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은 생각이 여러 갈래의 길을 낸다.
검정 테두리 상자 안에 까맣고 어쩌다 파랗고 붉은 숫자가 벽에 걸려 있다.
네모난 상자 안 숫자는 새를 닮았다.
스물아홉 마리의 새가 살던 새장을 부우욱하고 뜯어낸다.
뜯긴 선을 따라 종이밥이 삐죽삐죽 매달려 있다.
종이 깃털 몇 개가 지그재그로 방향을 그리며 바닥으로 너울너울 떨어진다.
날개를 접고 고요하게 앉아 있던 마지막 새 한 마리마저 날려 보냈다.
내게 남은 새와 내게서 떠난 새들에 대해 생각하는 열한 시, 라디오에서는 샹송이 흘러나온다.
하얀 종이 위에 날개를 접고 앉아 있던 새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렸을까.
떠나면 두 번 다시 나에게 돌아오지 않을 벽에 걸린 새장 속 남은 새들을 바라본다.
날개를 접고 웅크려 한 번도 울지 않은 새들•••.
그들도 차례차례 새장문을 찢고 접어둔 날개를 펼쳐 빈 허공으로 날아가겠지.
모두 서로 다른 울음소리를 내면서 날아가겠지.
얇은 종이 속 새장 안에 몸을 가둔 새들은 나의 새가 될 수 있을까.
서른한 마리의 새와 그리고 스물아홉 마리의 새가 내게서 떠나는걸 나는 지켜보았다.
푸드덕푸드덕 날아가는 소리가 이명처럼 들린 것도 같다.
뜯긴 새장을 반으로 접는다.
반으로 접힌 새장을 한번 더 반으로 접는다.
날아가버린 새가 두고 간 그림자가 어룽어룽 비친다.
새들이 놓고 간 그림자 몇은 눈물을 찍어내고 또 몇은 낯을 붉히고 대부분은 말없이 긴 하품만 어쩌다 쏟아낸다.
이제 나와 눈이 마주칠 벽에는 열개의 새장만이 걸려 있다.
아직 날아가지 않은 새가 든 새장의 열쇠를 나는 단 한 개라도 가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