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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림 May 06. 2022

작은 골목

골목골목 누비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쭉 아파트에서만 살았다.

어린 기억에 주택에서 산 기억도 나기도 하지만 어렴풋하다.

더구나 결혼하고 나서 지금 이 집에 근 10년째 사는데 지상엔 주차창이 없고,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 호출이 가능하며, 앱으로 불도 켜고 끌 수 있다.

이런 아파트에서 살아온 내게 이런 작은 골목은 너무나 낯설다.

막연하게 이런 골목에 대한 안 좋은(?) 편견도 좀 있다.



오늘 아이들을 놀이공원에 넣어놓고 나만의 시간을 누리기 위해 튀어나왔다.

여유롭게 커피 한 잔 하고, 책도 읽으려 스타벅스를 찾았다.

그런데 낯선 동네다 보니 찾기가 힘들었다.

내 맘대로 가다 보니 길의 끝이 나왔다.

차 앞이 낭떠러지인 골목의 끝.


태어나서 산 위에서 길이 끊어지고 낭떠러지처럼 될 걸 실제로 본 건 처음이다.

물론 그 길 끝에는 길고 긴 계단이 있었지만 차는 그 길을 지나지 못한다.

어찌어찌 차를 대고 걸어서 스타벅스를 찾기로 했다.

한참을 걷는데 이 동네의 매력이 느껴진다.


그 전에는 최신식의 세련됨이 최고라 생각했다.

이런 오래된 동네의 오래된 문화는 촌스럽고 버려야 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다녀보니 알겠다.

시간이라는 건 그 겹겹이 쌓인 주름이란 건 인간의 본능에 감동을 준다는 걸.

하나하나 정겹다는 걸.

어릴 땐 빠른 걸음으로 자신에게 집중하느라 곁을 보지 않는다면 나이가 들수록 걸음이 느려지고 그 덕에 곁을 본다.

그 덕에 나이가 들어야 비로소 주변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이 동네의 차 한 대도 다니지 못할 좁은 길은 아마 차가 생기기 전부터 만들어진 걸 게다.

이 골목이 젊었을 때도 있었겠지.

그러나 오랜 시간 조금씩  골목만의 분위기가 생기고, 골목은 주름이 늘어났을 거다.


내가 20대였다면 그 주름을 보고 감탄하지 못했을 것 같다.

또 이 주름이 너무나 일상인 사람들도 자연스러워 느끼지 못할 것 같다.

나 같은 나이 든 이방인이어야 골목을 보며 낯섦과 주름을 새삼스레 보고 감탄할 수 있을 거다.


골목골목 길을 잃어가며 누볐던 그 즐거움이 커피 한 잔보다 더 값지게 느껴진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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