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때문이 아니었어.
음식맛을 잘 모른다.
젊을 적 유학 핑계를 대야 할까?
살기 바쁜데 음식 맛볼 여유가 없었다.
게으름도 한몫을 해서인지 남의 해준 음식이라면 뭐든 좋았다.
어떤, 어느 나라 음식을 경험하든 그게 그것 같다.
음식을 먹으며 음~~ 하는 탄성과 함께 맛있다고 표현하는..
어느 때는 눈을 지그시 감기도하는 그런 장면을.. 볼 때면,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
음식 맛보며 오두방정이라니..
반백 년쯤 살다 보니 음식 재료도 거기서 거기로 보인다.
콩으로 만든 고기?
40년 전에도 그딴 거 있었다.
나는 콩을 먹든 고기를 먹든, 둘 중 하나를 하고 싶을 뿐이다.
음식을 먹는 행위는 에너지 충전의 이유 말고는 없다.
내가 아내에게 칭찬받는 것 중 하나가 맛없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 거다.
20여 년의 결혼 생활을 하며 반찬투정을 할 이유가 없었다.
이런 내게도 최애 음식은 있다.
나의 소울푸드 (영어로 보통 Comfort Food) 삼겹살.
간혹 대패로 할지 말지가 유일한 고민이지만,
누군가 나에게 뭘 먹으러 갈지를 물으면 삼겹살 어때?라는 대답 겸
권유가 자연스레 나온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에게 식당을 안 묻나?
삼겹살 요리?
프라이팬, 돌판, 솥뚜껑 아무려면 어떤가.
그냥 고기를 구워 소금에 후추 정도면 만족이다.
참기름 필요 없다.
상추, 깻잎, 고추, 마늘이 있으면 금상첨화.
하지만 싸서 먹지는 않는다.
고기 따로 야채 따로 먹는다.
배속에 들어가면 어차피 섞이는데,
나는 삼겹살을 좀 더 느끼고 싶다.
이렇게 좋아하는 삼겹살을 아내가 못 먹게 한다.
지방이 어쩌고 저쩌고..
콜레스테롤이 어쩌고 저쩌고..
온갖 성인병으로 공포를 조성한다.
아내의 질문
"도대체 삼겹살을 왜 그렇게 좋아해?"
"그러게 삼겹살이 왜 좋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고기라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종류가 있잖아.
생으로 구워 먹을 고기도 흔하기만 하고..
더구나 미국은 소고기와 돼지고기 가격 차이도 별로 없다.
근데 왜 삼겹살?
해답은 맛이 아니었다.
삼겹살을 먹어 온 그 세월..
어릴 적 혹은 젊을 적, 그리고 지금도.
나는 한 번도 기분 나쁠 때 혹은 기분 안 좋을 때 삼겹살을 먹어본 적이 없다.
삼겹살은 부모가 싸운 후, 자식들에게 미안해하며 사 준 화해의 음식이었고,
소개팅녀와 간 곳이 신촌의 어느 삼겹살 집이었고.
소주의 맛을 알게 해 준 것도 삼겹살이었다.
방바닥에 신문지를 잔뜩 깔아 놓고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고 먹던 그 삼겹살.
상추에서 모래가 씹힐지언정
희망을 얘기하던 시절의 음식이었다.
삼겹살은 추억 그 자체다.
삼겹살에는 태생적 매력이 있는 거다.
그러니 맛이 있을 수밖에..
그렇다면 소고기는?
나쁜 기억 많다.
한우라고 그러더니 바가지만 쓰고 나왔던 경험
그 비싼 고기를 태우기까지 했네.
없는 돈에 갈빗살을 사준 친구 때문에 목이 메었던 어느 낮 술자리.
일본에 갔더니 고기를 한두 점씩 파네.. 배는 계속 고픈데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근데 비싸기까지..
소고기는 고기의 질에 따라 맛의 차가 확연히 다르기도 하다.
맛을 모르는 나도 구별을 한다. 질긴 소고기 잡숴봤나?
양고기는 맛이 문제가 아니다. 잘 못 요리하면 고약한 냄새마저 난다.
그에 비해 삼겹살은 실패가 거의 없다.
어느 나라 돼지 건 평균 이상이다.
실망을 안 시키는 삼겹살.
아내 때문인가.
요즘 삼겹살을 먹는데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추억 더 쌓으려면 삼겹살 맛 그만 쫓아라!!"
"아이 참.. 삼겹살은 맛으로 먹는 음식이 아니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