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음식을 가장 먼저 먹는다? or 가장 나중에 먹는다?
밥반찬으로 나온 소시지는 아껴두었다가 가장 마지막에 먹기.
새로 발매된 예쁘고 귀여운 스티커는 보물상자에 넣어두고 절대로 쓰지 않기.
마음에 꼭 드는 옷은 옷장에 예쁘게 걸어두고 바라만 보기.
비싼 학용품은 쓰지 않고 곱게 모셔두기.
나는 그런 아이였다.
하루는 친구와 약속을 한 날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약속장소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데 친구에게서 다 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화사한 옷의 그녀가 나에게 손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비가 잔뜩 쏟아지는 날인데도 친구는 하얀색 바지에 하얀색 상의를 입고 있어서 내가 경악을 하며 물었다.
"히익! 야 너 이거 흰 옷인데 더러워지면 어떡해?"
"더러워지면 빨면 되지! 내가 좋아하는 옷인데 예쁘지?"
"좋아하는 옷을 비 오는 날에도 입어?"
"당연하지! 좋아하니까 매일 입어도 안 질려."
그때 받은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옷은 평소엔 절대 입지 않는다. 특별한 날에나 입을까? 그런데 친구는 좋아하는 옷을 비 오는 날에도 입고 나가는구나.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된 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친구에게 충격을 받은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함께 식당에 도착해 자리를 잡고 앉아 주문을 했다. 친구는 새우튀김이 있는 덮밥을, 나는 치즈돈가스를 주문했다. 음식이 우리가 앉아있는 테이블에 나오자마자 우리는 부산스럽게 사진을 먼저 찍은 후에 식사를 시작했다. 나는 치즈돈가스를 아껴먹으려고 먼저 양배추 샐러드부터 먹는데 친구는 처음부터 새우튀김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와, 새우부터 먹어? 나는 제일 맛있는 건 제일 나중에 먹는데!"
"왜? 제일 맛있는 걸 제일 먼저 먹어야 가장 맛있을 때 먹지! 난 맛있는걸 먼저 먹고, 맛이 없는 건 그냥 남겨."
친구의 말이 너무나도 감명이 깊었던 탓인지 아직까지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그날 이후 나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나는 항상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곱게 모셔두는 것을 좋아했다. 옛말에 '아끼다 똥 된다.'는 말이 있듯이 물건을 자주 쓰지 않고 고이고이 모셔두면 결국엔 고장이 나거나 쓰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지금껏 좋아하는 것을 쓰지도 못하고 버리게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물건뿐만이 아니었다. 맛있는 음식을 마지막까지 남겨두었다가 결국 배가 불러서 제대로 맛보지도 못하고 남긴 적도 많았다.
공수래공수거. 사람은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간다. 죽을 때 가져갈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고이고이 금이야 옥이야 모셔만 두었을까? 나도 내가 좋아하는 옷을 날씨에 상관없이 입고, 맛있는 것을 가장 맛있을 때 먹고, 좋아하는 물건을 쓰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그 친구를 만나며 하게 되었다.
미니멀리스트로 살아가면서 더더욱 그 마음은 견고해졌고 지금은 좋아하는 것들에 둘러싸인 삶을 살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만년필로 고심해서 고른 예쁜 다이어리에 일기를 쓰고, 가장 편하고 예쁘다고 생각하는 옷을 날씨와 계절에 상관없이 입고, 가장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을 가장 맛있을 때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과거의 내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누리고 즐기며 사는 삶을 나는 앞으로도 영위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