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접하는 “경계(境界)”는 두 종류로 나뉜다. 국경, 지역, 건물 같은 물리적 경계가 있고 다른 하나는 문화, 가치관, 이념 같은 추상적 경계가 있는데 이런 다양한 경계가 우리의 삶을 둘러싸고 있다. 그런데 이 경계가 경우에 따라서 우리의 삶을 보호하고, 구분 짓는 역할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를 구속하고, 편견과 차별을 조장하기도 한다.
국가 간의 경계를 의미하는 국경이 가장 좋은 예가 되겠다. 영토라는 개념이 생긴 이래 인류는 이 국경을 사이에 두고 수많은 역사를 만들어왔다. 물론 전쟁이 대부분이었지만, 국경은 국가 간의 경제, 문화, 정치 등의 교류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국가 간의 갈등과 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 문화적 경계도 있다. 문화적인 경계는 서로 다른 문화 간의 차이를 구분 짓고,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서로를 차별하고, 편견을 조장하기도 한다. 가치관 혹은 이념의 경계도 서로 다른 가치관과 이념 간의 차이를 구분 짓고, 서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서로를 비난하고,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런 경계는 누구나 알고 느끼는 경우지만 이런 알려진 경계 외에 나만이 느끼는, 그리고 그 경계로 인해 심신이 고달파진다면 어떨까? 30여 년 직장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그 경계를 지금 직장에서 온몸으로 느끼는 중이다. 무려 입사한 지 5년이 지났는데도 매일 느낀다. 내가 부족하고 덜 다가가고 덜 소통해서 그 경계를 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그건 아니라 판단하는 것이 나처럼 경력으로 이곳에 온 많은 이들이 그리 느낀다.
직장생활에서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고인 물’이다. 고인 물이 꼭 오래 한 직장을 다닌 것 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곳에서 실감한다. 연차도 있겠지만 더욱 큰 건 “생각”이다. 고인 물이 만들어낸 자기들만의 “케미”, 그리고 그렇게 구축된 그들 만의 “연대”가 그들 머릿속 생각을 지배한다. 보수적 집단이라서 그렇다고 치부하기엔 그들이 구축한 경계가 너무 두텁고 높다. 경계를 무너뜨리려는 노력을 부단히 해 봤지만 오히려 더욱 두터워지는 경계에 스스로 놀랄 뿐이다.
왜 그럴까? 스스로 내린 결론은 그들은 ‘배타적 선민의식’을 지녔다는 것이다. 이 브랜드를, 이 업을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만들고 끌고 가야 하며 다른 시각이나 접근은 불필요하고 용인하지 못한다. 자기들끼리 공유한 경험이 그들에게는 ‘경력’이고 그것이 바이블이 돼 버렸다.
스멀스멀 내 안에 “경계(警戒)” 생기고 경계심으로 굳어진다. 그들이 만든 경계가 나의 경계심을 유발한다. 결국, 나 역시도 나만의 경계를 만드는 지경이 된 것이다. 이건 내가 생각하는 모습이 아닌데 하면서도 말이다.
이런 경계를 경계해야 한다.
그들이 친 경계(境界)나 내가 가진 경계(警戒) 심으로 만들어진 경계나 결국 스스로를 보호하려 만든 결과물이다. 경계를 단순히 구분 짓고, 보호하는 것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경계를 넘어서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경계를 경계해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 경계를 넘어서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것은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시간이 그리 많아 보이진 않는데 어떻게 풀어야 하나? 이 작은 직장 안에서도 풀지 못하는데 전 지구적 경계 풀기가 가능할까?
재미있게 보는 TV 프로그램 중에 <선 넘은 패밀리>가 있다. 국경을 넘어 가정을 꾸린 지구촌 사람들 이야기인데 이들이 넘는 선, 경계가 이 조직 내의 경계보다 쉬운 건가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