시에 따라 사천왕천의 동서남북 지역을 관장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비파를 지니고 있는 동쪽을 지키는 지국천왕(持國天王), 손에 칼을 쥐고 있는 남쪽을 지키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이다. 서쪽을 지키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은 용(龍)을 쥐고 있고,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은 탑(塔)을 들고 있다.
석가모니가 계시는 대웅전으로 통하는 중문(中門)으로, 자하문은 부처님의 몸에서 비추는 자금광(紫金光)이 안개처럼 서린 문이라는 뜻이다. 대웅전으로 오르기 위해서는 오른쪽 오솔길을 따라가면 된다.
자하문의 건립 연대는 분명치 않으나 기단의 주춧돌과 신방석(信防石). 문지방돌 등이 통일신라시대(676년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436년 중수하였고, 임진왜란 때(1593년) 불타 버린 것을 1628년 재건했다. 1630년 중창하고, 1781년 중건하여, 1966년에 크게 보수했다. 넓은 석조(石造) 기단(基壇)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세워진 지금의 이 문은, 다포계(多包系)의 공포(栱包)를 짜 올린 팔각(八角) 지붕을 하고 있으며, 건축 양식은 조선 후기에 속한다.
청운교 및 백운교는 자하문 앞에 설치된 돌계단 다리이다.
위쪽 16단이 청운교, 아래쪽 18단이 백운교이다. 속계와 불국토를 연결하는 종교적 상징물이다.
이 두 다리는 연화교와 칠보교보다 규모가 크고 웅장하며, 안정감과 상승감을 준다. 다리를 계단 형식으로 만든 특이한 형태로 청운교와 백운교가 이어지는 부분은 둥근 무지개다리로 되어 있다.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1919년 전체적으로 보수했고, 1972년 통자주(돌난간 중간에 세우는 짧은 돌기둥)와 난간을 복원했다.
아미타 부처님이 계시는 극락전으로 통하는 중문(中門)으로 이 문으로부터 아미타 부처님의 세계인 극락정토가 전개된다. ‘안양’이라는 이름은 ‘극락’을 뜻한다.
751년 김대성이 불국사를 중창할 때 세워진 안양문은 1593년 임진왜란 때 타 버린 것을 1626년과 1737년에 중건했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겹처마에 맞배지붕으로 되었다. 1964년에 새로 지어진 건물로서 고려 건축양식을 채택하였고 강릉 객사문과 도갑사 해탈문을 참고했다고 한다.
범영루는 750 년경 김대성이 불국사를 중창할 때 건립하였고 1593년 임진왜란으로 불에 탄 것을 1612 년과 1688 년에 각각 중건하였으며, 현재의 건물은 1973 년 불국사 복원 때 정면 1 칸, 측면 2 칸, 3 층의 옛 모습 그대로 중건한 것이다.
현재, 범영루에는 법고(法鼓)가 매달려 있으나 원래는 범종각(梵鐘閣)으로 범영루는 범종각의 이름이다.
누각의 모양을 하였으므로 루(樓)라 하였고 범영(泛影)은 범종의 소리를 그림자에 비유하여 범종의 소리가 온 누리에 번져서 넘치는 것을 형용한 말이다. 최초의 이름은 수미 범종각(須彌梵鐘閣)이라고 했다.
이는 수미산(須彌山) 모양의 팔각(八角) 정상에 108 명이 앉을 수 있도록 누를 짓고 아래는 오장간(五丈竿)을 세울 수 있도록 설계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수미산은 세계의 중심에 위치하고 그 정상은 욕계(欲界) 33 천의 위이다. 108이라는 숫자는 인간의 번뇌를 통틀어서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수미 범종각이라는 이름은 소리가 33천의 온 세상에 울려 퍼져 인간의 모든 번뇌를 씻어 없애주는 것을 뜻한다.
불국사 자하문에서 좌경루 쪽으로 오르는 숲길
석가모니 부처(釋迦牟尼佛)를 모신 법당이며, 대웅(大雄)은 석가모니불의 덕이 큰 것을 표현하는 덕호(德號)이다. 수미단(須彌壇) 가운데 안치되어 있는 목각(木刻)의 석가모니 불상 좌우에는 목각의 미륵보살(彌勒菩薩) 상과 갈라 보살(羯羅菩薩) 상이 모시고 있으며, 그 좌우에는 흙으로 빚은 가섭(迦葉)과 아난(阿難) 두 제자상(弟子像)이 보인다.
미륵보살(彌勒菩薩)은 미래의 부처이며, 갈라 보살(羯羅菩薩)은 과거의 부처이다. 이는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 부처님이 불국사라고 하는 부처 세계에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석가상(釋迦像)과 두 보살상(彌勒菩薩. 羯羅菩薩) 그리고 두 제자상(像) 가섭(迦葉)과 아난(阿難)의 복장기(腹藏記)에 의하면 이 5구(五軀)의 상(像)은 681년에 조성되었다고 하나, 1593년 임진왜란 당시 대웅전이 소실(燒失) 되었을 때, 함께 불에 탓을 가능성이 있다. 다섯 구의 상은 1659년 대웅전을 중건할 때 새로 조성되었을 것이다.
1730년과 1769년에 각각 도금(鍍金)을 하였다. 대웅전은 681년 4월 8일 낙성(落成) 되었으며 1436년-1470년. 1564년에 중건하였고, 1765년에 중창하였으며 현존하는 건물은 이때 세워진 것이다. 통일신라시대 쌓은 기단 위에 정면 5칸, 측면 5칸에 다포계(多包系)의 팔작(八作) 지붕 건물이며, 내고주(內高柱)와 뒷면 고주 사이에는 후불벽(後佛壁)을 설치하여 벽화(壁畵)를 그렸다. 조선 후기 불전(佛殿) 건축의 대표적 건물이다.
불국사 다보탑과 석가탑은 법화경의 ‘다보여래 상주 증명’을 구현한 쌍탑으로, 다보탑은 특수형·석가탑은 일반형이다. 건립 시기는 불국사 창건기인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으로 추측된다. 1925년경 일본인들에 의해 완전 해체·보수되었고, 사리장엄구 등 유물의 행방을 알 수 없다. 다보탑 기단 돌계단 위 네 마리 돌사자 중 3마리는 약탈되어 현재 1마리만 남았다. 8세기 통일신라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이다.
대웅전과 자하문 사이 뜰 동서 쪽에 마주 서며, 동쪽이 다보탑이다. 두 탑은 비대칭이지만, 바닥돌과 몸돌 높이가 같아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다보탑은 십자형 기단에 사방 돌계단과 8각 탑신·난간을 이루고 있으며, 4각·8각·원을 한 탑에서 짜임새 있게 구성하고 각 부분의 길이·너비·두께를 일정하게 통일했다. 석가탑은 2단 기단 위에 세운 3층 탑이다.
경론(經論)을 강술(講述) 하는 강당이다. 말로써 경론을 강술하는 곳임에도 무설(無說)이라고 한 것은 진리의 본질과 불교의 깊은 뜻이 언어라고 하는 수단으로써는 도달할 수 없는 언어도단 (言語道斷)의 경지임을 표현한 것이다.
670 년 개창(開創) 되자 중국에서 돌아온 의상(義湘) 대사가 최초로 강론을 하였다. 1593년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1648년과 1708년에 중건하여 1910년까지 보존되어 왔으나, 그 뒤 허물어진 채 방치되었다가 1973년 불국사 복원 때, 유지(遺址)의 기단 위에 옛 크기대로 32 칸으로 지은 것이다 건물 양식은 맞배집으로서 조선에 속한다.
무설전 안에는 태국 불상, 지장보살 김교각 스님, 감은사 서석 탐사기 등이 전시되어 있었지만, 사진 촬영 금지구역이었기에 눈과 마음으로만 둘러보고 나왔다.
대웅전과 무설전 사이로 보이는 회랑
비 내리는 풍경 속에 담긴 불국사 회랑은 특별했다. 유럽 건축물에서 보던 회랑보다 더 아름다운 곡선과 조화로움이다. 말 그대로 고상하고 우아한 우리 건축물의 각별한 아름다움이었다.
사리탑은 비로전 옆에 설치된 석등 모양의 석탑이다.
기록에 보이는 '광학 부도'로 추정하기도 하지만, 승려의 사리탑인지 여래의 사립탑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석등과 비슷한 3단의 받침돌 위에 몸돌과 머릿돌로 구성되었다. 몸돌에는 구획을 나누어 부처와 보살상을 새겼다. 지붕돌은 추녀 끝에서 12각을 이루다가 위로 올라가면서 줄어들어 머리 받침돌 아래는 6각으로 모인다. 윗받침돌에서 사리를 안치한 구멍이 확인되었고, 합과 좁고 긴 원통이 나왔다.
사리탑은 1905년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1933년 극적으로 반환되었다. 일제 강점기 수난을 겪었던 우리의 아픈 역사를 묵묵히 함께 견뎌온 탑이다.
불국사 비로전과 관음전으로 들어가는 문과 관음전에서 내려오는 계단
비로자나불(毘盧舍那佛)을 모신 법당이다. 751년경 18칸으로 건립되었으며, 1593년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1660년에 중건하였고 현재의 건물은 1973년 불국사 복원 당시 신라 때의 기단과 초석 위에 세웠다. 건축 양식은 조선 후기에 속한다.
비로자나부처(毘盧舍那佛)는 화엄세계(華嚴世界)의 본존불(本尊佛)로서 부처의 지혜가 태양과 같이 밝고 광대무변함을 상징한다.
이 금동 비로자나불 좌상은 국보 제26 호로 8 세기 중엽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다. 당시의 탁월한 주조(鑄造) 기술을 보여주는 이 불상의 높이는 1m 77cm이다. 원래는 광배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관음전은 조선 초기(1400년경) 건축양식으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모신 법당이다. 관세음보살은 이승에서 고난 받는 중생의 소리를 눈으로 보고, 그 고난으로부터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이다. 이와 같은 관음보살의 신앙은 대표적인 민간신앙의 하나다.
원래 922년 전단 향목(栴檀香木)으로 만든 관음보살 상이 안치되어 있었으며, 1674년과 1701년 그리고 1796년에 각각 개금(改金)을 하였기에 이로써 임진왜란의 병화(兵火)에 관음전이 불에 탈 때도 관음상은 안전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언제 어떻게 없어졌는지 알 수 없다.
석가모니의 제사상을 모신 곳으로 열여섯 분을 모셨으므로 16 나한전 또는 16 응진전(十六應眞殿)이라고도 한다.
1593년 왜구의 침략으로 타 버린 뒤 1647년에 나한상을 조성하고 전각을 세웠으며, 1760년 중창 불사 때 현재의 곳으로 옮겼으며 1973년에 중수하였다.
아미타(阿彌陀) 부처를 모시는 법당이다. 극락전은 김대성이 불국사를 중창한 750년경 6칸으로 건립되었으나 1593년 임진왜란 때 불에 타 버린 것을 1750년에 중창에 중창하고 1925년에 중수하였다.
건축양식은 조선 후기의 다포계이며, 정면 3칸, 측면 3칸의 이 건물은 안에 높은기둥 네 개를 세웠고, 안쪽 두 기둥 사이에는 후불벽(後佛壁)을 세워 벽화(壁畵)를 그렸다. 본래의 벽화는 1514년에 중수한 기록이 있고, 지금의 후불벽화는 1973년 중건 때 조성한 것이다. 극락전에서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세 줄로 된 16단의 계단이 있으며, 이 48개의 계단은 아미타부처님의 48 대원(大願)을 표현한다.
아미타 부처님의 세계는 극락정토(極樂淨土)이므로 법당 이름을 극락전이라고 한다. 이 법당에 모셔져 있는 금동 아미타여래 좌상(金銅阿彌陀如來坐像)은 국보 제27호로 8세기 중엽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다. 당시의 탁월한 주조(鑄造) 기술을 보여주는 이 불상의 높이는 1m 77cm로 본래는 광배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극락전 앞 석등과 봉로대
극락전 앞 석등(長明燈)은 단아하면서도 아름답다. 장명등은 부처님의 자비와 광명을 중생들에게 밝혀주는 등불이다. 대웅전 앞 석등과 그 모양이 똑같아 동시에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불국사를 경내를 둘러보고 나오다 보니, 대웅전 안쪽 회랑과 대웅전 뒤쪽으로 붐비던 관람객들도 빠져나가 한적해 보인다.
사찰에서 법회나 의식이 있을 때는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았다. 당을 매달았던 긴 장대를 ‘당간幢竿’이라고 하며, 당간을 지탱하기 위해 양쪽에 세운 2개의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불국사에는 나란히 2쌍의 당간지주가 서 있다. 높이는 동쪽 당간지주가 3.6m, 서쪽 당간지주가 3.45m이다. 각 기둥의 안쪽 면에는 쐐기 목을 박아 당간을 고정시켰던 홈과 구멍이 뚫려 있으며, 서쪽 당간지주 사이에는 당간을 받쳤던 둥근 받침대가 남아 있다. 동쪽 당간지주는 통일신라 때 세워진 것이지만, 서쪽 당간지주는 기둥 크기와 제작 수법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아 각기 다른 부재를 후대에 조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주문을 나서기 전, 오른쪽으로 보이는 관음수에 다시 한번 눈길이 머물렀다.
불국사를 나서니 빗발이 좀 더 거세졌다.
우리는 자꾸 움츠려드는 몸을 펴가며 석굴암으로 향했다.
자동차 와이퍼가 바삐 움직였지만, 그냥 돌아서면, '언제 다시 올지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세월을 살아왔으니, 오락가락 변덕스러운 가을를 가르며 천천히 토함산 숲길을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