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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inArt Jan 30. 2024

지진, 이시카와 탈출기


지진의 시작

2024년 1월 1일 오후 4:10. 주문한 샴페인이 나오고 신년 건배를 위해 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무지막지한 흔들림이 시작되었고 동시에 날카로운 지진 경보 알람이 휴대폰에서 분출되었다. 멀 어찌해야 하나 하는 순간 다시 한번 날카로운 알람이 울려 퍼지며 쓰나미를 경고했다. 

https://youtu.be/X1gHfF7kTi4?feature=shared

6,1도의 지진! 전에 경험해 본 지진과는 달리 흔들림은 강렬하고 길었다. 호텔 라운지의 이곳저곳에서 비명이 들려오고 그릇이며 잔, 인테리어 소품들이 바닥에 떨어지며 굉음을 만들며 지진의 공포를 배로 만들었다. 나와 마누라상은 손을 꼭 잡고 어서 이 광란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려야했다. 순간 밖으로 나가자고 마누라상이 이야기했지만 얕은 지진 대처 상식에 흔들림이 멎을 때까지는 이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 생각나 흔들림이 멈추면 밖으로 나가기로 하고 마음을 진정하려 애를 써보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사람의 걸음걸이가 가능해졌을 무렵, 우리만큼이나 당황한 호텔 직원분들이 테이블을 일일이 돌며 손님들의 부상 여부를 확인했다. 

비명과 굉음으로 가득 찼던 공포의 시간이 지나고 흔들림이 멎자 직원분들이 다시 테이블을 돌며 이동하지 말고 안내가 있을 때까지 자리에 머물러달라고 당부하며 담요를 나눠주었고 이후 로비로 모두 이동하도록 안내를 했다. 


여진과 첫 대피소 경험

로비로 이동해 다음 지시를 기다리는 동안 여진이 계속되었다. 흔들림은 조금 덜 했지만 공포감은 오히려 더 컸다. 여진이 발생할 때마다 이러다 정말 건물이 폭삭 무너지는 건가. 빨리 밖으로 나가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더더욱 분위기가 무거워져만 갔다. 

30~40여 분이 지났을까. 방에 머물던 숙박객들이 참혹한 표정으로 로비로 모여들었다. 멈춰 선 엘리베이터 탓에 계단을 통해 내려온 사람들 중에는 고령자들도 많이 섞여있었는데 당혹한 표정들이 역력했다. 로비는 점점 사람들로 채워져갔고 이내 호텔 직원분들이 3층의 연회장에 대형 대피소가 마련되었으니 그리로 이동하라는 지시에 따라 우리 부부는 난생처음 대피소 경험을 시작했다. 그곳에는 우리 같은 투숙객부터 체크아웃 후 발이 묶인 사람들과 체크인을 하려 온 단체 관광객들 혹은 이시카와 현에 살고 있는 지역 주민들이 섞이게 되었다. 호텔 직원분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생수를 나누어주거나 의자를 나르고 사람들이 누울 수 있도록 작은 공간도 마련하느라 분주했다. 그렇게 30여 분이 지나고 서울 지인들의 안부 전화에 응답하는 동안 여진도 멈추고 어느 정도 차분해진 대피소는 가벼운 웃음소리도 들려올 만큼 안정을 찾아갔다. 


멈춰 선 가나자와 시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7.3도의 강진이 새해 첫날 이시카와 현을 강타했지만, 모든 사람들이 예상했듯 새해 첫날의 해는 어김없이 자취를 감추고 가나자와에 어둠이 내렸다. 우리 부부는 이날 맛있는 저녁을 먹을 생각으로 점심을 거른 상태였는데 대피소에서의 안정이 찾아오자 이번에는 극도의 허기가 온몸을 파고들었고 동시에 생존을  위해 음식을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서둘러 호텔 밖으로 나가 문을 연 식당이 보이면 가리지 않고 들어가 허기를 달래기로 했다. 그러나 가나자와 역 주변은 역을 포함해 기능이 멈춰 선 마을로 변해있었다. 역은 폐쇄되고 입구에는 경찰관들이 폴리스 라인을 치고 경계를 서고 있었으며 문을 연 식당은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는 티브이나 영화에서 보아온 듯 기능을 잠시 멈춘 도시의 한가운데 서있게 되었다.


하는 수 없이 편의점으로 생존 식량을 구하러 발걸음을 옮겼으나 이 역시 만만치 않았다. 가나자와 역 주변의 4~5개의 편의점 중 문을 연 곳은 로손, 단 한 곳인 것을 곧 알아차리게 되었고 빠른 걸음으로 그곳에 닿았을 때는 이미 인산인해의 사람들이 무언가를 사기 위해 몰려들어있었다. 우리는 서로 아무 말 없이 인파여 섞여 식량 확보에 나섰다. 한 시간여의 생존 식량 구하기 작전의 결과는  컵 누들 두 개와 김치, 오뎅바등 간단한 음식. 이거라도 얻은 게 행운이다 생각하며 호텔의 대피소로 돌아갔다. 




반짝이는 10층의 호텔방


호텔로 돌아오자 대피소에는 사람이 눈에 띄게 줄었다. 호텔 직원분이 방으로 돌아가실 분들은 가셔도 괜찮다고 하여  편의점 음식을 소중히 품고 계단을 통해 10층의 객실로 이동했다. 계단에는 숨을 허걱 거리며 객실로 이동하는 사람들과  호텔을 벗어나기 위해 무거운 짐 가방을 가지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러시아워 양방향 차로의 차들처럼 느린 속도로 묵묵히 이동하고 있었다. 중간중간 금 간 벽들이 지진이 얼마나 컸는지를 상기시켰고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길고 긴 계단을 올라 도착한 10층의 호텔 방문을 열고 조명을 켜자 방안 이곳저곳이 반짝이며 빛을 내고 있었다. 깨진 와인 잔의 파편들이 카펫이며 찻장에 산재했고 떨어진 와인병들도 방 안 이곳저곳을 뒹굴고 있었다. 지진 당시 방안에 있었으면 얼마나 무서웠을까 생각하니 다행이기도 했지만 유리 파편이 반짝반짝 빛나는 방에서 밤을 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착잡하기도 했다. 처리할 수 있는 만큼만 유리들을 제거하고 나서 허기가 한참 지난 배를 채우려 컵 누들을 준비했고 한두 젓가락쯤 입에 넣었을 무렵 강한 흔들림과 지진 경보음이 다시 날카롭게 휴대폰을 울렸다. 지진이 발생한 후 가장 큰 여진이 다시 온 세상을 흔들었다. 



다시 대피소로

무슨 맛인지 전혀 모르겠는 컵 누들을 허겁지겁 쑤셔 넣고는 배낭에 간단한 짐을 싸서 오늘 밤은 호텔의 대피소에서 날 생각으로 허둥지둥 호텔방을 나서 금이 간 계단 벽을 따라 대피소로 내려갔다. 저녁 8시쯤 되었을라나?  대피소에는 전보다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어 체크아웃을 한 사람들이나 지역 사람들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방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괜히 내려왔나 생각이 들었어도 유리 파편과 여진에 흔들리는 방에서는 당분간 나와있고 싶었다. 그리고 20여 분을 대피소에서 지친 몸을 쉬어보았다.


대피소 한쪽에는 커다란 보드가 설치되어 신칸센 현황이나 호텔의 공지사항이 공시되었다. 물론 도쿄나 기타 지역으로 가는 기차및 항공은 모두 멈추었다는 검은색 글자들이 주변의 공기를 더욱 무겁게 가라앉혔다. 얼마 후 간단한 음식을 마련했다는 안내가 있어 가보니 흰쌀밥에 된장국, 삶은 프랑크 소시지가 라운지 카페 주변에 준비돼있고 상량한 미소를 가득 담은 직원분들이 정성을 다해 음식을 덜어주었는데 똑같이 놀랐을 직원분들의 정성에 간단한 음식을 받아오는 내내 감사의 인사를 몇 번이나 전했다. 그렇게 받아온 쌀밥과 미소국, 소시지의 밥상은 감사하고 따스하게 혀를 지나 위로 흘러내렸다.



감사한 호텔 직원분들

밤에 직원분들에게 부탁해 바큠으로 유리 조각들은 겨우 처리하고 어찌 잠이 들었다. 밤새 5도가 넘는 지진이 다시 발생하긴 했지만 극도로 피곤해진 몸에 별 반응 없이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어제 밤만 해도 엉망이 되었던 로비의 레스토랑을 직원분들이 밤새도록 고생한 덕분에 조식 부페가 가동이 되었다. 평소의 50% 정도 되는 음식이 차려지긴 했지만, 진수성찬처럼 맛있게 먹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고생하던 식음료 팀장 L 상이 이른 아침부터 근무를 하고 있길래 잠은 자고 일을 하는 것인지 물으니 집에는 못 가고 호텔 내부에서 4시간 새우 잠을 잤다고 이야기를 했다. 지진도 겪고 고객들을 챙기고, 새우잠을 자며 아침을 준비한 직원분들이 지금 생각해도 너무 감사하다. 

그리고서 방으로 돌아오니 티브이의 뉴스에서는 현재까지 확인된 인명피해는 35명, 행방불명은 아직 파악조차 되지 않았고 마을이 화재로 통째로 사라져버린 와지마시의 화면이 반복돼서 송출되었다. 그리고 3~5일간 강한 지진의 가능성을 예측하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흘러나왔다. 



선더버드 타고 이시카와 탈출

도쿄행 신칸센이 내일이면 복구된다는 기사를 보고 급히 티켓 예매를 시도해 보았지만 벌써 동이 나고 없었다. 호텔은 주말까지 예약해놓은 상황이지만 멈춰 선 엘리베이터, 금이 간 계단의 벽들, 강한 여진을 예고하는 뉴스들을 보고 있자니 '일단 가나자와에서 나가고 보자'라는 생각이 번뜩 들어 급히 인터넷을 가동해 교토행  선더버드 6시 티켓을 두 장 구하게 되었다.


기차에 오르기 전,  도쿄 친구인 마츠바상을 만나기로 했다. 건축가인 그와는 같은 아트 컬렉터 모임에서 알고 지내는 사이인데 와이프의 고향이 이시카와현 근처의 토야마시여서 연말연시를 가족들과 함께 근처를 여행 중이던 참이었다. 우리가 묶고 있는 가나자와 하얏트 호텔과 가나자와 역을 두고 마주 보고 있는 ANA 호텔방에서 지진을 경험한 그도 평생 겪은 가장 큰 지진이었고 많이 놀랐지만 호텔은 별 피해 없어 엘리베이터며 레스토랑도 정상 운영을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리고 아내와 딸은 토야마의 시골집에서 더 묶기로 했고 자신은 운 좋게 도쿄행 신칸센 표 1장을 구해 내일 일찍 가나자와를 떠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방에서 들고 온 화이트 와인 한 병을 운영하지 않는 호텔 레스토랑의 한편에서 플라스틱 컵에 나누어 마시며 지진 이야기를 한참 나누고 나서 가나자와 역의 개찰구까지 배웅을 해주는 마츠바상과  도쿄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서로의 안전을 기원하며 헤어졌다.

교토행 기차에는 우리처럼 이시카와 현을 벗어나려는 사람들이 많은지 만석이었다. 창밖은 이미 어두워 보이는 것이 거의 없었지만 덜컹거리는 기차의 마찰음을 듣고 있자니 이시카와를 벗어난다는 안도감으로 다가와서인지 이내 잠이 들었다. 

이렇게 해서 2박 3일간의 가나자와 여행은 본의 아니게 마무리가 되었고, 교토에의 나흘간의 피난 겸 여행이 시작되었다.


'노토반도 지진'이란 공식명이 붙은 이번 지진으로 2024년 1월 29일 현재 236명이 사망하고 19명이 생사가 불명한 상황이며 1만 4천 명이 삶을 터전을 잃고 피난민 상태에 놓여있다. 우리 부부는 다행히 피해는 없었지만 노토 지진의 피해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집으로 돌아와 이시카와 현의 공식 사이트를 통해 작은 성금을 보내고 더 이상 피해가 없이 빠른 복구가 이루어지기를 기원해 봤다. 

어제 오전 도쿄의 집에서 코앞인 도쿄 만을 진원지로 하는 4.8의 지진이 발생해 일요일 아침 놀란 가슴을 다시 한번 쓸어내렸다. 지난 가나자와에서 지진을 경험한 후로 여러 생각들을 해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호텔 직원분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공포를 뒤집어쓴 상황에서도 질서를 내려놓지 않는 일본 사람들의 모습들은 오랫동안 이야깃거리가 될듯하다. 

그리고 삶과 죽음은 역시 우리의 바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자연 섭리의 일부라는 것을 명백하게 상기하게 되었다. 하루, 오늘, 현재, 지금 순간의 소중함! 불평 말고 즐기며 감사하며 자연이 우리에게 남겨준 소중한 시간들을 즐기며 살아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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