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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승주 Apr 05. 2024

첨단 기술, 이 피곤한 축복들

택시


   “배차가 완료되었습니다.”

오늘은 차 없이 출근하는 날. 어젯밤 야근을 하다가 주차장에서 차 빼는 걸 깜빡하여 벌어진 사태다. 지하철을 탈까도 고민하였다. 하지만 오랜만에 다른 사람이 운전해 주는 차를 타고 멍하니 창밖을 보며 출근하고 싶은 마음에 택시를 불렀다.


순식간에 배정된 택시는 15분 뒤에 도착한다고 했다.

   ‘15분은 너무 긴 걸…‘

5분 쯤 지났을까 눈앞에 ‘빈차’ 불을 띄운 택시가 나타났다. 잠깐 고민하던 나는 눈앞의 택시를 잡았다. 그리곤 휴대폰을 꺼내 배차취소 버튼을 눌렀다. 그렇게 나를 위해 5분 가량 운전하던 기사님은 허망하게 목표지를 잃어버렸을 것이다.


조금 불편한 마음이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택시를 타니 좋았다.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그러다 문득 아차 싶었다. 내가 다니던 길이 아니던 것이다. 나는 기사님께 역삼역으로 가는 게 맞느냐 물었다. 그는 맞다고 답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 가면 너무 돌아갈 뿐더러 다리를 건너서 교통 체증이 심해질 것이 뻔했다. 나는 얼른 네비게이션 앱을 켜 경로를 확인했다. 네비는 내가 생각했던 길을 가리키고 있었다. 하지만 기사님은 이렇게 가면 여기서는 조금 막히겠지만 다리 건너서는 덜 막힐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의 경험을 믿기로 했다.


하지만 다리를 건너니 역시나 교통체증은 더 심해졌다. 당황하던 기사님은 “너무 막히니 옆으로 돌아서 갈게요”라고 답했다. 무미건조하게 그러시라 답했지만 나는 순간 짜증이 났다. 일자로 쭉 가면 될 길을 ‘ㄷ’ 형태로 돌아온 꼴이었다. 그의 경험을 믿기로 한 내가 바보 같았다. 그렇게 역삼역에 도착해 나는 좋지 않은 기분으로 택시에서 내렸다.


기껏해야 5-10분 차이였을 것이다. 고작 3,000원 정도 더 썼을 것이다. 그저 여유로운 마음으로 집에서 나와 눈에 보이는 택시를 잡고 목적지로 가주십사 말씀드린 후 휴식을 취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난 이 경이로운 첨단 기술들에 너무도 익숙해져있었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나조차 때론 기술이 너무 많은 정신을 소모시키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첨단 기술, 이 피곤한 축복들. 그래서 정신질환은 선진국의 병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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