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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또 승무원

얼떨결에 승무원이 되었습니다.

by 오리온

"네, 브리핑 시작하겠습니다."


매 비행 전, 브리핑 실에 모여서 해당 편에 대해 함께 숙지해야 할 공지사항과 특이사항을 공유하고 해당 항공편에 대한 특이사항과 비상탈출 절차와 비상 장비들 프리 플라잇 체크를 다시 한번 더 점검을 하고 나서야 공항으로 향하는 셔틀을 탔다. 공항에서는 승무원 전용 줄로 최대한 빠르게 해당 게이트로 향할 수 있다.


항공기에 도착하면 승무원들은 바쁘다. 항공법에 의거해 매뉴얼에 따라 항공기 내 비상장비들을 체크하고 확인해야 하고 그 외에도 이것저것 체크해야 할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한차레 바쁘게 정신없이 모든 것을 확인하고 나면 승객들의 보딩이 지체 없이 시작된다. 모든 비행을 통 털어서 보딩이 가장 힘들고 바쁜 시간이라고 확신한다. 물 밀듯 밀려들어오는 승객들과 한정된 선반 공간에 테트리스를 하는 듯, 승객들의 짐들을 차곡차곡 정리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한다. 보딩이 끝나고 이륙 준비를 할 때면 그제야 한숨 돌릴 수 있다.


이륙 후, 만 피트 사인이 울리면 다시 바빠진다. 서비스 카트를 차려야 하고 국제선이라면 입국 서류를 나눠줘야 한다. 커피를 브루하고 오렌지 주스와 생수, 그리고 기타 서비스에 필요한 것들을 다 차리고 나면 아일로 나가 서비스를 시작한다. 한 줄씩 차례대로 서비스를 끝내고 나면 쓰레기 회수를 한 차례하고 국제선이라면 면세품 판매 카트를 끌고 나가야 한다. 면세 담당 승무원은 착륙 전까지 인벤토리까지 끝내야 하니 일본 같은 비행시간이 짧은 국제선인 경우에는 숨 돌릴 틈 없이 바쁘다.


출근할 땐 단정하고 잔머리 하나 없이 깔끔했던 머리가 퇴근할 때면 여기저기 삐져나온 잔머리들로 볼품없어졌다. 분명 승객의 눈으로 봤을 때 승무원들은 항상 우아하고 단정했는데, 왜 나는 이렇게 항상 정신없고 덜렁대는지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에 빠져 허우적 대기 일쑤였다.




원래는 외국 항공사를 가고 싶었다. 한국의 항공사에 지원하기는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 항공사를 지원하는 다른 승무원 준비생분들에 비하면 객관적으로 보나 주관적으로 보나 예쁘지도 않고 가녀리지도 않다. 그런 내가 그분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할 거라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기에 외항사로 눈을 돌렸다. 물론 지금은 외항사도 국내 항공사 못지않게 외모를 많이 본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땐 그걸 몰랐다.


내가 가고 싶었던 아랍 에미레이트 항공, 카타르 항공, 에티하드 항공은 당시 한국에서 공채를 내는 일이 드물어서 해외에서 열리는 오픈데이라는 면접 이벤트에 직접 참가를 해야만 했다. 면접을 위해 항공권을 사야 했고 숙소비를 지불해야 했지만 이제 갓 20살을 넘긴 나에게 그만한 돈은 없었다. 그렇다고 부모님께 손을 벌리자니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그리고 뭣보다 면접 경험이 없었기에 돈은 돈대로 쓰고 면접에서 고배라도 마시면 너무 마음이 아플 것 같아서 선뜻 도전하지 못했다. 돈도 돈이지만 영어도 영어였다. 당연히 영어로 면접이 진행이 될 텐데 나는 영어에 대한 자신이 전혀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항공사들의 공채 시즌이 다가왔다.


평생 대구에서 살았기 때문에 가까운 부산에 베이스를 둔 에어부산이라는 항공사에 관심이 갔다. 집에서 막내이고 응석받이로 컸기 때문에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취업을 하게 되면 힘들 것 같았다. 쉬는 날이면 빠르게 집에 오갈 수도 있는 부산이 나에게 딱 적당했다. 지금껏 외항사만 준비하던 내가 에어부산에 합격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김칫국을 시원하게 원샷하고 지원서를 제출했다.


서류 합격이 발표되는 날, 주변에서 함께 지원한 친구들과 아침부터 심장을 졸였다. 그날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시간이 왜 그렇게 느리게만 흘러가는지, 마치 1분이 10분과도 같이 느껴졌다. 대망의 발표 시간. 주변 친구들의 합격, 불합격 소식에 자신감을 상실했다. 하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어차피 불합격이겠지 하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결과 확인창을 확인했다. 합격이었다.


1차 면접이 있는 날까지 열심히 다이어트를 했다. 키는 힐을 신으면 커버가 된다지만 체형은 아무리 가리려고 해도 가려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면접날 받을 메이크업과 승무원 면접용 올림머리도 알아봤지만 가격이 내가 선뜻 지불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나는 외항사 면접을 위해 돈을 모으고 있었기 때문에 부산까지 가는 교통비만으로도 빠듯했다. 그래서 메이크업과 머리도 스스로 하기로 했다. 면접 당일, 일주일을 쫄쫄 굶어 3킬로를 감량했다. 까만 정장치마에 하얀 실크 블라우스를 입고 어설프게 화장을 하고 승무원 머리를 했다. 누가 봐도 직접 한 퀄리티였지만 상관없었다. 면접장에 도착해 키와 뭄무게를 재고 한참을 기다렸다. 우리 조는 8명이 한 조였는데 나는 내가 제일 원하지 않았던 8번 면접자가 되었다. 다행히 내 바로 앞 7번 면접자가 나와 함께 외항사 스터디를 하던 언니여서 마음을 편히 가지고 면접장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리온 씨, 앞의 지원자가 뭐라고 말했는지 요약해서 말해보세요."

영어영문학과인 7번 면접자인 언니는 토익 점수가 높았다. 그래서 면접 내내 면접관들에게 영어 관련 질문을 받았는데 그중 하나가 영어로 자기소개를 해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영어를 잘하지 못했지만, 7번 언니와 외항사 스터디를 함께 했기에 그녀의 답변이 어떤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늘이 도왔다. 이미 알고 있는 티가 나지 않게 차근차근 면접관에게 그녀의 답변을 요약해서 대답했고 그들은 만족한 듯한 표정으로 내 지원서를 훑어봤다. 일어일문과인 나에게는 분명 일본어와 관련된 질문이 들어오겠지라는 예상은 적중했다. 면접관 중 한 분이 일본에서 몇 년 살다 오셔서 일본어에 아주 능통하셨는데, 갑자기 나에게 일본어로 질문을 하셨다. 조금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일본어로 답변을 했고 1차 면접은 그게 다였다.


1차 면접도 어찌 된 일인지 합격을 했다. 마지막 임원 면접도 1차 때와 변함없이 갔다. 화장도 머리도 내가 했고 잔뜩 긴장을 한 채로 면접장에 입장했다. 이번에는 8명 중에 4번째로 입장을 했는데 면접관들의 관심은 2번 면접자에게 쏠려있었다. 운이 좋아 1차 면접을 통과했지만 임원 면접까지 통과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 나에게 질문이 들어왔다.

"제일 예쁘다고 생각하는 신체 부위는 어디예요?"

누누이 말했지만 나는 절대 가녀리지도 않고 미인형도 아니다. 그래서 내가 어디를 대답하든 면접관 모두가 그 신체부위를 유심히 볼까 봐 무서워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신체부위를 이야기했다.

"네, 저는 저의 귀가 가장 예쁘다고 생각합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예쁜 귀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저의 귀가 있기에 누군가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경청할 수 있고 마음으로 공감해 줄 수 있기 때문에 저는 제 귀가 가장 예쁘고 자랑스럽습니다."

임원 면접에서는 단 하나의 질문만 받았다. 2번 지원자는 계속해서 관심을 받았지만 나는 흔히 말하는 병풍 같은 존재였다. 조용히 면접을 끝내고 나서 몇 주 후에 열리는 에미레이트 항공의 오픈데이를 위해 말레이시아로 떠날 계획을 짜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결과는 최종 합격이었다. 함께 임원 면접을 봤던 2번 지원자도 동기로 보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에어부산의 12기 승무원이 되었다.




에어부산에서 승무원으로 일을 하면서도 외항사에 대한 열망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해외에서 사는 것도 해보고 싶었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유럽으로 비행을 가보고 싶었다. 왜인지 중동 항공사의 유니폼의 모자들이 그렇게나 예뻐 보였다. 유럽이나 북미 항공사도 도전해보고 싶었지만 언어적인 장벽이 있거나 영주권이나 시민권이 요구되는 항공사도 있어서 일찍이 포기했지만 중동의 항공사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미련 없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말레이시아 이포로 향했다. 아랍 에미레이트 항공의 오픈데이가 열리는 곳이었다. 국내의 면접과는 다르게 진행이 되었는데 면접장에 들어서면 CV 드롭을 하고 합격이 되면 1차 디스커션을 한다. 거기에서 또 합격을 하면 2차 디스커션을 하면서 암리치를 잰다. 2차 디스커션에서도 살아남으면 영어 테스트를 보고 합격자들만 다음 날, 파이널 면접을 볼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운이 좋게도 파이널 면접까지 봤지만 골든콜을 받진 못했다.


영어 회화를 좀 더 갈고닦고 싶었다. 영어를 써야만 하는 한 레스토랑에서 일을 시작했다. 돈은 모였지만 영어 실력은 늘지 않았다.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카타르 항공의 오픈데이를 갈 수 있을 정도의 자금을 모아 싱가포르로 향했다. 카타르 항공과 아랍 에미레이트 항공의 오픈데이는 비슷한 듯 달랐다. CV 드롭을 하고 합격자들은 영어 테스트를 본다. 영어 테스트 합격 후에 1차 디스커션이 있고 워드 슈팅과 암리치를 쟀다. 그리고 2차 디스커션을 하고 파이널을 보는 시스템이었다. 이번에는 다행히 합격을 했지만 카타르 항공에 입사하진 않았다. 갑작스러운 결혼으로 영국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가끔 후회를 하기도 했다. 중동에서 승무원으로 일을 해보는 것도 좋았을 것 같은데 그 기회를 발로 차고 영국으로 온 것이 아쉬웠다. 영국에서 3년을 지내고 미국으로 들어가게 되면 미국 항공사를 한 번 도전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아쉬움을 달래곤 했다. 그렇게 미국으로 건너온 후로부터 바로 항공사에 지원을 시작했고 지금은 미국의 항공사에서 다시 또 승무원으로 일을 하고 있다.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고 하는데 비행이 딱 그 말과 닮아있다. 한번 승무원이 되어 비행을 시작하면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쉴 수는 있지만 결국 다시 비행이 하고 싶어 진다고들 한다. 나 역시 다시 승무원으로 하늘을 날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비행을 그리워했는지 모른다. 복지가 탄탄한 미국 항공사는 한 번 입사하면 퇴사를 하지 않는 시니어들이 많다. 미국 항공사 비행기를 타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어르신들이 비행을 하는 모습을 아주 흔히 볼 수 있다. 1961년 입사자도 아직 현역 승무원으로 비행을 할 수 있는 곳이 미국 항공사이다. 이제 내 인생에 비행을 그만둘 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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