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그리고 심폐소생술

by 변산

지금은 응급실을 떠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학생실습이나 인턴 때 응급의학과가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해서, 응급실 근무를 다른 동기들과 달리 힘든 줄 모르고 일했던 적이 있었다. 매번 단순한 심부름 성격의 노동만을 하던 인턴 일과에서, 갖고만 있었던 의학적 지식을 꺼내어 환자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곳이 응급실이었고, 병동과 달리 빠르게 의사결정과 행동을 해야 하는 현장 속성도 성격상 잘 통하는 게 있어서, 잠이 부족해도 집중해서 근무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사실 인턴생활 몇 개월 정도 지나면, 나와 인턴 동기 대부분은 개인적인 생각과 판단은 극히 제한적으로 용납받고, 기계적으로 돌아가는 병원시스템의 부품처럼 무감각해지는 과정을 겪게 된다. 가끔 병동이나, 응급실을 방문한 심정지 환자들 발생 시 울리는 코드블루 방송에 미친 듯이 뛰어가 모든 아드레날린을 쏟아내며 심폐소생술을 하는 그 순간에 우리를 깨우는 것 이외엔 특별한 것들이 없는 날들이었다.


우리가 배운 교과서 내용이나 영화, 드라마에서처럼 극적으로 심폐소생술 중 회복하는 환자들을 거의 보지 못하거나, 심장리듬이 돌아와도 며칠 후에 그분들이 안타깝게 떠난 빈 침대를 보면서, 그런 뻔한 결과들에서 생기는 무기력감이 구겨진 가운의 주름처럼 우리에게 익숙해져 가는 어느 날이었다. 적어도 그 자리에 있던 몇몇 우리에겐 심폐소생술에 대한, 환자 치료에 대한 마음가짐을 바꾸게 해 주었던 일이 생긴.


그날도, 어김없이 울리는 119 구급대원의 심정지 환자 이송 전화에 응급실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가, 환자가 도착하자마자 의사, 간호사 모두 한 몸처럼 움직이며 라인 잡고, 기관 삽관하고, 동시에 CPR을 시작했다. 119 구조대원의 환자상태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을 들으면서 보니, 환자분은 80대 고령의 할머니셨고, 몸도 여리고, 체구도 왜소한 분이셨다. CPR을 시작하자마자 바로 압박할 때마다 할머니의 갈비뼈가 빠그락 빠그락 부러지는 소리가 무거운 공기가 깔린 응급실을 퍼져나갔고, 기관 삽관 튜브에서 압박할 때마다 솟구치는 피가 기관삽관 튜브에서 오르락내리락 튀기 시작했다. 교대로 흉부압박을 하였지만, 지친 체력에 곧 우리는 숨이 차기 시작했고, 어느덧 이마와 머리에 맺혔다 떨어진 땀이 묻은 안경알은 시야까지 방해하고 있었다. 20분 정도 심폐소생술을 하니 근무복이 땀에 흠뻑 젖기 시작했고, 응급의학과 선생님과 동기들의 시선은 모니터를 향하며 심장리듬이 돌아오는지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심장압박을 한 지 30분 가까이 가도, 심장리듬이 전혀 돌아올 기미가 없어 보이자, 늘 평소처럼 응급의학과 선생님은 CPR을 계속하도록 우리에게 맡긴 채 밖에서 대기하는 환자가족들에게 지금 치료 상황에 대한 설명과, 고령이신 할머니에게 계속 CPR을 할지, 중단할지에 대한 의사를 묻기 위해 잠시 자리를 떠났다. 계속 압박을 하는 그 순간에도 나의 머릿속엔 다른 응급실 환자들의 밀린 진료와 처치를 어디서부터 다시 재개해야겠다는 순간적인 계산이 스쳐 지나갔고, 그러던 와중에 환자 보호자를 만나고 온 선생님이 커튼을 제치고 들어오며 짧게 한마디를 뱉었다. '좀만 더하자..'


예상했던 것과 달리, CPR을 시작한 지 40분이 가까이 돼가는데 평소 같았으면, 가족들을 설득하고 왔을 그 선생님이 그 순간은 뭔가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로 더 해보자라고 우리에게 지시하는 거였다. 그의 목소리엔 어쩔 수없이 더하자는 말투가 아닌, 이분을 다시 돌아오게 만들기 위한 뭔가 새로운 동기부여로 재무장된 모습의 목소리로 단호함까지 묻어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내 CPR 차례에서 빠져 숨을 고르고 있는 순간 커튼 사이로, 잠깐 열린 응급실 문밖의 모습을 보고,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있는, 커튼으로 사방이 가려진 이곳을 간절하게 쳐다보고 있는 거의 스무 명 가까이 되는 할머니의 대가족이 보였던 것이다. 여러 명까지 보호자를 본 적은 있어도, 그렇게 짧은 시간에 대가족이 모여 있는 그림도 당시에 흔한 장면은 아니었다. 품에 안은 어린 아기에서부터, 형제 어르신들까지 모두들 손을 잡고, 서로 기대어 할머니가 돌아오시길 애타게 기다리는 모습을 보는 순간, 그 당시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던 우리 모두도 그 가족들과 마치 한마음으로 연결된 듯한 느낌이 들었고, 불가능할 것 같은 확률에 다시 도전하는 힘을 얻은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CPR 한 지 45분경 돌아온 그 할머니의 심장리듬이 모니터에서 울려 퍼지면서 화면에 아름답게 그리는 라인을. 믿기 힘들면서도, 우리 모두에게 조용한 환희를 주었던 그 순간은, 그동안 심폐소생술에 대한 아니 어쩌면 생명에 대한 기계적인 해석과 판단에 세뇌당해가던 햇병아리 의사인 나에게 정신 차리라는 반성과 생명은 통계수치로 쉽게 재단할 수 없다는 깨달음까지 마법같이 선물을 해주었던 것이다.


몇 주 후에 거의 정상으로 퇴원하던 할머님과 그분의 가족들이 응급실로 인사를 나누러 오셨고, 우리는 그분의 가족이 얼마나 아름답고 따뜻한 가족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할머니를 돌아오게 해 주었던 알 수 없던 그 힘은 바로 그 가족의 선함과 가족애, 사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응급의학과 선생님에게 들은 말은, 그 대가족에 둘러싸여 선생님에게 간절하게 살려달라는 부탁을 받는데, 가족들의 뭔가 표현하기 어려운 에너지 같은 게 전달되어 마치 할머니를 살릴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순간 생겼다고 했다. 이제는 멀리 응급실이란 곳에서 떠나 평범한 일상을 지내는 내게 따뜻하면서도, 작은 기적 같았던 경험 중 하나가 각박해지고 메말라가는 일상의 우리에게 다른 모습의 부드럽고 작은 CPR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오랫동안 돌아보지 않은 기억을 꺼내어 글을 써보게 되었다. 우리를 버티게 하고 바로 세울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결국 삶마다 가끔 마주치는 작은 등대 같은 일들이고, 그렇게 대단해질 필요 없이, 등대의 작은 빛처럼 되는 것 또한 어렵지 않다는 걸 알게 해 준 그 날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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