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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해 Apr 04. 2022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디오니소스에게 바치는



예술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감상 주체와 대상 작품 간의
심리적인 거리가 필수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이 책은 할리우드 영화감독님들이 뒷주머니에 꼭 꼽고 다닌다는 책이라 들어서, 읽어 보자, 다짐했던 책인데 마침 인문고전 차례가 되어 드디어 반강제적으로라도 읽을 때가 온 것이에요. 비극의 기원은 디오니소스입니다. 비극은 디오니소스제를 위한 장르예요. 디오니소스 극장까지 따로 있지요. 디오니소스는 그리스 신화 체계에서 이질적인 신인데, 몇 가지 봅시다. 


우선 그리스 토착신이 아니에요. 그리고 12신 중 유일하게 신과 인간이 사이에서 태어난 신이에요. 약간 희망적 존재네요. 그리스 신들은 뭔가 너무 마음대로 사는 면이 있잖아요. 아무튼 비극은 디오니소스를 위함이니 지금 우리가 보는 시학은 디오니소스를 위한 비극 책이라고 보아도 되겠지요.


와, 처음에 서점에서 아주 두터운 700페이지 정도 되는 책으로 접했어요. 200 페이지 정도 읽고, 에잇, 그만뒀다가, 조금 더 찾아보니 박정자 교수님의 번역과 해설이 그렇게 좋다고 하는 글을 어딘가 발견했죠. 실물을 보니 얇고 작은 아주 콤팩트한 귀여운 책이 저를 반기는 거예요. 바로 데려와서 석촌호수에서도 읽고, 동네 공원에서도 읽고, 지하철에서도 읽고. 정말 신나서 재밌게 읽었어요. 『시학』은 박정자 교수님 책을 읽으세요. 아래 내용은 책 일부에 대한 정리본입니다.






"나 시학 읽을 거야." 했더니 친구들이 "시 쓰는 방법론이야?"하고 물어서 "몰라."라고 답했었다. 『시학』은 시(詩) 제작 이론이 맞긴 하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시에는 서사시, 비극, 희극, 디티람보스, 음악, 춤 등이 모두 포함된다. 고대 그리스어로 시(poiein)는 단순히 '제작(making)'을 의미하기도 했다. 결국 『시학』은 시를 포함한 모든 서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강의용 버전만 남아있다는 『시학』은 비극을 중점으로 다루며 서사시에 대한 내용은 일부이다. 서사시에 대한 내용은 갑작스럽게 써놓고 빠르게 마무리하며 '이 정도면 충분하겠다.'라고 아리스토텔레스가 얘기했으니, 서사시에 대한 애정은 비극보단 덜한가 보다.


비극은 완전하고 전체적(처음, 중간, 끝)이며, 일정한 크기(한눈에 쉽게 들어오는 정도)가 있는 하나의 행동과 삶에 대한 모방이다. 사람을 모방하는 게 아니다. 행동은 성격과 생각을 가진 인적 요소들을 전제로 한다. 부분에 따라 각기 다른 형식으로 꾸민 언어로 되어 있고, 이야기가 아닌 극적 연기의 방식을 취하며 연민과 두려움을 일으켜서 그런 감정들의 카타르시스를 행하게 한다. 


희극이 사람들을 보통보다 못나게 그리는 반면, 비극은 실제보다 더 잘나게 그린다. 비극은 가능한 한 하루 동안의 일로 제한하거나 약간 초과하지만 서사시는 시간제한이 없다. 서사시의 속성은 모두 비극에 속하지만 비극의 모든 속성들이 서사시에 속하진 않는다. 비극이 성립되려면 여섯 개의 구성 요소가 필요하다. 플롯, 성격, 언어적 표현, 생각, 시각적 장치, 노래.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플롯(plot)이다. 플롯의 구성요소이면서도 비극의 가장 강력한 정서적 호소력의 수단은 '반전'과 '깨달음(무지→앎)'이다. 두려움과 연민이 가장 효과적으로 발생할 때는 뜻하지 않은 사건이 우리를 덮칠 때이기 때문이다. 정확한 원인과 결과에 의해 사건이 일어나면 그 효과는 더 커진다. 즉, 반전을 통한 깨달음은 두려움과 연민을 효과적으로 자아낸다.


비극의 종류는 다음과 같으며, 시인은 모든 요소를 조합해야 한다.

- 복합적인 비극: 반전과 깨달음에 전적으로 의존

- 파토스적 비극: 정념을 모티프 예)아이아스, 이시온

- 에토스적 비극: 성격을 모티프 예)피오티스, 펠레우스

- 단순한 비극: 시각적인 요소들은 배제 예)포르키데스, 프로메테우스, 하데스

 

비극은 프롤로그, 에피소드, 퇴장, 합창(파로도스, 스타시몬) 등으로 나뉜다.

- 프롤로그 : 합창대 입장 앞에 오는 부분

- 에피소드 : 완전한 두 곡의 합창 노래 사이에 있는 부분

- 엑소도스 : 마지막 합창 노래 뒤에 따르는 부분

- 합창 : 파로도스(처음의 합창), 스타시몬(장장단격이나 장단격이 아닌 운율로 되어 있는 합창 노래)


비극에서는 의로운 사람이 행운에서 불운으로 떨어져서는 안 된다. 성질 나쁜 사람이 불운에서 행운으로 옮겨가서도 안 된다. 극악무도한 인간의 추락을 보여주어서도 안 된다. 비극적 인물은 뛰어나게 도덕적이거나 정의로운 사람은 아니며, 자신의 나쁜 성질이나 악행 때문에 불운을 겪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판단 착오나 성격의 나약함 때문에 불운을 당하는 사람이다. 행운 가도를 달리던 오이디푸스 같은 사람들 혹은 그 비슷한 명문가 사람들이 이 원칙에 들어맞는다. 불운에서 행운으로 변해서는 안 되며, 행운에서 불운으로 변화해야만 한다. 불운의 원인도 좋은 편인 사람이 저지른 착오나 의지박약 때문이어야 한다. 


비극적 인물 성격은 네 가지를 만족해야 한다.

- 선해야 한다.

- 적합성이 있어야 한다.

- 사실적이어야 한다.

-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사항에 해당하는 시인이 있으면 우리는 비판해야 한다.

- 불가능한 것

- 불합리한 것

- 도덕적으로 해로운 것

- 모순적인 것

- 예술적 엄정성에 반하는 것



이외에도 『시학』에는 비극에 대한 다양한 이론이 담겨 있다. 모든 인기를 독차지하는 비극 작품들을 이 이론에 대입해보면 과연 정말 잘 들어맞는다. 왕좌의 게임, 펜트하우스 등등. 우리는 아직도 이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이 책에 따르면 시인은 실제 사건이 아닌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이야기해야 한다. 시인과 역사가의 차이점은 역사가는 실제 일어난 사실을 이야기하고 시인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는 역사보다 철학적이며 우수하다. 시는 보편적인 것을 표현하는데 역사는 특수한 것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역덕이 들으면 눈을 부릅뜰만한 주장이다. 실제로 역덕 김박사는 이 얘기를 나에게 전해듣고 말도 안 된다며 괴성을 질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와 같은 맥락으로 서사시보다 비극을 더 좋아한다.


art는 라틴어로 ars, 고대 그리스어로 techne다. 테크네가 테크닉의 어원, 아르스가 아트의 어원이니 예술과 기술은 같다. 고대 그리스 때 테크네는 수공예뿐만 아니라 사물을 생산 및 획득하는 모든 기술을 지칭했다. 모든 창작이 테크네였다. 플라톤은 무역, 전쟁, 사냥도 테크네(=art)라고 했다. 예술과 기술이 하나였던 고대에서 출발해 점차 예술과 기술이 분리된 수 천 년의 세월을 지나 다시 기술과 예술은 하나가 되어간다. 그러니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비단 극작가뿐만 아니라 예술과 기술에 관련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 모든 분야에서 콘텐츠(스토리텔링)가 중요한 시대니까. 『시학』에 대한 박정자 교수님의 의견으로 마무리하겠다.


예술은 시작과 끝이 없는 현실에 인위적으로 한계를 설정하는 일이다. 긴 인생에서 부분만을 떼어 묘사한 것이 소설, 자연의 일부만 그린 게 풍경화다. 그러니 예술창작은 현실에 대한 프레임 작업이다. 거대한 현실의 한 부분에 빈 액자를 대고 오린 작품은 현실 그 자체일 수 없다. 그 모방이 실제와 비슷할수록 더 기만적이다. 실재도 아닌 주제에 완벽히 실재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모든 서사, 모든 인식의 착시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 미학의 역설적 교훈 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난 예술이 좋다. 때로는 부분이 전체를 보여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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