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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하유지향 Dec 31. 2024

새해에는

식욕이 돋는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묵은해를 그냥저냥 잘 마무리하나 했는데 무슨 이유인지 많이 혼란스럽더군요. 이런 와중에 내가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는데요.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에 대해 명확하지 설명되지 않았으므로  짐작만 해볼 뿐이었는데요. 우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부터 한 겹 한 겹 넘기며 살펴보게 되었는데요.

독서 때문이라면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단숨에 읽어 내려갔었던 것. 국가적 사건 때문이라면 비상계엄 일 테죠. 이도저도 아니라면 겨울철이라 일조량이 줄어든 탓이라고 해야 할까요? 추운 날씨에 바깥활동을 꺼린 탓일 수도 있겠네요.

살아오면서 식욕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가 세 번 있었는데요.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세 번째도 아이를 뱃속에 품고 있었을 때였어요. 다행히도 입덧이 심하지 않아 임신 기간 내내 식욕이 최고점을 찍었었죠. 그때는 먹고 먹고 먹어도 다 먹어치울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렇지만 딱 그때뿐이었어요. 식욕은 정말 거짓말처럼 뱃속에서 아이가 뛰쳐나오자마자 홑몸이던 시절로 돌아왔으니까요. 아무튼 나에게선 찾아볼 수 없던 나였던 시간이었습니다.

임신기간 동안의 식욕은 다시 생각해 보면 오로지 제 식욕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그러니 '나'라는 존재는 식욕 없이 살고 있다고 해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네요. 식욕은 없지만 그렇다고 먹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참 아이러니합니다. 심지어 끼니때마다 꼬박꼬박 챙겨 먹지요. 최대한 간단하고 손쉬운 것을 찾으려고 발버둥을 칠 때가 많긴 합니다. 자칫 잘못해 국이나 찌개 같은 성찬을 마련해 놓고 입맛을 잃을 때도 있거든요. 먹으려고 준비하는데 에너지를 다 써버려서 먹으려는 욕구가 안드로메다까지 도망가버린 겁니다. 이 사태는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 저와 함께 하는 사태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언니는 입맛이 없다며 말을 했었는데요. 그 후로 두어 달을 더 살고 언니가 떠났죠.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쯤 먹고 싶은 장소를 말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야 전해 들었습니다. 가슴이 아려왔습니다. 그때 뭔가 아득하지만 알 것도 같더라고요.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보다 먹고 싶은 장소가 무엇인지가 더 필요했다는 것을요.

지난여름 저는 옥수수의 계절을 보냈는데요. 집 앞 마트에서 파는 푸릇하고 싱싱한 옥수수는 아니었어요. 아무리 옥수수가 먹고 싶더라도 저는 제가 사는 곳에서 옥수수를 사지 않는다는 걸 발견했지요. 제게 옥수수는 먹고 싶은 장소였던 겁니다. 언니도 그랬던 것이었어요.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없는 곳에서 너무 오래 살다 보니 달아난 입맛이 길을 잃었던 게지요.

새해에는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든 사람들이 먹고 싶은 장소에 있고자 하는 소망이 자주 이루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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