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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완느 Oct 02. 2024

엄마계층

햇살은 쨍하고 봄바람은 차갑다. 가방에 손이 들락날락, 핸드폰 시간을 확인해가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종종걸음에 바짝 마른 목을 초코우유로 축이며, 오후 세시 반, 늦지 않게 유치원 현관 앞에 도착한다. ‘딩동’ 하원 벨을 누르고 한숨을 돌리는데, 뒤에서 ‘언니’ 하는 소리가 귓가에 스친다. 변덕스러운 봄바람에 검은 가디건 움켜쥐며 놀이터를 가로질러 다가오는 서진엄마다. 오랜시간 거리를 두고 지내다가, 어느 순간 나의 경계선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서진엄마가 갑자기 나의 경계선을 넘어 들어온 것이라 우기고 싶다.

 경계선 밖의 사람을 경계선 안의 친구, 언니, 동생쯤으로 칭할 수 있는 관계로 들이는 데는 1년 남짓의 시간을 쓰는 나로서는 뒤늦은 당혹감이 밀려왔다. 처음엔 그저 우리가 ‘엄마계층’ 의 사람으로 대화를 나누고, 같은 계층에서 발생하는 감정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그쯤의 사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유치원 등하원 길에 마주하며 인사하는 ‘얼굴 아는 사람’ 정도의 관계로 여겼다는 말이 더 솔직하겠다.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시간이 흐르면서 서진엄마와 나와의 경계가 흐릿해져 가는 동안, 서진엄마와의 대화가 점점 힘겹게 느껴졌다. 서진엄마와 놀이터 앞 벤치에 앉아 있던 어느 날은, 서진엄마의 말이 더 이상 어떠한 의미도 없이 그저 스쳐가는 봄바람쯤으로 여겨졌다. 대화라고 치부하기에는 귀만 열어둔 상태로, 청자의 입장을 충실히 수행하는 정도였다. 어느 순간은 머릿속이 백지장 마냥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언니, 원비 또 인상된거 봤어요?  

‘언니, 외국인 담임어때요? 수하는 선생님 좋아하나요?’

‘언니, 수하 악기 시작했어요?’

‘언니, 호준엄마는 애 학원을 5개나 보낸대, 작년에도 보내면서 안 보낸척한 거 있지?’

‘언니, 지수네 형님이 서울대 나와서 애들 공부를 봐준대, 집에서 가르치는 게 더 정서에 좋지, 안 그래요?’

‘언니, 코로나 때문에 팩토수업 보내고 싶었는데 못 보냈어, 이제 잠잠해지면 보내려고, 수하는 어때요?

‘언니, 국제학교는 너무 비싸더라고, 수하는 어떻게 하시려고요?’

‘언니, 서진이가 수하 너무 좋대. 다른 애들이랑 노는 건 싫다고 하면서 수하랑 노는 건 좋대. 수하 하원하고 어디 놀이터로 갈꺼에요?’

 서진엄마가 경계선 안으로 들어오고 나서 한 달이 지날 무렵, 그 감정이 당혹감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서진엄마와 나 그리고 한 사람의 ‘엄마계층’이 더해져 세 사람이 같은 벤치에 앉게 되는 날이면, 또 다시 처음인 마냥 서진엄마와 둘이서 나누었던 이야기 구절의 2절쯤 되는 형식으로, 셋은 각자의 이야기를 나눈다. 뒤늦은 당혹감이 느껴지는 건, 비단 서진 엄마와의 관계 만은 아니었다. 이주 전 쯤, 수하가 등원을 하고 난 뒤, 집에서 책 한 권을 집어 들고 동네 카페에 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던 차였다. 낯익은 얼굴, 영재 엄마와 마주쳤다. 사적으로 처음 만나 세 시간 동안 긴 이야기를 나눴다. 수하가 원에 적응한 이야기를 궁금해 했고, 수하와 친구들의 관계, 원에 대한 만족도, 사교육 이야기, 진학시키고 싶은 사립학교와 국제 학교에 관한 이야기들을 주제로 시간을 꽉 채웠다.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자리를 정리할 무렵, 서진엄마에 이어 영재 엄마도 하원 후 수하가 영재랑도 같이 놀게 해달라는 부탁을 에둘러 말했다. 그날 저녁, 수하와 밥을 먹으며 놀이터에서 놀 때 서진이와 영재도 같이 챙겨서 놀자고 말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허탈감이 밀려왔다. 수하에게는 부탁이 아니라 아침에 양치질을 해야 하는 것과 같은, 반드시 들어야 하는 엄마의 말로 치부되는, 하기 싫지만 들어줘야 하는 엄마의 요구사항이었다. 수하에게 무슨 부탁을 한 건가 싶었다. 서진이는 오랜 기간 수하를 때리거나 밀치고 장난감을 뺏아가서, 수하의 유치원 생활을 힘들게 했던 아이였다. 3월생인 수하와 12월 생인 서진이의 발달 단계 차이를 이해하고 서진이의 발달을 인내심으로 기다려 준, 수하의 마음은 정작 헤아려 주지 못한 꼴이 돼버렸다. 허탈감에 이어 자책감이 몰려왔다. 정작 서진엄마에게 서진이로 인해 수하의 마음이 힘든 시절이 있었음을 알려주지 못했다.

 “수하엄마, 서진엄마! ”유치원 현관 앞에 지은엄마와 호준엄마가 도착한다. 연이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연령별, 과목별 사교육 플랜을 듣고 있노라면, 하루의 심력을 다 써버린 느낌이다. 애써 귀를 닫는다. 심력이 동나는 순간, 내재된 불안감이 물밀듯 밀려오면서 신체화 증상들이 발현되기 때문이다. 하원 후 본격적인 엄마 업무에 몰입해야 하는 시간들이 남았기에, 심력을 최대한 아껴야 한다. 들리는 이야기를 듣지 않으려고, 마음속으로 수하와 등원길 부르던 ‘넌 할 수 있어’동요 가사를 되뇌는 중이다. 어느 시점부터 하원 후 놀이터 행은 회피하고 싶은 일이 되고 있다. 공황장애라는 이야기를 세 명의 각기 다른 의사로부터 사 년에 걸쳐 듣고 있는 터라, 나를 보호해야 한다는 무의식의 욕구가 올라오고 있는 탓이다.

 언제쯤부터, 상대방을 첫 대화에서 나의 경계 안으로 깊이 받아들이기 시작 한걸까. 코로나 시대 3년 차, 80년대 새마을 운동 시절 연신 외쳐댔던 구호 마냥, 온갖 뉴스와 맘 카페에서 최근까지‘거리 두기’가 끊임없이 언급되고 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거리를 두고 사느라, 어른 사람과의 대화법을 잊어 가는 건 아닌가 싶었다. 덕분에 극단의 조치로 어른 사람과의 대화를 위해, 비싼 비용을 지불하며 여러 명의 선생님을 일대일로 부단히 만나고 있었다. 일주일 중 주말을 제외하고 닷세 중 나흘을 네 명의 선생님들과 각각 10분, 50분, 60분, 90분씩 대화 감각을 유지하는데 썼다. 코로나로부터 안전하면서도, 엄밀히 말하자면 코로나 전파자로 취급받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하면서, 어른 사람과 대화 감각을 유지하고 싶었다. 결혼할 때 엄마가 챙겨주었던 남은 비상금을 탈탈 털어가며 그렇게 애썼다. 육아 삼 년 차에 한숨 돌릴 법 한 시점에 마주한 코로나 시대였다. 그렇게 어른 사람과의 대화가 멀어진지 오 년쯤 되니, 어른 사람과 대화의 감각을 유지하는 건 개인적으로 절실하고도 절박한 문제였다. 말하는 연습을 돈 내고해야 하는 처지가 된 신세라, 매일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 엄마들과의 사이에서 마음이 동요되었나 보다.

 “엄마!!!!!!!”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온다. 유치원 앞에서 아이들의 하원을 기다리며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 나눌 때의 사뭇 진지했던 우리들의 표정은 한켠으로 밀어 넣고, 모두들‘엄마 계층’의 역할로 돌아가 방긋 미소를 장착한다. 각자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등을 토닥여주고 가방과 옷가지들을 챙기느라 분주하다. 아이들은 놀이터로 곧장 뛰어간다. 삼삼오오 모여있던 우리네는 이제 ‘엄마 계층’에서 지극히 개인적이고 세밀한 세계로 분화되어 ‘엄마계급’으로 나뉘어가는 길목이다. 아파트 브랜드와 평수, 집값과 동네 평판, 남편의 직책과 수입, 사교육에 지출하는 비용과 고급 교육 정보에 따라 ‘엄마계층 사회’에서 ‘엄마계급 사회’로 점점 분화되어가는 중이다. 두세달의 시간을 들여 서로를 탐색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서로만의 기준으로 계급 세계로 분화되어 가는 중이다.

 서둘러 집으로 가야겠다. 오늘 저녁은 뭘 해 먹어야 할까. 매일 같이 돌아오는 뻔한 일상인데, 그 뻔한 일상 앞에 매일 같은 고민을 하는 내 모습을 마주하면, 가끔 가슴 한 켠이 꽉 막힌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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