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 끝내 놓고 커피 한 잔 여유 부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맞춰 놓은 주파수에서 신해철의 <날아라 병아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나는 봄을 좋아했다.
봄에 피는 나무 꽃이 좋았고, 마른땅 위에 돋아나는 어린 새싹이 좋았고, 이름 모를 크고 작은 들꽃이 좋았다. 그중에서도 노오란 솜털 같은 병아리가 나는 참 좋았다.
봄이 되면 학교 앞에는, 구멍 뚫린 네모난 큰 상자에, 수십 마리의 병아리를 모아놓고 파는 노점상이 있었다.
한참을 쭈그리고 앉아구경하다가, 앙증맞은 모습에 마음을 빼앗겨, 몇 마리씩사 오곤했다. 병아리는 얼마 못 가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몇 날 며칠을질리도록 울었다.
“다시는 사 오지 마! 한 번만 더 사 오면 쫓아낼 줄 알아. 알았어? 시끄러워. 그만울어.”
마음도 몰라주는 엄마가 너무 미워서 더욱 서럽게 울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수업이 끝나고 학교 문방구 앞을 지나는데, 병아리를 팔고 있었다. 봄이 끝날 무렵이었고, 한동안 병아리를 팔지 않아 마음을 접고 있었는데, 병아리를 보는 순간 마음이 또 요동쳤다.
‘엄마가 절대 사 오지 말라고 했는데, 어쩌지.’
고민은 잠깐, 가격을 물어보고 두 마리 덜컥 사고 말았다. 집에 도착하고서야 걱정되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맞벌이라 늦게 오신다. 그리고 아침 일찍 출근하신다. 그때만 걸리지 않으면 될 것이다.
작은 상자를 구해와 물통에 물을 채워주고 먹이로 좁쌀을 뿌려줬다. 두 마리가 사이좋게 밥을 먹고, 활발하게 노는 모습을 보니 좋았다. 물 한 모금 먹고 하늘 쳐다보고, 물 먹고 또 하늘 쳐다보고.
그 모습은 보고 또 봐도 귀여웠다. 병아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부모님 오실 시간이 되면, 구멍 낸 뚜껑을 덮고 내 방 옷장 속에 넣어 옷으로 감춰 두었다. 다행인 것은 병아리도 잠을 자는지, 그때만큼은 울지 않고 조용히 있어 주었다.
학교 갔다 오면, 병아리를 풀어놓고 자유롭게 놀게 했다. 내가 종종 걸으면,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손바닥에 올려살살 들었다 내리면, 푸드덕, 날갯짓하는 모습이 새처럼 예뻤다. 배 위에 올려놓으면, 금세 눈감고 새근새근 잠드는 노랑이와 삐약이를 볼 때면, 혼자 있어도 친구가 없어도 외롭지 않았다. 병아리는 유일한 내 친구였다.
학교에서도 병아리 생각뿐이었다.
‘노랑이, 삐약이는 잘 있을까. 밥은 잘 먹었을까. 엄마가 집에 오셨다가 혹시 병아리를 보신 건 아닐까?’
집에 가면 병아리를 볼 수 있다는 설레는 마음과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이 교차했다.
병아리 날개 색이 조금씩 옅어지고 몸집도 커져갔다. 많이 먹고 많이도 쌌다. 서로 먹으려다 물통도 엎었다. 자기가 싼 똥을 밟고 뭉개서 신문지 갈아야 하는 횟수도 늘었다. 번거롭고 귀찮았지만, 냄새 때문에 들키는 일이 없도록, 병아리 집 청소를 말끔히 끝내고, 엄마가 오시기 전, 옷장 속으로 완벽하게 피신시켰다.
집에 가는 길이 다른 날보다 길게 느껴졌다. 빠른 걸음으로 집에 와 현관문을 열었을 때, 이웃에 사는 친척 언니와 8살 된 조카 준식이가 놀러 와 있었다. 거실에는 내팽개쳐진 병아리 집과 드라이기, 힘없이 젖어있는 노랑이와 삐약이가 보였다.
“병아리 누나 거야? 자꾸 병아리 소리가 나 가지구 찾아봤는데, 옷 장에 있더라. 그래서 꺼내줬어. 내가 밥도 주고 목욕도 시켜줬어. 잘했지?”
내 방에서 놀고 있던 준식이는, 삐약 삐약 소리에 옷장 안에 있던 병아리를 찾아냈고 만지고 싶은데 몸에 묻어있는 똥을 보고 목욕시켜야겠다고생각했단다. 언니가 말릴 새도 없이 병아리를 물속에 넣었고, 씻기고 보니, 계속 떨길래 드라이기로 말려주고 있었다고 했다.
나는 어이없고 화가 나 소리쳤다.
“만지지 마! 병아리 목욕 시키는 사람이 어디 있어? 어디 있냐고!”
언니와 준식이는 아무 말 못 하고, 힘없이 떨고 있는 병아리만 쳐다봤다.
병아리 젖은 털을 마른 천으로 살살 털어주고 수건으로 덮어 주었다. 엄마한테 들켜 혼나는 건, 이제 두렵지 않았다. 답답한 옷장 속에 갇혀 있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무서운 꿈을 꿨다.
안방에서 잠을 자다 이른 아침 꿈에서 깬 나는, 급하게 뛰어가 내방 불을 켰다.
노랑이와 삐약이는 내가 덮어준 수건 위에서 차디차게 죽어 있었다.
단지 앞뜰에 묻어 주었다. 십자가도 세워 주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잘 가. 그동안 고마웠어. 노란 새가 되어 훨훨 날아가렴.’
생명과 죽음을 알게 해 준 내 친구 노랑이와 삐약이. 봄이 되면 난 그때가 떠오른다.
다 식은 커피잔을 내려놓고 기지개를 켰다.
바람을 타고 봄 내음이 가득 안겨 왔다. 신해철의 <날아라 병아리>가 막 끝이 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