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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트레이닝

두 번째 윙

by 오리온

"좋아, 면접은 이것으로 끝이야. 나를 따라올래?"


긴장을 했더니 안 그래도 잘하지도 못하는 영어가 더 안 됐다. 떠듬떠듬 겨우겨우 문장을 만들어 질문에 답변했다. 인내심 있게 내 답변을 들어주는 면접관에게 연신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그럴 때마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너는 아주 멋지게 해내고 있어!"라며 나를 다독여줬다. 마음씨 착한 면접관을 만나 참 다행이었다. 그녀 덕분에 긴장이 조금 풀렸는지 초반보다는 수월하게 면접을 이어갔고 약 1시간가량의 1 대 1 면접을 본 후에 그녀가 날 어딘가로 데려갔다. 중앙 복도에 있는 엘리베이터. 미국 항공사의 최종 면접은 당일에 합격인지 불합격인지 알려준다. 면접을 보는 입장에선 그게 오히려 속이 시원하고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지금 합격인 걸까, 불합격인 걸까?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우리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알쏭달쏭한 내 표정을 읽었는지 면접관이 위층에 있는 대기실로 간다고 나에게 살짝 귀띔을 해줬다. 무슨 대기실? 또 면접이 남았단 말이야? 휴스턴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고층 휴게실에 앉아서 오랜 시간 동안 말을 하느라 건조해진 목을 축이고 있었다. 뭐야, 나 탈락이네. 그렇게 생각이 미친 내 옆으로 한 여성이 다가왔다. 나와 면접을 봤던 면접관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오, 당신이 오리온인가요?"

"네. 제가 오리온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면접은 아주 성공적이었어요! 합격입니다!"


너무 놀라 들고 있던 종이컵을 떨어뜨려 물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기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해서 우왕좌왕 당황하는 나를 보며 그녀는 웃었다.


"그건 우리가 치울 테니, 당신은 이리로 와서 입사 서류를 쓰셔야 해요."


그녀를 따라가자 이미 그곳에는 입사서류를 쓰고 있는 합격자들이 몇몇 보였다. 면접 내내 함께 이야기하며 수다를 떨던 에이미도 있었다. 이제야 실감이 났다. 나 정말 합격했구나.




항공사 승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면접에서 합격하는 것이 다가 아니다. 트레이닝을 마치고 윙을 획득해야지만 진정한 승무원이 될 수 있다. 솔직히 한국에서 한 번 입사교육을 받아본 적이 있었기에 이번엔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정말 크나큰 오산이었다. 일단 트레이닝은 7주 동안 이어지는데, 안전을 제일 우선 가치로 여기는 미국 항공사인만큼 서비스 훈련은 없고 7주 전부 안전 훈련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정도는 전혀 문제가 될 게 아니었다. 정말 문제는, 시험에서 떨어지면 정말로 퇴소를 시킨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훈련을 받을 때에도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입사를 취소하고 집으로 보낸다는 교관님들의 엄포는 있었지만 실제로 집으로 간 사람은 없었다. 재시험을 쳐야 하면 충분한 시간을 주기도 하고 교관님들이 많이 도와주시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미국 항공사는 정말로 입사를 취소시킨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호텔방으로 돌아왔는데 함께 방을 쓰던 룸메이트가 방을 비우고 집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100명으로 시작한 우리 동기들이 졸업식 때는 60명 정도로 줄어있었다. 심지어 졸업식 전날에도 집으로 돌아가는 동기들이 6명이나 되었다.


모든 트레이닝 과정은 물론 영어로 진행이 되고 시험도 영어로 치러진다. 영어에 큰 자신이 없는 나에게는 그 부분이 가장 공포였다. 내가 수업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시험지를 잘 해석해 낼 수 있을까? 동기들이 50의 노력을 들여야 한다면 나는 100을 노력해야만 했다. 수업 중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담당 인스트럭터에게 가서 따로 질문을 하기도 했고, 시험을 치를 때 이해가 되지 않는 단어들이 나오면 조용히 손을 들어 사전의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매일을 버텨냈다. 비상탈출 드릴 시험, 떨어졌다. 잘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떨어졌다. 재시험을 치를 수 있는 기회가 한 번 있지만 이미 마음이 꺾였다. 재시험을 치르기 위한 대기를 하는 중에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너무 힘들고 지쳤다. 수업이 끝나면 동기들처럼 쉬고 싶은데 예습과 복습을 하지 않으면 수업에 따라갈 수도 없기에 잠을 줄여가며 공부했다. 그렇게 겨우겨우 매일매일을 버텨가며 몇 주를 견뎌냈는데 여기서 한 번 더 떨어지면 나는 집에 돌아가야만 한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재시험을 치렀는데 다행히도 합격이었다. 슬라이드를 타고 내려오자마자 주저앉아 울었다. 정말 엉엉 울었다.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그렇게도 빠지지 않던 살이 7주 만에 8킬로나 빠졌다.


졸업식 날, 윙을 보자마자 감격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이 윙을 달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다시금 떠올렸다. 그리고 미국인들도 떨어지는 트레이닝에서, 미국에 온 지 2년도 되지 않은 한국인이 당당하게 윙을 얻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다.

드디어 해냈다.


내 인생의 두 번째 윙을 가슴에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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