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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공부

by 포롱

잘 사는 것만큼이나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는 늘 인생의 숙제다. 가끔 ‘죽음’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레 꺼내 펼쳐보곤 한다. 조금 ‘유별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그 습관은 아주 오래됐다.

나는 ‘죽음’을 비교적 이른 나이에 마주했다. 전날까지 아무렇지도 않던 아빠가 다음날 아침 눈을 뜨지 못했다. 한마디로 ‘돌연사’였다. 쉰여덟의 아빠는 가족에게 한마디 작별 인사도 남기지 못한 채 떠났다. 그때 내 나이 열여덟이었다.


최근 지인의 추천으로 각 당(覺堂) 복지재단 주관 ‘죽음’ 강의를 들었다. 경희궁 근처에 자리 잡은 각당재단은 39년간 죽음 준비 교육을 이어온 국내 최초의 민간 자원봉사 단체다. 사전 연명의료의향서 캠페인부터 애도 상담까지 ‘웰다잉’이라는 화두를 우리 사회에 끊임없이 던져온 곳이다. 올해 11월 매주 수요일 밤 ‘삶과 죽음, 네 개의 창’이라는 프로그램이 열렸고, 나는 두 번째 강의부터 참석했다. 기대 이상으로 알찼다. 흥미로워서 3주간 지인들을 꼬드겨 함께 들었다.

강의를 들으며 가장의 죽음 후 남겨진 우리 가족의 모습도 떠올렸다. 우리는 매주 토요일 산사에 올라 불공을 드렸다. 고요한 산속에서 퍼지던 목탁 소리와 스님의 염불, 내세가 있다면 부디 아버지가 극락왕생하기를 눈물로 기도했다. 일곱 번째 토요일, 스님은 우리 집으로 내려오셨고 아빠의 옷가지와 소지품을 태우셨다. 시커먼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 사방으로 퍼졌다. 유형의 무언가가 허공으로 흩어져 한 줌의 재로 사라져는 걸 보며 '어쩌면 인생이 별 거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린 소녀는 아버지 등에 업혔을 때 당신의 딱딱한 날갯죽지의 감촉을 좋아했다. 그에게서 나던 담배냄새와 바람냄새도 사랑했다. 막내딸의 성적표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그 눈길을 더 이상은 못 받겠구나 생각하니 서럽기 그지없었다. 스님께서는 아버지를 더 이상 붙잡지 말고 편히 보내드리라고 담담한 위로를 건넸다. ‘남은 식구 걱정 말고 편히 가시라’ 마지막 인사를 했다. 그날 집 앞마당 빨랫줄 위로 나비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지나고 보니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불교식 애도 과정이었다.


두 번째 강의 주제는 연세대 박지용 교수의 ‘존엄사와 자기 결정권’이었다. 현장에선 70–80대 어르신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병원 말고 집에서 죽고 싶습니다. 만약 제가 병원 가기를 거부하고 식음을 전폐하면 자식이 자살방조죄로 조사를 받습니까?”라는 물음에, 교수님은 “현행법상은 그렇습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졌다. 죽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현실, 우리 사회에서 ‘존엄한 죽음’은 아직 먼 이야기다.

나의 인생을 뒤흔든 또 한 번의 죽음은 엄마였다. 자식에게 모든 것을 쏟으며 살아온 엄마는 환갑을 맞기도 전에 말기암 진단을 받았고, 남겨진 시간은 고작 넉 달이었다. 삶을 정리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 병마는 가혹하리만큼 엄마를 힘들게 했다. 진통제 없이는 견딜 수 없었고, 생의 마지막을 엄마는 분노했다가 좌절하고, 우울해하다가 결국 운명 앞에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죽음은 이렇게 올 수도 있구나.’


나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존엄한 마무리는 어떤 것일까. 책을 뒤적이고 강의에 귀를 쫑긋 세워도 해답은 선명하지 않다.


세 번째 심리학 강의 ‘죽음 불안에서 수용으로’는 이런 내 마음을 달래주었다. 누구나 맞이하는 죽음, 살아있는 동안 충만하게 살되 떠날 때는 가볍고 홀연히. 교수님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왔듯, 떠날 때도 결국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돌아간다”며 그것을 ‘귀향’이라고 표현했는데, 그 말이 깊이 위로가 됐다. 부모님도 그렇게 귀향하셨고, 나도 언젠가 그렇게 돌아가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묘하게 편안해졌다.

요즘 죽음을 자주 접한다. TV에서 늘 보이던 친근한 배우들의 부고 소식, 오래 일했던 선배들, 심지어 친구들의 소식까지. 그럴 때마다 지금 이 순간이 참 귀하다는 생각을 한다. 가까운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오늘을 내일처럼 미루지 말자고 다짐한다.

죽음을 공부하는 일은 결국 잘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죽음 수업의 마지막 ‘창’은 예술이었다. 음악치료사 문소영 교수는 구노의 ‘아베 마리아’, 에릭 클랩튼의 ‘Tears in Heaven’, 헨델의 ‘메시아–할렐루야’를 들려주며 죽음을 애도하고 위로했다. 이어서 비발디의 ‘사계’, 쇼팽의 ‘스케르초 2번’,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통해 삶을 응원했다. 마지막 곡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울려 퍼질 때, 나는 죽음으로 시작된 이 수업이 결국 ‘삶의 찬미’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생 그래프 그리기’ 활동이라는 것이 있다. 기껏해야 열 살 남짓의 아이들이지만, 그들의 삶에도 오르막과 내리막은 뚜렷하다. 휴대폰을 선물 받은 날은 정점을 찍고, 엄마에게 크게 혼난 날은 그래프가 바닥까지 떨어진다. 말간 눈망울로 지난 시간을 되짚으며 그래프를 그리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문득 생각한다. 어른이든 아이든, 우리는 모두 각자의 그래프를 그리며 산다는 것을. 탄생과 죽음도 우리네 인생 그래프에 있는 하나의 시작과 마침표라는 것을 문득 깨닫는다.


죽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결국 삶을 어떻게 사랑할지 배워가는 과정이었다.

언젠가 우리도 예고 없이, 어느 날 문득 삶의 종착역에 이를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더 또렷해지고,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은 한층 더 소중해진다.

사랑한다, 고맙다, 그 말을 머뭇거리지 말자.

마음속 따뜻한 빛을 미루지 말고 꺼내자.

오늘 하루를 마지막 날처럼 살아보자.

죽음을 공부하며 내가 얻은 건 결국 삶에 대한 감사와 애정,

그리고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용기, 그런 것들이었다.

그 용기가, 오늘의 나와 남은 날들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리라는 믿음 또한 한층 단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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