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낭독 동아리 운영 시작
11월 첫 주부터 일요일 새벽에 슬그머니 일어난다.
해가 아직 창문을 두드리지도 않은 시간,
나는 노트북을 켜고 숨을 고른다.
낭독 교사 동아리를 시작한 뒤로, 주말이 달라졌다.
두려움과 설렘이 금요일 밤부터 내 주위를 얇게 둘러싼다.
‘내가 누구를 가르친단 말인가’
의심이 마음속에 오래 있었다.
그때 낭독 스승님은 그랬다.
“첫걸음은 낭독을 좋아하게 도와주면 돼요.”
한 마디가 용기를 내게 만들었다.
수업을 진행할수록
마치 새벽의 안개가 걷히는 순간처럼,
두려움도 사라지고 있다.
낭독하는 선생님의 소리에 이끌려 시작한 ‘자경노’의 낭독 동아리.
다른 사람의 호의와 봉사가
마음속 울타리를 조용히 허물었다.
‘언젠가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때의 마음이, 여기까지 이끌었다.
내년 1월까지 12차시.
야심 차게 수업 계획을 세워 회원 모집 포스터를 올렸던 날.
‘아무도 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에라 모르겠다. 그럼 안 하면 돼.’
다음날, 그다음 날—
이름들이 하나둘 채워지기 시작했다.
정원을 넘긴 신청자들을 보며
내가 열어둔 문으로 누군가 걸어 들어오고 있다.
토요일 오후를 통째로 수업 준비에 쓴다.
가을이면 늘 떠나던 산행도,
단풍 따라가던 1박 2일 여행도 모두 미뤘다.
책상 앞에 앉은 내 뒤로
단풍잎들이 떨어지고 있다.
‘무언가를 책임진다는 것,
이렇게 무겁구나.’
안방도, 거실도 수업 공간이 되기 어렵다.
목청 좋은 나는 분명 일요일 새벽을 뒤흔들 것이다.
코로나 시절, 쩌렁쩌렁 온라인 수업에
딸들이 질겁하며 웃던 장면이 떠오른다.
결국 작은딸을 큰딸 방으로 보내기로 했다.
‘언니 바라기’ 작은딸은 신났다.
자매의 수다는 토요일 밤늦도록 이어지고 있다.
수강하러 온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정말 감사해요.”
“이 동아리만 손꼽아 기다렸어요.”
그들의 적극적인 반응은
무심하고 머뭇거렸던 마음을
다정하게 건드렸다.
교사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금세 편안해지는 공기.
오늘은 복식호흡으로 시작했다.
숨을 데리고 오는 법,
목소리를 바닥에서 올리는 법.
그리고 『나에게 낭독』을 함께 소리 내어 읽었다.
선생님들의 말소리는 안정적이고 반듯하다.
말 습관을 살짝 바로 잡으면
금세 ‘낭독’이라는 옷을 잘 입을 사람들이다.
오늘은 변주의 낭독을 목표로 했다.
포즈, 톤, 정서감, 템포…
끊어 읽기와 이어 읽기.
기술이 넘치면 텍스트가 멀어진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 자꾸 기술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하지 말라던 것을 내가 하고 있구나.’
수업 끝에 후회가 밀려온다.
그러나 수업이 끝나자
카톡방에 많은 수다가 이어진다.
“즐거웠어요.”
“정말 유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 짧은 문장들이
걱정과 피로를 순식간에 녹여버렸다.
사람이 움직이는 건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런 한마디라는 걸 또 깨닫는다.
일요일 달콤한 늦잠을 포기한 지
이제 세 번째.
어둠이 남아 있는 창가에서
나는 또다시 노트북을 켠다.
‘이게 뭐라고…’
그러면서도 다시 잘하고 싶어 지니
참 사람 마음이란 묘하다.
그 욕심을 내려놓고
처음 다짐을 다시 펼쳐본다.
그저, 낭독을 좋아하게 만들기.
그 마음이면 충분하다.
새벽 스산한 공기를 가르고
낭랑한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