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이 가장 피하고 싶은 학년은? 6학년? 감정이 널을 뛰는 사춘기에 막 진입한 아이들을 다루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열세 살이라는 나이는 대화도 통하고 눈치도 빨라 수업할 맛이 난다. 그럼 내가 꼽는 가장 어려운 학년은? 1학년 아이들과 지내는 게 가장 최고난도의 문제처럼 느껴진다.
혹자는 그런다. 귀여운 병아리들 보기만 해도 귀엽고 예쁘지 않냐고? 수업 부담 없고 하교 시간도 빠르니 얼마나 좋냐고. 하지만 그건 모르는 말씀이다.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이 여기저기서 내 말 좀 들어보라 소리치고 천사 같은 얼굴로 교실을 뒤집어놓는다. 이제 막 유치원을 졸업한 여덟 살에게 호통을 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받아줄 수도 없다. 행여 고학년처럼 대했다가는 아이들이 손에 잡히지 않고 모래알처럼 빠져나간다. 속된 말로 멘붕 오고 멘탈 탈탈 털리는 악몽의 1년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1학년 교실엔 베테랑 교사가 필요하다.
장소영 선생님의 ‘1학년 선생님을 위한 모든 것’을 읽으며 ‘대박!’을 여러 번 외쳤다. 아니,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지금까지 읽은 학급경영책 중에 단연 최고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을 조금만 더 일찍 만났더라면….
1학년과 나의 특별한 인연은 2019년이었다. 매년 “1학년만 아니면 어떤 학년도 좋아요!”라며 요리조리 피해 다니던 내게 불행인지 다행인지 코로나는 반쪽짜리 교사를 선물했다. 수시로 학교가 폐쇄됐고 학습꾸러미를 만들어 집으로 보내는 게 교사의 주된 업무였다. 입학식도 못한 채 아이들은 가정학습을 했고 이후에도 얼굴보다 큰 마스크를 쓴 채 드문드문 등교했다. “친구들과 교실에서 매일 공부하고 싶어요.” 삐뚤삐뚤 쓴 글씨의 편지를 받던 그해가 아이러니하게도 내겐 교사로서 전환점이 됐다. 애틋한 마음으로 교단일기를 써서 학부모님께 배달했고 온라인수업의 허전함을 수많은 연수와 독서로 달랬다. 무감각하게 다가왔던 가르친다는 일이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해 그 안타까운 기억 때문에 내리 3년을 1학년만 가르쳤다.
누군가의 첫 선생님이 된다는 것은 교사에게 엄청난 부담이자 영광이다. 하얀 도화지 같은 아이들은 교사의 말투, 작은 행동거지 하나도 허투루 보지 않는다. 그래서 제대로 해내고 싶었다. 나름대로 고민도 많았고 노력도 했지만, 그 결과는? 글쎄다. 어느 학년인들 안 그렇겠냐마는 특히나 1학년을 가르친다는 것은 전문성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1학년...' 저자 장소영 선생님과 옆 반이었다면? 아마 선생님을 보고 흉내 내면서 좀 더 나은 담임이 됐을 거라는 확신은 100%다.
‘친절한 1학년 교사 설명서’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얼마나 감탄했는지 모른다. 허겁지겁, 대충, 즉흥적으로 내가 1학년을 만났다면 장소영 선생님은 철저하게 공부하고 계획하고 체계적으로 가르쳤다. 3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이 책에는 제목처럼 ‘1학년 선생님을 위한 모든 것’이 담겨있었다. 입학 전 준비사항부터 적응 기간에 챙겨야 할 것들, 1학년 교사로서 가져야 할 교육철학 등 모든 것을 단계별로 알차게 안내했다. 그 유명하다는 신입생 학부모님들의 민원 대응은 어떻게 할지, 그리고 마음을 얻는 방법까지 조목조목 알려준다. 왜 놀잇감을 2학기에 단계적으로 풀어야 하는지, 순회지도의 비결, 고자질하는 아이들 지도법까지 알토란 같은 선생님의 노하우가 종합선물세트처럼 펼쳐져 있다. 이걸 고대로 따라만 해도 1학년 담임은 거의 성공에 이를 것 같다는 자신감이 자꾸만 생긴다. 선생님의 학급경영과 수업에 대한 비법은 현장 경험의 산물일뿐 아니라 폭넓은 독서의 결과임도 알겠다. 책 속에서 언급한 수많은 책과 저자 목록을 빼곡히 정리해 보며 챙겨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고집부리는 아이, 불평하는 아이, 돌아다니는 아이, 뛰는 아이, 폭발하는 아이 등 난감한 교실을 상황별로 제시하며 선생님의 자세한 처방을 알려줄 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아이 특성에 맞는 방어선 구축을 해두고 매뉴얼대로 지도하는 선생님을 보면서 과거 섣부른 감정이 개입해 관계를 망쳤던 기억을 되돌아봤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비단 1학년에만 국한하고 싶지는 않다. 조금만 패턴을 바꿔 모든 학년에 적용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선생님의 교육철학도 참 인상적이다. 개별보상보다는 전체보상을 즐겨하며, 경쟁보다는 협력을 강조하며 사소한 심부름 하나도 모든 아동에게 공평하게 시키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교사의 세심함이 결국 명품 학급을 만든다는 것에 동의한다. 특히 마음을 사로잡은 문구 하나 소개한다.
‘당연한 일에는 설명이나 설득하지 않는다.’
친절한 선생님과 단호한 선생님 사이에서 늘 갈팡질팡하는 허술한 교사의 머리를 쿵 하고 때리는 순간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설명과 설득보다는 그저 해야 하니까 하는 일의 생활의 리듬도 만들어주는 것이 세상에 적응하는 첫걸음을 도와주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로 해석했다. 수준에 맞게 설명하되 고집부리며 규칙을 따르지 않는 아이에게는 단호함의 지도가 필요함을 늘 느낀다. 선생님께서는 이 과정에서 아이의 내면도 단단해진다고 하셨다. 백번 공감하게 되는 말이다.
책의 전반부가 1학년의 학급경영에 대한 안내였다면 후반부는 한글 지도, 수와 연산, 신체활동 등 수업에 대한 자세한 안내, 그리고 재밌는 게임 활동을 담았다. 100일 잔치, 현장체험학습, 공개수업, 학예회, 스포츠리그 등 크고 작은 이벤트까지 어쩜 이렇게 자세하고 꼼꼼하게 풀어놓았는지. ‘아이들 외투가 자꾸 의자에서 흘러내려요’ ‘수업시간 연필 깎게 해 주나요?’ 등 너무 사소하지만, 옆 반 선생님께도 민망해서 묻기 어려운 걸 Q&A 부록으로 실었다. 교사의 가려운 데를 콕콕 짚어 긁어주시니 이 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3년간 쓴 1학년 교단 일기가 서랍 속에 수북이 쌓여있다. 어쩌다 꺼내 읽어볼 때면 여덟 살의 순수함이 아직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 구석 언저리쯤엔 의욕과 열정만 가득한 부족한 교사의 감동도 보인다. 하지만 장소영 선생님의 ‘1학년 선생님을 위한 모든 것’을 읽고 난 후엔 부끄러움 몇 숟가락도 보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