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 지도자 과정을 마치며>
사람들이 요즘 내게 자주 묻는 질문이 있어.
“어쩌다 낭독을 배우게 됐어?”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문득 멈춰 생각하곤 해.
책을 소리 내어 읽는 것,
어쩌다 나는 이런 ‘특별한 독서’를 하게 된 걸까?
음~
그 표현도 좀 별로네.
차라리 이렇게 말하고 싶어.
소리 내어 명상하는 법.
(오호, 그건 좀 마음에 든다.)
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시작은,
2년 전 어느 가을날이었네.
30여 년 만에 초등학교 동창회를 했고
추억여행에 한창이던 때,
아무와도 연락하지 않던 너를
세상밖으로 끌어내라는 친구들의 특명을 받았지.
어렵게 널 찾았는데
전화기 너머로 네가 대뜸 그랬잖아.
“너에겐 따뜻한 동화 같은 그곳과 그 시절이
내겐 생각하기도 싫은 만큼 아픈 상처야.
추억할 것도 없고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아.”
그래도 나는 보고 싶다는 말도 슬펐다.
그리고 얼마 후
뽀얀 피부에 까만 눈, 그리고 여전히 어른스러운 소꿉친구가
옛날 모습 그대로 내 앞에 나타났어.
“결혼은 했어?”
“애는 있냐?”
“부모님은 언제 돌아가셨어?”
수십 년 치 세월이 궁금해 폭풍질문을 쏟아내던 그때,
네가 그랬잖아.
“현미야, 나… 시각장애인이랑 결혼했어.”
순간, 너무 놀라고 당황했어.
똑똑하고 예쁜 내 친구, 유난히 속 깊었던 아이.
사회복지를 전공하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봉사를 하다
특수학교 교사 시험을 준비하던 한 남자와 인연이 닿았다고 했지.
“사랑에 빠졌구나?”
내가 묻자, 네가 담담히 그랬어.
“글쎄. 사랑이라기보다는… 그 사람에게 내가 필요하다고 느꼈어.
누군가를 도와주며 사는 게 내 운명인가 봐.”
친구야, 그 말에 눈물 쏟았던 거 기억나니?
잊고 있던 네 어린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을 거야.
지금은 그 병이 그리 특별한 것도 아닌데
그때는 왜 그렇게 수군거렸나 몰라.
그 시절 우리가 무지해서, 무식해서, 그랬을 거야.
'뇌전증' 엄마를 간병하며 밥하고 빨래하고 밭일까지 하던
어린 네 모습이 또렷한데
결혼도 그런 마음으로 했다는 게 참 잔인하게 느껴졌어.
자식을 낳기만 하면 부모님이 되는 거냐며
너에겐 엄마 아빠가 원망과 고통, 상처의 기억이라고 했어.
“하나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여기 없었을지도 몰라.”
네가 얼마나 아픈 성장기를 보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더라.
남편의 손발이 되느라, 두 아들을 정성으로 키워내느라
20여 년을 숨 가쁘게 살아낸 내 친구,
이젠 좀 살만하다며 우리 자주 보자고 했잖아.
대견한 내 친구를 보며 내가 물었지.
“언제가 제일 행복해?”
“...... 남편이랑 차 안에서 좋은 책을 오디오북으로 들을 때!”
그 순간, 무언가가 나에게 ‘뚜벅’ 하고 들어왔어.
오디오북. 낭독. 목소리...
네가 좋아하는 북내레이터를 신이 나서 소개해줄 때
문득 그런 생각을 했어.
언젠가 나도 친구 부부에게 책을 읽어주고 싶다,
뭐 그런 상상.
친구야.
관심이 생기니, 기회도 따라오더라.
교사 낭독 동아리에 가입하게 됐고 더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어
성우님이 개설한 수업까지 듣게 됐어.
그런데 말이야, 뭐든 멀리서 볼 때가 잘 모를 때가 쉬워.
청자에게 책을 소리 내어 읽어준다는 거, 만만치 않더라.
처음엔 그냥 예쁘게 읽으면 되는 줄 알았지.
그런데 배울수록 잘 읽는다는 건 ‘읽기’가 아니라 ‘살아내기’더라.
살아내기가 뭐냐고?
그건 장면을 상상하고, 감정을 담아 호흡하고,
텍스트에 깃든 마음을 내가 살아내는 거지.
작가처럼 흉내 내는 것도 어려운데 그걸 내 것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낭독가가 누군가에 따라 텍스트를 해석하는 색깔도 달라지는 마법,
그게 쉬울 리가 없잖아.
그 모호함이 손에 안 잡혀 자연스럽게 중급과정, 전문가과정까지 밟았지.
올 들어서는 지도자 과정까지 배우다 겨우 8월에 마쳤어.
맞아, 결국 네 덕분에 낭독 공부가 여기까지 온 거야.
친구의 행복한 순간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말이야.
그 배움의 여정 동안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어.
낭독의 전파자 송정희 성우님, 그리고 5명의 낭독 친구들.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니 그 시간들이 힘들었지만 즐거웠단다.
친구야,
낭독을 배우며 달라진 것 몇 가지 알려줄까?
먼저, 나 말이 줄었어.
좋은 글을 읽다 보니 더 정제된 말, 더 예쁜 말을 고르게 되더라.
(물론 아직도 막 쏟아내고 후회할 때도 있지만 아주 가끔 있지만...)
며칠 전에 그런 일이 있었어.
아픈 무릎을 주물러 주는 남편을 그윽이 쳐다보며 말했지.
“여보, 당신 온기가 위로가 되네.”
두 딸이 헉~! 하며 아주 기겁하더라.
여하튼 화법이 다듬어진 건 전적으로 낭독 덕분이야.
낭독이 가져다준 변화 두 번째는 나만의 공간과 시간이 생긴 거야.
오랜 시간, 나도 너처럼 아내와 엄마로만 살았어.
물론 직장을 다녔으니 너랑은 좀 다르구나.
퇴근 후엔 밥 짓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애들 챙기고...
책 한 장 제대로 넘기지 못한 채 곯아떨어지던 날들.
하지만 이제는,
“엄마 낭독하러 들어간다!” 하면
아무도 날 방해하지 않아.
비로소 나로 존재하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요즘 내 삶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지? 어떤 삶을 살고 싶었지? 지금 난 뭘 하고 싶지?
이런 변화가 참 좋다, 친구야.
마지막으로 교사로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깊어졌어.
낭독 강사 과정을 받으면서
많은 아이들을 동시에 상대하는 어른의 한계라고
어쩔 수 없다고 치부하던 못난 모습이 보이더라.
한 사람을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는 거
아이의 숨소리까지도 귀 기울이는 거
힘들지만 해보고 싶어.
얼마 전 보내준 내 목소리 잘 들었지?
낭독을 배울 때부터
'긴긴밤'이라는 책을 너희 부부에게 꼭 읽어주고 싶었거든.
어린 펭귄을 키워낸 코뿔소 노든처럼
우리 그렇게 살자.
그럼 우리 아이들도 어린 펭귄처럼
두렵지만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걸어가겠지?
내 친구가 지금껏 그리고 있는 인생 빛깔이 너무 예뻐
상 주고 싶었어.
네가 남편의 손을 꼭 잡고
듣는 세상에
내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온기를 줬다면
나에게 그보다 더 큰 상장은 없을 것 같다.
저녁 산책길
문득 네 목소리도 듣고 싶다.
나의 낭독인생을 열어준 친구야.
고마워.
만나는 날까지
건강해.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