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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롱쌤 Oct 13. 2024

치유 글쓰기 낭독회

송정희 성우님과 함께하는 심화반 낭독 마무리   

선생님들과 동아리를 하며 낭독을 더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8월부터 송정희 성우님이 진행하는 낭독 심화반에 합류했다. 그런데 기초반부터 차근차근 올라온 예비 낭독가 틈에서 기가 많이 죽었다.


주 1회 수업은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라는 책을 읽으며 개별 코치 받는 식이었다. 낭독을 잘한다는 건 좋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읽으면 되는 거 아니겠냐는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갈수록 어려운 일임을 실감했다. 호흡, 발성, 텍스트 이해, 자신만의 캐릭터 구축,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전달 등 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사는 곳도 나이대도 각양각색인 열두 명의 수강생들은 낭독에 입문한 이유도 다양해 보였다. ‘낭독’이라는 것이 책과 만남이지만 결국엔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임을 이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죽음을 코앞에 둔 요양원의 할아버지와 이제 막 인생의 첫발을 내디딘 그레구아르와의 우정과 사랑을 다룬 이 교재가 특히 좋았던 건 책, 낭독, 친구 이 세 단어가 요즘 나의 생활과 일치하기 때문이었다. 출근길, 내가 연습한 낭독 파일을 들으며 걸었다. 읽을 때 너무 경직되어 있는 나, 발음에 너무 신경 쓰다 보면 의미 전달이 잘 안되기도 했다(성우님을 이걸 뚜걱거린다고 표현하신다). 발음 자체가 알쏭달쏭해 찾아보니 틀렸다는 걸 뒤늦게 발견하기도 했다. 혼자 듣고 중얼중얼 따라 하다 보면 어느새 학교에 도착했다.

퇴근길에는 다른 수강생들의 낭독을 들으며 집으로 왔다. 신기하게 읽는 사람에 따라 그의 색깔과 개성이 전달됐다. 군더더기 없이 말한다는 것을 저런 것을 말하겠지? 감정을 묻혔는데도 과하지 않네! 절제된 채 전달하는 데 왜 내가 울컥하지? 자연스럽고 편안한 음성이란 이런 걸 말하는구나! 매력적인 개성 만점의 낭독가가 옆에서 소곤소곤 얘기를 하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그들이 다른 목소리와 다른 톤으로 읽자 수많은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가 눈앞에 움직이는 것 같았다.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심화반 3개월 대장정의 마무리는 ‘또 다른 그레구아르를 찾아서’라는 치유 글쓰기 온라인 낭독회이다.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을 읽으며 들려주고 싶은 책의 단락을 찾고 왜 그 부분이 내게 의미 있게 다가왔는지 청자들과 나눠야 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책속의 이야기가 나의 삶과 연결되고 이어져 나의 과거, 현재, 미래까지 살아내야 한다고 믿기에 이 낭독회는 특별하게 다가왔다.  

워낙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도 알아야 한다고 설파하고 다니는 나는 지인들에게 소문을 파다하게 냈다. 그래봤자 정작 들어오는 사람은 몇 안 되지만 그래도 그중 한 명이라도 책과 낭독의 세계에 관심 가져준다면 그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겠나.     


낭독회 당일, 12명의 낭독가가 책의 스토리를 따라가며 삶의 한 자락을 풀어냈다. 학교 교육에서 소외된 그레구아르가 바칼로레아에 떨어지고 진로를 두고 고민하는 장면에서 자신의 모습을 봤다는 20대 대학생 낭독가의 떨리는 목소리가 시작을 알렸다. 그레구아르가 자석 끌리듯 피키에씨 방을 드나들며 그의 삶과 책에 스며들며 ‘나는 피키에 덕분에 낭독가가 되었다’는 부분을 발췌 낭독할 땐 수강생 모두도 같은 마음이었다. 송정희 성우님 덕분에 우린 낭독가가 되어가고 있다!  저마다의 목소리가 책을 읽고 삶을 전했다. 수레국화 요양원에 들어가는 노인들이 자신의 물품을 선별하는 장면에서 친정어머니의 물건을 정리하던 일을 떠올렸고, 그레구아르가 엄마에게 ‘사랑해요 엄마’라고 말하는 대목을 읽으며 쑥스러워 전하지 못한 친정엄마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속삭였다. 피키에씨와 그레구아르의 크리스마스 낭독쇼를 보며 영국에서 보낸 크리스마스 파티의 추억도 소환됐고 그레구아르의 도보여행에서 만난 친절한 친구와 만남을 통해 예전 배낭여행에서 만난 수많은 인연으로 지금 내가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울림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나는 피키에가 그레구아르에게 바깥세상을 나 대신 걸어달라는 마지막 유언 부분을 발췌했다. 그리고 수년째 누워계신 요양원의 시어머니를 떠올렸다. 평생 까막눈이셨던 어머니께서 글자를 막 깨치자마자 쓰러져버린 이 아이러니한 삶은 평생 책과 함께 살아온 피키에씨의 인생과 대비됐다. 삶과 이별중이신 당신의 마지막이 애처롭고 슬프다는 말로는 그 감정을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그레구아르가 피키에씨를 위해 걸었듯 평생을 자식을 위해 사셨던 어머니의 후손들도 당신의 발걸음을 대신하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을 전했다. 자꾸만 울컥해져 떨리는 음성을 감추느라 힘들었는데 아마도 낭독가로서의 담대함을 기르려면 아직 멀었다.  


생각보다 많은 분이 온라인으로 낭독쇼를 들어주셨다. 함께 책 읽고 글 쓰는 모임 소속 선생님들도 여럿 보였고 나의 멘토 스승 송쌤도 계셨다. 진짜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송쌤의 긴 DM을 받고 눈물이 쏟아졌다. ‘선생님의 멘트 하나하나가 저를 울렸어요. 따뜻한 진심과 진실 덩어리 그 잡채’라며 사심 가득히 최고의 낭독가라고 치켜세워 주셨다. 그 칭찬 하나만으로 가슴이 벅찼다.      

온라인 낭독회 장면
‘낭독할 때 책은 마치 악보와 같다. 낭독가는 마치 곡을 연주하듯 포즈와 변주를 담아 자신의 악보를 채워간다. 칸타빌레(노래하듯) 논 탄토(지나치지 않게), 아피아체레(자유롭게), 안단테(느리게), 피아니시모(매우 느리게) 데클라만도(낭독하듯이), 다카포(처음으로 되돌아가라)….’


낭독이 주는 울림이 음악과 닮았다는 한 선생님의 마지막 멘트가 우리를 뭉클하게 만들었다. 서로의 울림통이 되어주고 그 울림통을 확장 시켜주는 우리의 피키에 송정희 성우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낭독회가 마무리되었다.      


낭독이라는 세계에 입문한 지 8개월이 지났다. 막연히 밖에서 구경만 하던 경기장 안은 실체도 없고 의미도 없고 심지어 두렵기까지 하다. 하지만 용기 내 링 안으로 한 걸음 딛자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객관적으로 들리는 나의 음성은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을 정도로 마주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제법 당당하게 소리를 내고 있다. 텍스트를 읽어나가기만도 버거웠는데 내 목소리 색깔도 찾고 싶고 어떤 책이 나와 어울릴까 고민도 해본다. 곧 전문가 과정이 이어진다. 전문가라는 수식어가 과연 가당키나 한 말인가 싶다가도 일단 어설퍼도 완주해보자는 마음으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올가을은 ‘낭독’과 함께 더 깊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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