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돌아가신 날, 난 전화 벨소리와 진동에도 감정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로부터 5년 3개월 하고도 보름 뒤인 2020년 5월 26일, 또다시 전화기 진동소리에 불안감이 들었다. 역시나... 발신자에 뜬 이름 '전XX부장'. "여보세요?", "김 작가님, 전 XX입니다.", "네, 부장님", "다름이 아니라 이번 개편에 XXXX(당시 내가 맡고 있던 코너)를 없애기로 했어요.", "아.... 네", "그래서 다음 달 26일까지만 하시면 됩니다.", "영상 편집자도 알고 있나요? 전달해 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그 와중에 얼마 전 일을 시작한 영상 편집자까지 챙기는 오지랖)."
반갑지 않은 부장의 전화는 해. 고. 통. 보. '역시나 이번에도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프리랜서 작가의 삶이란 맡고 있던 코너가 없어지면 같이 사라지는 것인걸...' 이렇게 애써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
그런데 웬일? 마지막 근무 주, 새로운 사람에게 인수인계를 하란다? '없어진다며??? 근데 무슨 인수인계?' 따지고 싶고 솔직히 인수인계고 뭐고 안 하고 싶었다. 그 친구를 보기 전까지는. 근데 아무것도 모르는지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건지 이것저것 물어보는 New face(퇴사하고도 나한테 연락해 아이디와 비번을 물었던 그녀).
'그래, 새로 온 사람이 무슨 죄냐.' 싶어 꼼꼼하게 인수인계서를 작성하고 마치 내가 싫어 떠나는 것처럼 하나하나 열심히 알려줬다. 근데 '아니, 얘는 그렇다 치고 없어진다며 9년 일한 날 자른 인간들은 뭐야! 그렇게까지 내가 싫었니? 나도 니가 싫긴 했다. 그래도 거짓말은 좀 아니지 않니?' 이때부터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가장 날 화나게 한 건, 2020년 6월 26일 마지막 근무(내가 일한 코너는 생방송 아침 뉴스라 월~토, 공휴일 없이 새벽 3시 출근, 뉴스 끝나면 퇴근)를 마치고 '이제 여기도, 이 일도 끝이구나!' 하며 울컥울컥 하는 나에게 "이따 보도국장이 올 거니까 오면 같이 기념사진 찍고 가요."라고 미친 소리 지껄이는 차장과 헛소리를 뒤로 하고 9년 다닌 회사에서 죄인처럼 도망치듯 나온 나에게 계속 전화해대는 부장.
부장에게 마지막 문자를 보내며 결심했다. '공감 능력 떨어지는 기자 X들. 거짓말까지 하며 9년 넘게 일한 사람을 하루아침에 자르면서 기념사진을 찍고 가래? 뭘 기념하는데? 이건 아니지.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는데 이 X들아. 두고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