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모든 시험을 다 본덕에 사실상 학기는 지난주에 끝났지만 오늘 공식적으로 박사 첫 학기가 종료되었습니다. 지난주는 거시경제학 시험 보러 가던 길에 한국에 비상계엄 사태가 일어나서 참 심란하기도 했네요. 사실 딥페이크인 줄 알았던...
학기 중에는 주말도 없이 너무 바빠서 글을 적을 정신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학기가 끝난 소감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저는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 통계학 그리고 R/Matlab 까지 총 4과목 (12학점 같은 9학점)을 수강했습니다.
미시경제학:
대부분의 미국 경제학 박사과정에서 사용하는 MWG (Mas Collel)의 책을 사용했습니다. 무려 1995년에 나왔지만 여전히 박사과정 코스웍에 바이블처럼 쓰이는 책입니다. 워낙 두꺼운 책이기에 한 학기에 다 할 수는 없고 다음 봄 학기에 나머지 파트를 진행합니다. 학기 내내 굉장히 응용수학에 가깝다는 느낌을 많이 받은 과목입니다. 대부분 알고 있는 내용을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증명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쏟았는데 처음에는 이런 식의 공부가 익숙하지 않아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같은 코호트에 학부에서 수학을 전공한 친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도 제가 앞으로 연구하고자 하는 분야가 미시경제학에 기반을 두고 있고, 거시경제학도 결국 미시적 기반을 바탕으로 하므로 제일 열심히 공부했던 과목인 것 같네요. 정작 시험은 제일 못 봤지만...
거시경제학:
Recursive Macroeconomics라는 책을 사용했습니다. IS-LM 모형은 더 이상 배우지 않고, 미시적 기초 (가구의 효용극대화, 기업의 이윤극대화, 시장청산 등)을 기반으로 하여 모형을 전개해 나갑니다. 사용하는 수학 자체의 수준은 크게 높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미적분 정도?), 워낙 모형이 복잡하고 Matlab을 통해 모형의 해를 찾는 방법 (Guess and verify)도 어려워 많이 고생을 했습니다. Chat GPT한테 많이 의존을 했지만, 결국 GPT도 틀리는 내용이 너무 많아서 결국 다시 제가 다 해야 하는... 사실 거시에 큰 관심이 없어서 학점만 사수하자는 마음으로 공부를 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학점이 잘 나온 과목입니다. 시험에서는 코딩은 없고 모형의 해만 구하는 문제들이었는데, 한국인이라 그런지 아무리 복잡한 연립방정식도 꽤나 잘 풀더라고요... 사실 내용은 이해를 못 했지만...
통계학:
한국어로 배웠다면 훨씬 더 잘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과목입니다. Statistical inference라는 책으로 강의를 진행했고, 대부분 미적분을 활용한 수리통계 절반, 이후에는 추정에 대한 내용을 배웠습니다. 결국 다음학기에 듣게 될 계량경제학의 기반이 되는 과목입니다. 교수님이 말씀이 너무 빠르셔서 조금 힘들었지만, 대부분 말씀하시는 내용을 칠판에 적어주셔서, 수업시간에는 미친 듯이 따라 적고 집에 와서 이해하는 방식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통계학은 좋은 유튜브 강의도 많아서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R/Matlab:
지금까지 모든 연구를 Stata와 Python을 통해서 진행했는데 갑자기 R과 Matlab을 배우니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Matlab은 다행히 Python과 문법이 조금 비슷했고, R은 꽤나 달랐지만 시험이 오픈북이어서 가장 편한 과목이었습니다. 독일인 교수님이 수업을 진행하셨는데 아주 독특한 악센트를 가지셨지만, 그 악센트 덕분에 모든 문장이 명확히 들려서 좋았습니다. 제 관심분야를 연구하시는 교수님이기 때문에 아마 제 지도교수님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모든 과목이 거의 매주 과제가 있었고, 매달 시험을 보느라 정말 정신이 없었습니다. TA 업무는 크게 부담되지 않았지만 시험기간에 일까지 있으면 정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여기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나 싶기도 했었죠. 3개월을 여기서 지냈지만 학교-집만 왔다 갔다 하느라 악어도 못 보고 제가 사는 도시도 한 번도 못 벗어나 봤네요. 그래도 드디어 1/10이 끝났다는 생각에 조금은 뿌듯하기도 합니다.
이곳은 겨울방학이 짧기 때문에 1월 중순에 다시 다음학기가 시작해서 5월 초면 1년 차가 마무리됩니다. 다음학기까지 살아남아서 2년 차가 되어야 할 텐데... 그리고 이번 겨울에는 아직 완전히 오는 것은 아니지만 아내가 2주 정도 미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함께 뉴욕과 플로리다를 여행하려고 합니다. 집도 좀 청소하고 관광지도 알아봐야겠네요. 원래 이번 겨울에는 논문도 조금 읽으려고 했는데 하나라도 읽으면 다행일 것 같아요... 그래도 방학도 있고... 회사원보다 낫기도...? 학기 중에 주말이 없으니깐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