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ninArt Jan 02. 2023

 평양냉면과 오키나와 소바

12월의 오키나와, 먹는 이야기 2

 시장통 소박한 소바집 이나카 소바(いなかさば)


도쿄에 살면서 유일하게 그리운 한국 음식은 평양냉면(특히 평양면옥)이다. 한식당이 도처에 즐비하고 안 파는 한국 음식이 거의 없지만 평양냉면을 파는 곳은 없다. 그런데 평양냉면을 사랑하는 나와는 달리 마누라상은 "맹숭맹숭한 맛이 난 별로~"라고 늘 얘기를 한다. 먹거리 욕구가 매우 흡사한 마누라상과 내가 이견을 보이는 평양냉면은 확실히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다.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음식인 오키나와 소바 역시 일본어로 스키키라이 (好き嫌い) 모노 즉,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라고 하는데 오키나와에 묵는 동안 나카무라 소바를 비롯해 몇 곳의 유명한 식당들을 찾아 먹어보았지만 이게 맛있는 건지 맛이 없는 것인지 영~모르겠다. 오키나와 소바의 국물은 다시마, 가쓰오부시에 돼지뼈를 넣고 삶은 맑은 국이어서 맛도 나고 해장으로도 그만이지만 문제는 면이다. 밀가루로 만든 면이 좀 딱딱하고 국물과 같이 삶지 않는 이유로 국물과 면이 단절된 느낌이다. 국은 맛나고 면은 별로고.... 이러니 이게 맛난 건지 맛이 없는 건지 영~ 모르겠다.


한번은 우연히 찾아 들어간 이자카야의 셰프상에게 관광객이 아닌 나하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오키나와 소바 식당을 물어보니 이나카 소바(시골 소바) 집을 자신 있게 추천하길래 오키나와 소바에 관한 호불호의 결론을 기필코 내려보기로 마음 먹고 다음 날 아침 이나카 소바집을 찾았다. 위치는 숙소인 하얏트 리젠씨 나하에서 도보 5분 거리. 소박한 이름답게 시장의 구석진 곳에 소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설마 고릴라로 육수를?


"식당이 아주 깨끗하거나 하지 않은 오래된 곳입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물릴 때로 물린 호텔 조식은 거르고 아침부터 시장통의 후미진 곳을 찾았다.

오전 10시, 이미 손님이 들어 차있던 식당이 우리가 나올 때쯤에는 만석이 되었다. 그리고 셰프 상의 말처럼 깨끗하지는 않았다. 할머니가 혼자 일하시는 식당은 주문부터 음식을 나르고 빈 그릇의 반납까지 모두 셀프다. 마누라상은 이 집의 대표 메뉴인 소-키 소바, 나는 고기가 없는 네기(파) 소바를 주문했는데 자동판매기와 같은 속도로 주문과 거의 동시에 음식이 나온다. 소~키 소바에는 돼지고기 두 점이 토핑으로 올려져 있는데  오랜 시간 삶은 듯 돼지고기가 젓가락으로도 쉽게 잘라질 정도로 부드럽고 잡냄새 없이 아주 깔끔한 맛이다. 반면 네기 소바에는 이름처럼 파만 있다.

육수는 진한 편이어서 해장으로는 적당하고 감칠맛 나지만 다른 오키나와 소바처럼 면과 육수의 단절 현상은 여전하다. 미리 삶아놓은 면을 뜨거운 육수에 그냥 넣어 먹는 탓에 면이 찰지지 않고 온기가 없다. 이러니 호불호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소키 소바와 내기 소바






'흠~ 오키나와 소바 이게 맛있는 건지? 맛없는 건지? 오늘도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가 않네~'


그런데 맛나게 국수를 먹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문득! 아침 일찍 국수 한 그릇을 먹기 위해 이곳을 찾은 사람들에게 평양냉면을 권하고 그 맛을 물으면  "아~이게 맛있는 것도 같고 맛없는 것도 같고 잘 모르겠스므니다~"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은 습관이고 기억이 차지하는 부분이 분명히 많다. 할머니 음식, 엄마 음식이라 말도 있지 않은가. 입으로만 전해지는 맛 만이 아닌 추억과 따스함, 보고픔이 가슴으로 전해지는 음식은 산해진미와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젊은 남녀, 작업복 차림의 근로자들, 연세 가득한 노인분들, 시장 구석의 이나카 소바 집을 아침부터 찾아 소박한 국수 한 그릇을 먹는 이 사람들이 찾는 맛은 결국 돼지뼈와 다시마, 가쓰오부시를 우려 만든 어떤 그리움이 아닐까. 나는 비록 오키나와 소바에서 그리움의 맛을 느낄 수는 없지만 맛있게 국수를 먹는 사람들을 보니 마음 한 구석이 조금 따듯해졌다.


내가 지금 신미(新味)를 찾아 익숙해지려 한들 쉽지도 않고 이미 좋아하는 음식들이 많은데 그럴 이유가 뭐가 있으랴! 오키나와 소바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음식으로 남겨 두어야겠다.

이날 오키나와 소바에 관한 호불호 대신 내린 결론~


"오키나와 소바는 오키나와 사람들의 소울 푸드다"





이나까 소바

위치 : 하얏트 레젠씨 나하 호텔에서 도보 5분 시장 골목

영업시간 : 10:00 ~ 18:00

가격 : 내기(파) 소바 : 단돈 300엔 / 대표 메뉴 소~키 소바(450엔) 고기 추가 가능

지역 사람들만 찾는 할머니 음식을 경험하고자 한다면 추천. 단, 깨끗하지 않으니 주의요!


https://goo.gl/maps/Lm8Kov2EaHDEeJa36















작가의 이전글 12월의 오키나와 먹는 이야기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