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랄하고 경쾌해서 가볍게 만날 수 있는 공원은 태생부터 사람 냄새 진하게 풍기는 일상의 숲이다. 우리 동네만 해도 아담한 공원이 여러 군데다. 그중에서 나는 배릿하고 달치근한 아이들 냄새와 웅숭깊고 넓게 뻗은 뿌리에서부터 응축된 시간의 결이 나뭇가지를 흔들어 오래된 시간의 엇구수한 냄새가 뒤섞여 있는 공원이 좋다.
이곳에는 다른 공원에서 볼 수 없는 눈에 띄는 나무 한 그루가 있다. 돌로 된 이름표를 달고 수년 전 이곳으로 옮겨왔다. 이름표에 250살로 추청 된다고 기록돼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은 260살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지 싶다. 노거수 주변은 시골 마을에 가면 볼 수 있는 마을 주민들의 쉼터를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돌로 된 의자와 크고 작은 평상이 놓여 있다.
노거수 아래 돌의자에 앉아 있으면 나는 시간을 거슬러 천진한 네 살 아이가 된다. 할아버지가 지내던 사랑채에 아침 밥상을 들고 가는 엄마를 아기똥한 걸음으로 따라간다. 할아버지 무릎을 차고앉아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할아버지 아무 걱정 하지 마세요"라는 어린 손녀의 말에 병색이 돌던 할아버지의 얼굴이 잠시 환해지며 미소가 피어난다. 오빠가 들려준 이야기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할아버지는 그 해에 돌아가셨지만 나는 할아버지가 집 둘레에 심어놓은 밤나무가 떨어뜨려 놓은 밤을 먹으며 밤살을 포동포동 찌웠다.
팽나무어르신은 할아버지 나무가 아닐까.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간을 살아온 노거수가 넉넉한 품을 내어준다. 이백 년 넘는 긴 시간 동안 아프게 품어준 것들은 얼마나 많았을까. 넉넉한 품을 가졌다는 것은 고난의 시간도 많았다는 것이 아닐까. 지금도 여전히 푸르게 25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가는 팽나무 어르신을 보고 있으면 할아버지를 다시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기나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도착했다. 풍성한 나뭇잎으로 내리쬐던 따가운 햇볕을 가려 그늘을 만들어주던 나무들이 잎을 떨구고 있다. 팽나무 할아버지도 바람의 그물에 걸린 잎들을 바닥으로 내려놓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