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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해 Apr 04. 2022

영웅수집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I

리쿠르고스, 페리클레스, 알키비아데스




'카이로네아의 플루타르코스여, 그대에 대한 불후의 찬사를 위하여 용맹한 로마는 이 감사의 조상을 세우니, 이는 그리스와 로마가 그대의 명예를 공유하였음이로다. 그러나 그대는 그대의 전기를 결코 쓸 수 없었도다. 그들의 생애는 비교되어도, 그대의 생애는 그렇지 못하다네.'   




플루타르코스는 엘리트였어요. 당시 플라톤 아카데미에서 공부했었답니다. 로마 사람들 중에 플라톤 아카데미에 유학 와서 공부하는 사람은 한국으로 치면 하버드대 유학과 동일했답니다. 노년에 델포이의 신성한 제의를 시작했을 정도로 능력자였고, 아폴론의 사제를 하다가 별세했습니다. 가장 황금기에 쓰인 책이니 만큼 가장 뛰어난 그리스 로마의 도덕적 견해와 판단에 대한 그림으로서 값지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스인 플루타르코스는 로마 제국이 가장 정점에 있을 때 로마에 살았어요. 그가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을 비교하며 은근 그리스 영웅을 찬양하기 위해 쓴 교묘한 책,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전집 I권』입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원래 이름은 『대비 열전(Bioi Paralleloi)』이에요. 그리스와 로마 영웅 22쌍의 대비 열전과 4명의 단독 열전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몇몇 열전들은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플루타르코스는 엄청난 저술가이기도 한데, 무려 250종의 저술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각설하고, 그리스적인 것과 로마적인 것에 대해 정리해봅니다.


- 그리스적인 것 : 숙고하는 삶, 아름다움, 도시국가, 반원형 ↷ 비극 상영

- 로마적인 것 : 활동하는 삶, 웅대함, 제국 지향, 원형극장 ↷ 글래디에이터 상영  



플루타르코스는 로마 귀족들에게 이 책을 통해 영웅의 모습을 보여주며 난세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모델을 제안했어요. 플루타르코스는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였어요. 그는 창조된 모든 동물로부터 본받을 점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선은 정의보다 더 큰 힘을 갖는다고도 했는데요. 법률이나 공평성의 책임은 인간에만 해당되지만, 친절과 자선은 모든 종류의 창조물에게 그 범위를 확대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삶의 원천으로부터 흘러나와 선한 사람들의 가슴속에 지금도 흐르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구절을 공유해봅니다.










@테세우스 


포세이돈의 아딜은 테세우스가 숫자 8과 관계 깊다는 생각과 '영원불변하는 사람', '대지의 바탕이 되는 존재'라고 일컬어지는 바다의 신의 확고부동한 힘을 뜻하기도 한다. 


한 줄 감상 : 미노타우르스가 너무 불쌍하다.  




@로물루스




옛날 사람들은 모든 동물의 젖꼭지를 '루마'라고 했는데 지금도 어린아이들의 수호신을 루밀리아라 부른다. 전설에 의하면 아기들이 루미날리스라 불리는 한 그루의 무화과나무에 누워 있을 때 늑대가 젖을 먹여주고, 또 딱따구리가 그들을 지켜주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런 동물들을 군신 마르스의 심부름꾼이라 생각했는데, 지금도 라틴사람들은 딱따구리를 신령스러운 새로 모시고 있다 한다. 

한 줄 감상 : 늑대의 모성애   




@리쿠르고스


"부의 신 플루투스는 맹인이다"

공동 식사에 나오는 음식 중 검은 수프는 특히 유명했다. 노인들은 고깃덩이를 젊은이들에게 주고 검은 국물을 마시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폰토스의 어느 왕이 검은 수프 맛이 궁금해서 스파르타 요리사에게 만들게 했는데 맛이 없었다. 그러자 요리사는 "왕이시여, 이 수프는 먼저 에우로타스 강에 가서 목욕을 하신 다음에 잡수셔야 제 맛이 납니다."하고 왕에게 말했다.

스파르타의 허니문은 블라인드 데이트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이에 만날 때마다 항상 새로운 기분이 들어 권태나 피곤함도 줄어들며, 언제나 서로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스파르타에서는 노래와 시에 대한 공부도 무척 중요시했다. 스파르타 사람들은 노래가 용기를 자아내고 피를 끓게 하는 숭고한 일을 짧은 말로 읊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노래 내용은 보통 스파르타를 위해 용감히 싸우다 죽은 사람들의 전설, 겁이 많은 사람들을 비웃는 것들이었다. 특히 제사 때는 합창단원들이 노래를 부르는데, 노년반, 청년반, 아동반으로 나누어 다음과 같은 노래를 차례로 불렀다. 


우리들도 한 때는 용감한 청년이었다네. (노년반) 


바로 지금 우리들은 용맹스러운 청년,

어느 누가 가까이 와도 두렵지 않네. (청년반) 


우리는 누구보다

용감한 사람이 되겠어요.(아동반) 


원로원 선거는 독특한 방법으로 진행했다. 국민을 한 곳으로 모이게 한다. 선발된 사람들은 선거장 근처 한 방에 갇히는데, 그 방은 밖은 볼 수 없고 밖에서도 안을 볼 수 없으며 안에서 말하는 소리만을 들을 수 있다. 그들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그중 하나를 결정한다. 후보자는 제비를 뽑아 한 사람씩 모인 사람들 사이를 말없이 지나간다. 방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밖이 보이지 않으므로 순서대로 후보자가 지나갈 때 시민들이 지르는 환호성의 크기와 높고 낮음에 따라 점수를 기록한다. 즉 몇 번째 사람에게 얼만큼의 환호성이 올려졌는가를 판가름한다.  


한 줄 감상 : 철학을 행동으로 실천한 리쿠르고스  




@누마 폼필리우스 


누마가 만든 정책 중 가장 많은 칭송을 받은 것은 사람들을 직업에 따라 나누어 조합을 결성한 것이다. 금은공, 목수, 염색공, 구두공, 피혁공, 도공 등 여러 조합은 종족들을 모두 한데 섞어 직업으로만 사람들을 구분했다. 이 조합에는 독자적인 법정, 회의소, 제사가 따로 마련되었다. 사비니 인과 로마인, 타티우스파와 로물루스파라는 구분이 없어졌으며 사람들은 점차 융화되어 가기 시작했다.   




@솔론 


손바닥만 한 금과 은,

말과 노새 몇 마리, 약간의 밀밭,

등에 걸칠 옷들과 신발 한 켤레,

젊은 아내와 자식,

건강한 생명을 가진 사람도

모두가 다 부유한 사람이다. 


재물을 갖는 것은 좋지만

부정한 방법으로 얻기는 싫다.

왜냐하면 그렇게 쌓은 재산에는

언제건 반드시 재앙이 따르기 때문이다. 


한 줄 감상 : 행복에 대해서  




@테미스토클레스


"인간의 말이란 그림을 수놓은 융단과 같습니다. 펼치면 사람들은 아름다운 그림을 볼 수 있지만, 말아 버리면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페리클레스


드디어

지하에 있는 모든 이들 가운데

머리가 되는 자가 나타났도다. 


진정한 미덕은 가까이에서 볼수록 더욱 빛나는 것이며, 어진 사람은 일상생활을 지켜본 가까운 친구들에게서 칭찬을 받는 법이다. 그러나 페리클레스는 너무 민중들에게 가까이 가는 것을 삼가 군중 앞에 잘 나서지 않았으며 지나치게 많은 말을 늘어놓지도 않았다. 


페리클레스의 사업은 빨리 이뤄졌지만, 영원한 생명력이 있는 뛰어난 것으로서 그것들 중 하나하나가 중후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풍기며, 오늘날까지도 신선한 생기를 불러일으킨다. 시간에 도전하는 영원한 생명을 내뿜으며 시들 줄 모르는 청춘의 생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스파시아는 그 시대 최고의 정치가들을 마음대로 움직였던 여자로, 철학자들도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고 한다. 그녀는 밀레토스 사람으로 악시오코스의 딸인데 그리스에서 가장 권위 있는 사람들에게만 사랑을 베풀었다고 하는데 흔히 이오니아의 타르겔리아에 비유되고 있다. 


페리클레스의 공적 중 하나는 지금의 아름다운 아테네를 만든 성대한 건축 공사이다. 로마에 있던 모든 건물과 장식물들을 다 합쳐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페리클레스는 모양이나 아름다움에 있어서 어느 것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화려하고 웅장한 도시를 만들어낸, 아테네가 자랑할만한 인물이었다. 


페리클레스는 많은 누이와 친척들도 읽은 상태에 있었는데, 이런 불행에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고 장례식에도 나가지 않았다. 그러나 정식 결혼에서 얻은 마지막 아들 파랄로스까지 죽어 버리자, 그는 더 이상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꽃다발을 관 위에 던지면서 치밀어 오르는 설움을 터뜨리며 비통하게 울었다고 한다. 


페리클레스가 병을 앓고 있을 때 한 친구가 병문안을 갔다. 그런데 모든 자연현상을 과학적으로 해석하던 그가 목에 부적 같은 것을 걸고 있더라는 것이다.  


온갖 불행을 겪고 지도자의 말을 따르는 국민들보다 번영에 들떠 오만해진 국민들을 다스리는 것은 더욱더 어려운 일이다. 바로 이런 어려운 상황에 처했던 것이 아테네와 페리클레스였다. 


교만한 듯하면서도 그처럼 온유한 사람이 없었고, 허세가 있는 듯하지만 사실은 진실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아테네 시민들은 알게 되었다. 그가 살아 있을 동안 사람들은 그의 정치를 전제니, 독재니 하면서 비난했지만 그는 진정으로 나라를 위해 애썼던 사람이었다는 것이 그 이후의 부정과 부패로 증명되었다. 페리클레스는 이런 일을 억제하기 위해 단호한 정치를 외롭게 지켜냈던 것이다. 


미래에 대해서도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 훌륭한 장군이라면, 펠로폰네소스 전재 뒤에 아테네의 국력이 약해질 것을 예측한 페리클레스는 과연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페리클레스의 판단은 조국의 불행에 의해 옳았음을 인정받았다. 


한 줄 감상 : 예술적 안목을 가진 인간적인 올림피아  




@파비우스 막시무스


그는 조용하고 말이 적었고 늘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공부도 못해서 우둔한 아이로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사람들은 조심성은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은 침착성이고, 말과 행동이 느린 것은 신중하기 때문이며, 열성을 드러내거나 쉽게 움직이지 않는 것은 굳고 확실한 믿음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3은 완전함을 뜻하는 것으로, 배수를 포함하는 맨 처음의 홀수이며, 그 속에는 수의 모든 원리가 포함되어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사람들이 선생님을 비웃고 있습니다"라고 말한 사람에게, "그러나 나에게는 비웃음이 되지 않는걸" 하고 대답하여 비웃음이란 그것을 받고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의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한 줄 감상 : 슬리데린  




@알키비아데스


알키비아데스는 어려서부터 용모가 아주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그의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했고,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했다고 한다. "진정 아름다운 것은 늦가을에도 아름답다"는 에우리피데스의 말은 신체의 조화와 활력이 보기 드물게 뛰어났던 알키비아데스 같은 인물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알키비아데스는 말을 할 때 혀를 약간 굴리는 버릇이 있었는데, 이것까지도 그에게는 매력이 되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다고 전한다. 


알키비아데스는 그 아이의 손을 물려했다. 상대편 아이는 말했다.

"너, 계집애처럼 물려고 했어."

그러자 알키비아데스는 답했다.

"아니야. 난 사자처럼 물려고 했어." 


알키비아데스와 가까이 지내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소크라테스처럼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사람은 없었다. 알키비아데스는 다른 모든 사람을 경멸하였지만 소크라테스만은 두려워하고 존경했다. 그래서 철학자 클레안테스는 소크라테스는 알키비아데스의 귀만 잡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의 모든 것을 잡고 있다고 그를 조롱하기도 했다.  


소크라테스는 불에 달구어 연해진 쇠붙이를 찬물에 담가 단단하고 굳게 만들듯, 알키비아데스가 사치나 자만심에 빠져들 때마다 대화를 통해 그를 억제시키고, 그의 결점을 지적해 주어 겸손한 사람으로 만들려고 했다. 


하루는 페리클레스를 만나기 위해 그의 집 앞까지 찾아간 일이 있었다. 그때 페리클레스는 아테네 시민에게 보고할 정무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어 만날 시간이 없다고 했다. 그러자 알키비아데스는 돌아서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테네 시민에게 보고를 하지 않아도 될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텐데." 


알키비아데스는 70 미나의 돈을 주고 산 훌륭한 개 한  마리를 가지고 있었다. 이 개는 꼬리가 특히 보기 좋았는데 그는 이것을 잘라 버렸다. 친구들이 와서 꼬리가 잘린 개를 보고 모두 깜짝 놀라며 아테네 사람들이 이 난폭한 짓을 비난할 것이라고 하자, 그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바로 그게 내가 바라던 거야. 아테네 사람들이 이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느라고 내게 더 나쁜 비난을 하지 못할 테니까." 


알키비아데스는 사치스러운 잔치를 벌이며 방탕한 생활을 하고, 여자들처럼 빨간 망토를 끌며 공회당을 휩쓸고 다녔다. 전쟁 때 사용할 배에까지 부드러운 잠자리를 만들기 위해 갑판 앞부분을 떼내고 가죽끈으로 침대를 만들었으며, 황금으로 씌운 방패에는 휘장 대신 벼락 몽둥이를 든 에로스의 모습을 새겨 넣었다. 아테네 귀족들은 이를 보고 그를 싫어하는 한편 그의 오만한 태도를 걱정했다. 그러나 민중들의 생각은 달랐다. "좋아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지만 그는 없어서는 안 될 사람." 


화가 아리스토폰이 네메아라는 여자를 안고 있는 알키비아데스를 그렸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 그림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러나 나이 든 사람들은 이것을 불쾌하게 생각하며, 그와 같은 행동은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왕이나 하는 짓이라고 분개했다. 그래서 시인 아르케스트라토스는 그리스는 알키비아데스 같은 사람은 하나로 충분하다고 말했던 것이다. 


알키비아데스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사생활에 대한 평판도 좋았다. 그는 스파르타의 생활습관을 그대로 몸에 익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머리를 짧게 깎고, 찬물로 목욕을 하고, 보리빵과 검은 수프를 맛있게 먹었다.  


알키비아데스는 이처럼 남의 나라 풍속과 습관을 곧바로 자기 것으로 삼아, 카멜레온보다 더 빨리 변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에게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특별한 재능과 기술이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카멜레온은 모든 색으로 변하지만 흰색으로만은 변할 수 없다고 하는데, 알키비아데스는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간에 똑같이 모방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스파르타에 있는 도안에는 운동을 즐기며 검소한 생활을 했고, 이오니아에 있을 대는 호화롭고 쾌활한 사람이 되었고, 트라키아에 가서는 항상 술독에 빠져 있었으며, 테살리아에 있을 때는 항상 말타기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또 페르시아의 총독인 티사페르네스와 사귀는 동안에는 화려하고 호탕한 생활을 하여 페르시아인들까지도 놀라게 했다. 


그를 미워하고 싫어하던 사람도 알키비아데스의 얼굴을 대하면 금방 유쾌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페르시아의 잔인한 인물로 통했던 티사페르네스는 그리스를 싫어했지만 알키비아데스의 교묘한 말과 행동에 사로잡혔다. 그는 자기가 가진 정원 가운데서도 가장 맑은 물과 부드러운 풀과 아름다운 집이 있는 곳을 알키비아데스라고 이름 붙였다. 


자기의 영광 때문에 파멸한 사람이 있다면 알키비아데스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의 잇따른 성공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일부러 도시를 그냥 두었다고 생각했고, 그가 다른 일에서 어쩌다 실수해도 그의 힘이 모자라서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아테네 사람들은 과거의 잘못과 어리석은 행동을 깨닫고, 알키비아데스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을 두 번이나 저질렀음을 후회했다. 하지만 알키비아데스는 리산드로스에 의해 암살당했다. 


한 줄 감상 : 결핍 없는 엄친아. 분명 소크라테스와 MBTI 궁합이 좋으나 반대일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고발당한 이유 중 하나인 "아테네의 젊은이들에게 불건전한 사상을 퍼뜨렸다."는 주장 속 '젊은이'에 알키비아데스가 들어간다.   




@코리올라누스 


그가 칭송을 받는 것을 듣거나 영광의 관을 머리에 쓴 것을 보고 어머니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그를 맞아 안아 주는 것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명예이며 행복이었다. 


한 국민의 자유를 처음으로 파괴한 자는 처음으로 민중에게 뇌물을 준 자라는 말은 타당하다. 로마에 있어서 이러한 폐해와 악습은 처음부터 드러난 것이 아니라, 아무도 의식하지 못할 만큼 은밀하게 숨어 들어온 것이었다. 맨 처음으로 민중에게 뇌물을 주어 법정을 더럽혔던 자가 누군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아테네에서는 안테미온의 아들 아니토스가 재판관에게 돈을 먹인 최초의 인물이라고 전해온다. 


한 줄 감상 : 효자  




@마르쿠스 카토 


당시 로마 사람들은 명문 출신이 아니어도 자신의 노력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신인이라고 부르는 풍습이 있었는데 카토 또한 그렇게 불렸던 사람이다. 


그는 핏빛처럼 붉은 얼굴에 회색 눈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시인은 그의 외모를 조롱하면서 다음과 같은 에피그램을 짓기도 했다. 


불타는 듯한 벌건 얼굴

듣기 거북한 목소리

회색 눈을 가진 포르키우스

죽어서 지옥에 가더라도

받아줄 사람이 없네. 


"이런 음식을 고마운 마음으로 먹고 있는 사람에게 황금은 필요 없소. 나는 황금보다 그것을 가진 사람을 정복하는 것이 더 명예로운 일이라고 생각하오." 그런 마니우스를 가까이서 지켜본 카토는 자신의 큰 집과 넓은 땅과 많은 하인들을 돌아보며 자신의 생활을 뉘우치고 쓸데없는 지출을 줄이고 절약하는 생활을 하기로 결심했다.  


여자의 세력에 대해서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남자는 여자를 지배하고 세계를 지배하지만, 아내는 다시 남편을 지배합니다." 


"현명한 사람이 어리석은 자로부터 배우는 것은, 어리석은 자가 현명한 사람한테서 배우는 것보다 더 많다. 왜냐하면 현명한 사람은 어리석은 자의 잘못을 보고 스스로 고치지만, 어리석은 자는 현명한 자의 좋은 행동도 흉내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은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속에 있다"는 말을 한 적도 있다. 


그는 자기에게 평생 동안 후회되는 일이 세 가지 있다고 했는데, 첫째, 여자에게 비밀 얘기를 한 것, 둘째, 말을 타고 가야 할 곳을 배를 타고 갔던 일, 셋째, 하루 종일 하무 일도 하지 않고 지냈던 일이 그것이라고 했다.  


아테네 사람들은 카토의 말이 짧으면서도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을 알고 놀랐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말을 몇 마디 하면 통역은 그 뜻을 옮기기 위해 한동안 말을 해야 했다. 그래서인지 카토는 그리스 사람들은 입술로 말을 하고, 로마 사람들은 가슴으로 말을 한다고 얘기했던 것이다. 


카토 자신도 아무 사고 없이 편히 지낼 수는 없었다. 정적에 의해서 재판장에 불려 나와 위기에 몰렸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거의 50번 재판을 받았고 맨 나중에 받은 재판은 그의 나이 86세일 때다. 그때 그는 "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이 다음 시대 사람들 앞에서 그 행동을 이해시키기는 참으로 곤란한 일"이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고 한다.  


그는 해외무역에도 손을 대기 시작했다. 당시 이것은 가장 투기적인 사업이라고 여겨지던 것인데, 그는 자기가 돈을 댄 사람에게 공동으로 돈을 투자할 사람들을 찾아내어 투자한 사람과 배의 숫자가 각각 50이 되면, 그가 노예에서 해방시켜 준 퀸티오에게 배를 거느리고 장사를 하게 했다. 카토는 이 방법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크지 않고, 이익을 볼 때는 막대한 돈을 얻었다. 


그는 또 노예들 가운데 희망하는 자에게 돈을 빌려 주기도 했다. 돈을 빌린 노예들은 그 돈으로 어린 노예들을 사서 일을 가르친 다음 1년 후에 다시 내다 팔았다.  


카토는 미리 준비해온 잘 익은 무화가를 땅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여러 의원들이 그것이 크고 아름답다고 감탄하자 카토는, "이 과일이 나는 땅이 로마에서 겨우 사흘밖에 안 되는 곳에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지혜로운 것은 오직 그 사람뿐

다른 사람들은 모두 흔들리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카이우스 마리우스 


사람이란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자기의 상관들이 함께 하면, 복종이나 명령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어 훨씬 수월하게 해낼 수 있다. 이것은 로마의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가장 고마워하고 감동한 것은, 장군이 자기들과 같은 잠자리에서 잠을 자고, 자기들이 먹는 것과 똑같은 음식을 먹으며, 함께 참호를 파고 성벽을 쌓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해이한 모습을 너그럽게 봐주거나 영광과 전리품을 나누어 주는 장군이 아니라, 고생과 위험을 같이하는 장군을 존경했다. 


생각이 깊은 사람들은, 가난하게 태어나 부자가 되고, 한낱 이름 없는 몸에서 로마의 높은 영광을 누렸던 그가 이제 가진 것에 만족하며 조용히 살아야 할 텐데, 아직까지도 욕망과 야심을 버리지 못해 안달하는 것을 보고 몹시 안타까워했다. 늙고 노쇠한 그가, 도대체 무엇이 아쉬워서 지난날의 영광과 승리의 기념비를 내던지고 멀리 카파도키아와 흑해까지 들어가서 미트리다테스 왕의 부하인 아르켈라오스와 네오프톨레모스를 상대로 싸우려는지 의아해했다. 


플라톤은 죽음이 가까왔을 때 운명에 감사드리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첫째, 사람으로 태어난 것, 둘째로, 야만인이나 짐승이 아닌 그리스인으로 태어난 것, 셋째로, 소크라테스와 같은 시대에 태어났던 것을 감사드립니다." 


기억도 짧고 생각도 깊지 못한 사람들은 지난 일들을 시간의 흐름 속에 묻어 버리고 만다. 단 한 가지도 기억 속에 담아두지 못한 그들은, 오로지 앞날의 한 줄기 행운만 꿈꾼 나머지 자기의 손에 쥐어져 있는 현재는 외면하고 만다. 그러나 미래라는 것은 운명에 따라 빼앗길 염려가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현재의 운명이 주는 것도 바람에 내던져 버리고 불확실한 미래만을 쫓으려고 한다. 이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다. 큰 집을 지으려면 기초를 튼튼히 다져야 하는 것처럼, 사람들의 행복도 미리 이성을 계발하고 교양을 쌓아두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먼저 기초가 되지 않고는 자기가 꿈꾸는 끝없는 욕망은 아무리 채우려고 해도 끝내 채울 수가 없는 것이다. 


한 줄 감상 : 전갈들이 싸우는 걸 보고 도망가는 부자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리산드로스 


리쿠르고스는 늘 이런 말을 했다고 전해 온다. "머리가 길면 잘생긴 사람은 더욱 잘생겨 보이고, 못생긴 사람은 한결 더 험상궂게 보인다." 


그러나 스파르타의 법은 같은 사람이 다시 사령관이 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다. 동맹국들의 요청을 거절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법을 어길 수도 없어 스파르타 정부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생각 끝에 그들은 아라코스를 명목상의 사령관으로 삼고, 리산드로스를 부사령관으로 임명한 다음 실질적인 권한은 그에게 주었다. 


그 이전까지 이 전쟁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여러 번 전세가 뒤바뀌었고, 그리스 역사상 가장 많은 장군들의 목숨을 앗아간 전투를 치렀다. 그런데 이런 전쟁이 오직 한 사람의 장군과 뛰어난 작전 계획으로 가장 짧은 시간에 끝을 맺게 된 것이었다.  


아낙사고라스는 이런 주장을 했다. "하늘에 걸려 있는 물건들은 천체에서 어떤 움직임이나 변화가 생기면, 그 위치를 벗어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다른 물체들도 따라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의 학설에 의하면, 별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박혀 있지 않고 돌처럼 어떤 무게를 지닌다. 그래서 선회 운동을 할 때 공기의 저항과 마찰을 받아 빛을 내게 된다. 그러므로 무한한 허공에 있는 차고 무거운 이 물건은 계속해서 심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아낙사고라스의 이 학설보다 훨씬 그럴듯한 의견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별똥별, 즉 유성이란 무슨 이상이 생겨 하늘의 불에 궤도를 벗어나 떨어지는 것으로, 밑에 깔린 공기층이 닿아 발화하자마자 곧 꺼지는 불이나, 세찬 바람이 별안간 위로 솟구쳐 오를 때 갑자기 폭발해서 타는 불이 아니라는 것이다.  


스파르타의 화폐는 무쇠로 만들어진 것이다. 빨갛게 단 무쇠를 식초를 탄 물에 넣어 무르게 만든 화폐는,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지고 다니기가 무척 불편했으며, 무게와 부피가 큰 데 비해서 돈의 가치가 너무 작았다. 스파르타의 화폐는 모두 이런 것이었다고 짐작되며, 지역에 따라 무쇠나 구리로 만든 꼬챙이를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적은 돈의 단위를 오볼이라고 하는데, 1드라크마는 6 오볼에 해당한다. 그리고 드라크마란 한 줌에 쥘 수 있는 분량을 뜻한다. 

개인이 돈을 소유할 수 없게 했지만 정부가 이것을 가지고 있는 한 결코 국민들이 돈에 대해 가지는 욕심은 줄어들 수가 없다. 정부에서만 돈을 소유한다는 것은 사실 금은 자체에 대한 일종의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 되어, 국민들은 실제의 가치 이상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결국 이는 돈에 대한 국민들의 욕구를 부추겼다.  


이 비밀문서를 스키탈레스라 하는데, 에포로스들으 누군가를 장군으로 임명하여 보낼 때 둥근 나무 하나를 골라 똑같이 둘로 쪼갠 뒤, 하나는 자기네가 보관하고 하나는 그 사령관에게 주었다. 그 후 정부가 그 사령관에게 비밀 명령이나 어떤 중요한 일을 알릴 때는 양피지를 길고 가늘게 잘라 이 스키탈레스를 빈틈없이 똘똘 만다. 그런 다음 양피지에 내용을 적고, 다시 양피지만을 벗겨 사령관에게 보낸다. 이것은 글씨가 모두 끊어져 있기 때문에 사령관은 글씨를 바로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자기가 가진 나무 조각에다가 이 두루마리를 맞춰 감으면 글씨를 읽을 수 있게 되는데, 이 두루마리도 나무 조각과 같이 스타프라고 불렀다. 


"집 안에서는 사자, 집 밖에서는 여우"라는 격언은 적어도 리산드로스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늘 규칙을 지켰고, 스파르타인다운 인물됨을 보여줬다.  




@술라 


술라의 눈은 푸른빛이었고 몹시 날카로웠으며, 얼굴은 희고 붉은 마마자국이 거칠게 퍼져 있었다.  


술라가 어느 날 바닷가에서 산책하고 있는데 어부들이 신기한 생선을 술라에게 바쳤다. 술라는 선물을 준 어부에게 어디 사람이냐 물었다. 어부들은 할라이아이 사람이라고 답했다. 술라는 고함을 질렀다. "뭐, 할라이아이 사람이라고? 아직도 그곳에 사람이 산단 말이냐?" 갑작스러운 호통에 어부들이 놀라 꼼짝도 못 했다. 술라가 오르코메노스 전투에서 승리하고 적을 뒤쫓아갈 때, 술라는 적을 쫓으며 보이오티아의 안테돈, 라림나, 할라이아이라는 도시를 점령하고 시민들을 마구 학살했었다. 그 도시 사람들이 폰토스 군을 도왔기 때문이다. 예전 일 때문에 고함쳤던 술라는 잠시 후 웃음 띤 얼굴로 어부들에게 안심하고 돌아가도 좋다 했다. 어부들은 기쁨 마음으로 돌아갔다. 이런 일이 있은 후, 할라이아이 사람들은 다시 도시를 세울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술라는 발레리아와 결혼한 후에도 여전히 여배우, 피리 부는 여자, 춤추는 여자들과 어울리며 놀거나 잠자리를 했다. 그들은 언제나 술라의 곁을 맴돌았다. 당시 술라와 함께했던 사람으로는 희극 배우 로스키우스, 광대 소렉스, 여장 배우 메트로비우스였는데, 술라는 특히 메트로비우스를 총애했다.  



@키몬 


성이페리폴타스인 그는 얼굴이 매우 아름다웠고, 같은 또래의 청년들 사이에서도 유난히 돋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성질이 거칠고 강건했으며, 한편으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는 높은 기백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성격이나 행적을 기록하는 것이 그의 겉모습만을 새긴 동상보다 훨씬 영광스러운 기념비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은혜를 갚기 위해 우리는 이 책 속에 그의 전기를 써넣으려는 것이다. 이런 기록은 사실만을 그대로 썼을 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감사의 마음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다. 있지도 않은 공적까지 역사에 기록한다면, 오히려 그 사람 자신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키몬은 그늘진 산책로를 꾸며 아테네 시가를 아름답게 꾸몄다. 시민들은 넓고 아름다운 운동장과 공원에서 마음껏 자연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광장에는 쥐방울 나무들을 심고, 메마르고 거칠었던 아카데미에는 공사를 하여 울창한 나무가 이리저리 뻗은 숲과 산책로를 만들었으며, 숲에는 넓은 육상경기 코스를 만들었다. 


키몬은 죽기 전에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부하 장군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제 고국으로 돌아가야겠소.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는 절대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마시오." 부하 장군들은 키몬의 말에 따라 그리스로 돌아가는 동안 키몬의 죽음을 숨겼다. 그래서 적군은 물론 동맹국들도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 파노데모스의 말처럼, 그가 사망한 지 30일이 지날 때까지 아테네는 이미 고인의 지휘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루쿨루스  


술라는 그를 가까이 두고 여러 일을 맡겼는데, 특히 화폐를 주조하는 일은 중요한 일 중의 하나였다. 미트리다테스 전쟁 때 사용된 화폐 대부분은 루쿨루스가 펠로폰네소스에서 만든 것이었다. 이 돈은 전쟁으로 날개 돋친 듯 유통되었고 루쿨루스의 동전이라는 이름으로 나중에까지 오래 사용되었다.  


프라이키아라는 미모와 재치를 겸한 여자가 로마에 살았는데 여러 가지 면에서 보아 한낱 창녀였다. 그런데 자기를 찾아오는 손님들을 매혹시켜 가까운 사람들의 소망을 이루어 주거나 그들을 이롭게 도와준다는 소문이 나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큰 세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도서관을 갖추어 놓은 것은 눈여겨볼 만한 일이다. 좋은 책을 수 없이 수집했다. 이처럼 책을 수집한 것보다 그 책을 널리 이용하도록 한 것은 더욱 훌륭한 일이었다. 그의 도서관은 늘 열려있었고, 도서관에 딸려 있던 산책로와 열람실은 로마의 시민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인들까지 드나들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곳을 마치 뮤즈의 신전처럼 즐겁게 드나들며, 서로의 얘기를 나누고 명상에 잠기기도 했다.  


그가 도서관을 갖추었던 것은 철학을 사랑하고 여러 학파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학파 중에서도 처음부터 플라톤의 아카데미 철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 안에서도 신아카데미 학파가 아닌 당시의 석학이며 웅변가였던 아스칼론의 안티오코스를 대표로 한 구 아카데미 학파의 입장을 지지했다.   




@니키아스 


니키아스는 그리스 여러 나라 사람들의 시름을 씻어 주고, 그들 사이에 우정의 씨앗을 심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를 '니키아스의 평화'라 불렀는데, 이 말은 지금까지 남아 있다. 

에우리피데스의 시는 그리스 이민 시민들보다 시칠리아 원주민들이 더 좋아했는데, 그들은 에우리피데스의 시를 읊거나 써줄 수 있는 여행자가 오면, 아주 기뻐하며 서로 연락했다. 그렇기에 아테네로 돌아온 포로 중 에우리피데스의 시를 읊어 먹을 것을 얻어먹거나, 노예에서 풀려난 사람들도 꽤 있었다. 


시칠리아 인들이 에우리피데스의 시를 얼마나 좋아했는지에 대해서는 이런 얘기도 있다. 언젠가 카우누스의 배가 해적에 쫓겨 시칠리아의 어느 항구로 들어가 보호를 요청한 일이 있었다. 그때 주민들은 그들의 요청을 거절했는데, 갑자기 주민들 중의 한 사람이 에우리피데스의 시를 아냐고 물었다. 선원들이 알고 있다고 대답하자 주민들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항구에 들어오도록 허락해주었다고 한다. 


한 줄 감상 : 시칠리아 인들은 어떤 포인트에서 에우리피데스의 시에 꽂혔을까    








시카고 대학의 The Great Books 프로젝트에 따르면 고전을 읽고 변치 않은 가치를 찾으라 했다. 이 책을 읽고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1. 영웅도 사람이다.

2. 나는 선한 영향력과 실력을 모두 겸비한, 전략에 디테일이 살아있는 영웅을 좋아한다. 



생애부터 죽음까지 다루는 책이다 보니 나와 맞는 사람이 있는지 좀 더 자세히 찾아보면서 여러 번 읽어봐야 할 거 같다. 한 영웅의 서사를 묘사하기에 꼭 아름다운 모습만 있지 않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모두가 어떤 부분은 정말 마음에 드는데, 어떤 부분은 '힉!' 하게 된다. 이 책의 매력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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